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연의 다시, 연결]
“쇼핑 중독으로 업무 실수가 많아집니다”[안주연의 다시, 연결]
안녕하세요. 쇼핑에 월급의 대부분을 투자하는 30대 가장입니다. 카드 값이 많이 나오면 회사 일에 더 매달릴 수 있다곤 하지만, 저는 점점 노예가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울이 더 심해집니다. 악순환으로 업무 잔실수도 많아집니다.

쇼핑 중독은 심각합니다. 품절일 때는 자꾸 생각나고 우울해집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인데 너무 비싸서 못 살 때도 그렇습니다.

이제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쇼핑을 하는 건지, 쇼핑을 받아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지, 쇼핑을 해서 가족들과 싸우는 건지, 가족과 싸워서 쇼핑을 하는 건지 그 순서도 헷갈릴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쌓이고 쌓인 것이 터져서 가족과도 크게 싸우고, 회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제가 왜 이러고 있지 하다가도 또 쇼핑합니다. 마약중독처럼 끊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잠깐이나마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거든요.


안녕하세요, 현우 님. 조절하기 어려운 쇼핑과 이에 따른 불화로 업무에 차질이 생기고 스트레스도 높아진 상황을 솔직하게 적어 보내주셨습니다. 중독에서 벗어나야 건강한 일상 회복이 가능할 것 같은데, 이것이 쉽지 않아 도움을 요청하셨군요.

사연에 대한 본격적 답장을 쓰기 전에 쇼핑 중독과 같은 중독적, 강박적 행동은 당사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고, 반복적인 압박감과 좌절감을 주며, 수치심을 갖게 하는 심각한 정서적 어려움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우 님의 이야기로부터 답답함과 우울감,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마음, 그러면서도 행동을 바꾸기 힘든 망설임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쇼핑 중독은 정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많이 사용되는 명칭으로, 심리학에서는 ‘강박적 구매’라고도 부릅니다. 온라인 쇼핑이 발달하고 SNS에 ‘언박싱 영상’, ‘플렉스’라는 표현이 흔한 요즘은 쇼핑을 좋아하는 ‘맥시멀리스트’들도 많아 ‘이 정도는 다 하지 않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한 쇼핑 중독은 강박장애, 충동조절장애와 겹치는 부분이 있고, 행위중독의 일종으로 보기도 하는 행동장애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서적 공허함과 우울을 달래고, 즐거움과 자극을 느끼려고 쇼핑을 시작하지만, 일정 정도의 해소감과 쾌락을 느끼기 위해 점점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며, 행동을 억지로 중단하면 초조감, 짜증, 불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구매충동에 저항하기 어려워지고, 계속되는 구매행동이 재정, 활력, 다양한 취미, 인간관계와 같은 자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 잘해오던 직장일, 직장에서의 대인관계, 가족과의 관계에서 집중력이 저하되고 역할 수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중독 때문에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해소하려고 중독행동을 찾는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쇼핑을 하는지 쇼핑을 해서 스트레스 받는지, 쇼핑을 해서 가족들과 싸우는지 가족들과 싸워서 쇼핑을 하는지 순서가 헷갈린다’는 현우 님의 사연도 괴로운 악순환의 상황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중독행동을 조절하려면 긴 노력과 시도가 필요하기에, 이 답장 하나가 현우 님께 직접적인 행동변화 혹은 삶의 큰 전환을 일으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현우 님이 자신을 더 깊이 볼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돕고, 중독 관련 심리 전문가를 찾아가실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보려는 것이 저의 의도입니다.

당사자가 자신의 감정과 어려움을 파악하고, 습관을 멈추고 싶지만 그러면서도 멈추고 싶지 않은 ‘접근-회피’의 양가감정을 알아차리고 이를 다루면서 진정한 변화 동기를 찾았을 때 중독행동은 바뀌기 시작합니다.

“현우 님께서 이토록 쇼핑을 지속하는 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현우 님은 이에 대한 좋은 통찰을 이미 갖고 계십니다. ‘내가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쇼핑에 빠진 게 아닌가.’

짧지만 솔직한 이 문장에서 시작해볼까요. 어린 시절부터 외모와 패션 감각이 뛰어났던 현우 님은 이를 칭찬받으며 느끼는 기쁨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본인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키워오신 듯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제품, 브랜드, 스타일을 추구하게 되고, 주변의 찬사가 이어지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쇼핑에 더 몰입하셨을 듯합니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감각이 섬세하고 주변의 관심과 애정을 받기를 즐깁니다. 이를 수용해주고 소비를 지원해주며 심하게 통제하지 않는 부모님의 존재는 현우 님에게 든든하고 만족스러운 울타리였을 것입니다.

장남으로서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대에 맞닥뜨린 현우 님의 부담감은 매우 컸을 거라 생각합니다. 가장 노릇이 의욕만큼 되지 않으면서 좌절하게 되고, 포기하고픈 마음도 들었다고 하셨는데, 충분히 이해됩니다.

프로이트는 정신적 건강을 ‘일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는데요, 저는 20~30대는 관계지향적인 사람은 과업에 대한 몰두를, 과업지향적인 사람은 관계의 소중함을 익혀 균형을 맞추며 성장해가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타인과 조화를 이루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싶은 성향이 큰 현우 님에게는 본인이 전념할 만한 과업을 발견하고 다양한 관심사와 능력을 키우는 여유 있는 시간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갑작스럽게, 가족의 빈 자리를 채우는 일은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듯 낯설고 갑갑했을 것이고,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무의식적 거부감도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결혼을 하고 자녀도 생겨 진짜 가장이 되면서, 본인의 천성을 수용받고 욕구를 이루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진 것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자유롭고 안온한 시기와 무조건적 사랑을 갑자기 잃게 된 상실감이, 그 시절 가장 열중하던 쇼핑에 몰두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는 피터팬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저는 현우 님이 갑자기 소중한 가족을 잃고 잘할 자신이 없는 역할을 해내려 애쓰며 느꼈을 충격과 슬픔도 짚어드리고 싶습니다.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마인드맨션의원 제공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마인드맨션의원 제공
그리고 현우 님의 개성과 정체성은 정말 사라지고 있는 걸까요.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하셨고, 스트레스로 잔실수가 많아지기 전까지 일도 무난히 해오신 것으로 보아 현우 님은 어느새 실제적 능력도 조금씩 키워오셨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부당함을 발견해 이야기하여 이를 개선시켰고, 쇼핑 중독을 털어놓았을 때도 질타보다 지지를 받았던 부분 등을 종합해보면, 현우 님의 사회적인 감각과 소통능력은 평균 이상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되는데요.

현우 님은 싸우고 화해하면서 지켜온 현우 님의 가정과 직장, 그리고 그곳들에서의 소중한 관계를 이미 만들어 오셨습니다. 이제 그동안의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생활의 밸런스를 다시 구성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자신의 존재감에 집중하기보다는 자기라는 존재 자체의 의미를 찾고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변화를 시도할 내적 동기를 더 깊이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 제가 가설을 세워본 현우 님의 마음의 진짜 이유들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와의 상담이 꼭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에도 전문적인 코칭이 필요합니다. 외부에서의 강압적 변화는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반발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현우 님이 스스로 결정하여 스스로의 마음으로 상담과 치료에 임할 때, 비로소 존재감이 아닌 존재 자체로 빛나는 본인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경비즈니스는 ‘안주연의 다시, 연결’을 연재하며 독자에게 상담 편지를 받고자 합니다. 직장인 마음 상담을 주제로,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 직접 답하겠습니다. poof34@hankyung.com으로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