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예정…기업가치 11조원 추산
딱 보면 투박합니다. 두꺼운 밑창에 발등을 감싸는 스트랩도 그리 예쁘게 생기진 않았고요. 한마디로 촌스럽습니다. 오래전에는 목욕탕(사우나)에서만 신던 신발이었죠. 독일의 신발 브랜드 '버켄스탁'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버켄스탁은 1774년 독일의 요한 아담 버켄스탁이 설립한 회사입니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해야 했는데, 당시 마을의 작은 교회에 구두공으로 등록한 게 '버켄스탁'의 시작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시점은 1896년입니다. 창립자의 증손자인 콘라드 버켄스탁이 독일에 관광을 오는 유럽인,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사우나 슬리퍼'를 만들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독일을 오면 반드시 들려야 할 곳으로 '사우나'를 택했는데, 여기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은 겁니다. 또, 버켄스탁만의 '풋베드(깔창)'를 개발한 뒤 라이선스 계약을 시작한 것도 회사를 키우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00년대 들어서는 '발이 편한 샌들'로 유명해집니다. 사우나 슬리퍼와 라이언스 계약으로 사업을 이어오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이때 버켄스탁은 부상당한 군인들을 위해 신발을 제작했습니다. 부상병들의 피로도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인체공학적 디자인으로 설계했습니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 군화 대신 신을 수 있는 신발이었죠. 버켄스탁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 부상병을 위한 제품 생산에 집중했습니다.
'기능성 신발'에 그쳤던 버켄스탁이 디자인에 신경을 쓰기 시작합니다. 1954년 콘라드의 아들 '칼 버켄스탁'이 사업에 참여하면서죠. 그는 직접 색을 입힐 수 있는 발바닥 무늬 용지를 개발했습니다. 이후 독일,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서 특허를 출원해 매출 규모를 확대했습니다. 버켄스탁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샌들의 이미지도 이쯤 만들어졌습니다. 1963년 재활을 목적으로 하는 기능성 샌들 '마드리드'를 탄생시켰기 때문입니다. 마드리드는 현재까지도 버켄스탁의 스테디셀러 라인입니다.
미국에서 유명해진 것은 우연히 버켄스탁을 접한 미국 사업가의 영향입니다. 1967년 미국 사업가 마고 프레이저가 독일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발을 다쳐 버켄스탁 샌들을 신게 됐습니다. 프레이저는 버켄스탁의 편안한 느낌에 매료돼 칼 버켄스탁을 찾았고, 이들의 만남은 미국 진출로 이어지게 됩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버켄스탁 샌들을 애용한 것으로 유명하죠.
200년 이상 버켄스탁 가문이 경영해 왔지만 2013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가 도입됩니다. 경영권 문제로 가족들의 다툼이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커스 벤스버그와 올리버 라이헤르트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게 되면서 버켄스탁 가문은 경영에서 한발 물러나게 됐습니다. 2021년에는 경영권을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모회사 LVMH의 사모펀드 ‘엘 카터튼’에 넘겼고요.
현재 버켄스탁 가문이 경영에 참여하는 부분은 '품질 관리'가 전부입니다. 창업주의 6대손인 알렉스 버켄스탁과 크리스천 버켄스탁 형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249년을 이어온 장수 브랜드 버켄스탁이 드디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기업공개(IPO)를 합니다. 상장은 11일(현지시간)에 진행되며, 목표 공모가는 주당 46달러입니다.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버켄스탁의 기업가치(공모가 적용 기준)는 86억4천만달러(11조60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목욕탕 슬리퍼가 11조원 규모의 회사로 커졌습니다. 버켄스탁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네요.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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