핵심 브랜드 6개 모두 백인 남성을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로
지난 9월 13년간 영국의 명품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을 이끌어 온 디자이너 사라 버튼이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얼마 전, 그 자리에 새로운 인물이 발탁됐습니다. 1988년생의 션 맥기르입니다.맥기르가 알렉산더 맥퀸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로 선임된 것은 브랜드의 모회사인 케링그룹의 결정인데요.
맥기르는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서 1988년에 태어났으며,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했습니다. 이후 버버리, 보그 재팬 남성지(Vogue Hommes Japan) 등에서 어시스턴트로 경력을 쌓은 뒤 벨기에 의류 브랜드 '드리스 반 노튼', 일본 '유니클로', 영국의 'JW 앤더슨' 등을 거치면서 업계에서 입지를 다졌고요.
지안필리포 테스타 알렉산더 맥퀸 CEO는 "션 맥기르를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로 맞이해 기쁘다"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소와 앙리 피노 케링그룹 회장 역시 "알렉산더 맥퀸은 우리가 애정을 가지는 브랜드"라며 "션 맥기르가 새로운 추진력으로 브랜드의 여정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 브랜드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 맥퀸의 디자이너 발표 이후 케링그룹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케링그룹의 주요 브랜드의 모든 디자이너가 '백인 남성'으로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케링그룹의 핵심 브랜드는 총 6개입니다. 구찌, 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알렉산더 맥퀸, 브리오니 등이죠. 이 브랜드 모두 백인 남성이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로 선임된 상태고요.
실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에는 올해 초 새로운 디자이너로 이탈리아 출신의 사바토 데 사르노가 선임됐으며, 보테가 베네타는 2021년 프랑스 출신의 마티유 블라지를 발탁했죠.생로랑은 2016년부터 벨기에-이탈리아 출신의 안토니 바카렐로가 이끌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발렌시아가는 미국인 뎀나 바잘리아가, 브리오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노버트 스텀플이 수장으로 있습니다. 이들 모두 '백인 남성'이라는 공통점이 있고요.
문제는 케링그룹이 남녀평등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 2월에는 블룸버그의 2023년 성평등 지수(GEI, Gender Equality Index)에 포함됐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케링그룹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촉진하려는 케어링의 노력을 인정받아 6년 연속 블룸버그 성평등 지수에 포함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우리는 여성의 재능과 리더십 잠재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들의 웰빙을 우선시하고 삶의 중요한 순간에 그들을 지원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회사가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도 매번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케링그룹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케링에서는 다양성이 귀중한 자원이라고 확신한다"라며 "그룹은 특히 모든 조직과 조직의 모든 수준에서 성평등과 재능 있는 여성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을 정도로요.
그런데 요직에는 백인 남성들만 앉혀놓았습니다. 의아한 대목이죠. 다양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기업인데 말입니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는 알렉산더 맥퀸의 새로운 디자이너 선임 발표 이후 "이제 케링그룹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는 모두 백인 남성"이라며 "맥퀸, 발렌시아가, 브리오니, 구찌, 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중 어느 브랜드도 여성 또는 유색인종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다. 6개 명품 브랜드를 이끈 29명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 가운데 여성은 단 5명이다.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케링그룹이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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