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탈출 위해 금융완화 정책 펴던 일본
고물가에도 국채매도 압력·엔화가치 반등 가능성에 긴축 쉽지 않아
일본은행은 7월 말 금융정책결정 회의에서 장기금리의 변동 허용 수준을 기존 0.5%에서 1.0%로 사실상 인상했다. 동시에 급격한 금리상승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자세를 보이며 자국 국채 매입에 주력해 왔다. 일본 경제의 디플레이션 탈출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게 일본은행의 입장인 것이다. 사실 일본은 미국 등 세계 각국이 금리인상에 주력하는 상황에서도 단기정책금리를 –0.1~0%로 억제하는 마이너스 금리정책이나 장기금리의 급등을 견제하는 장단기금리차 곡선 유지정책(YCC)을 고수해 왔다.
이 같은 금융완화 정책에 힘입어 2분기 일본의 실질경제성장률은 전분기 대비(연율 기준) 4.8%(2차 발표치)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 또한 예상보다 높아져 3%대의 상승세를 이어가는 등 물가와 임금의 동반 상승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일본은행이 추구하던 비정상적인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이 점진적으로 수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24년 말까지는 마이너스 금리정책 및 YCC 정책이 폐기될 것이라는 전망도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진적인 금융정책 변경 시도 과정에서 시장의 금리상승 기대감이 점차 고조될 경우 일본 국채에 대한 매도 압력이 강해질 수 있다. 끈질긴 물가상승 압력은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며, 오랜 디플레이션에 고전해 왔던 일본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이를 환영하는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물가상승이 점차 부담이 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임금에 비해 물가상승 폭이 커져 실질임금 감소 경향이 장기화되어 점차 소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는 추세다. 올해 하반기 중에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대로 떨어져야 실질임금의 하락세가 멈출 것으로 보이는데, 엔저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과 중동발(發) 원자재 가격 불안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일본 경제에 대한 구조적인 물가 압력도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추세가 그렇듯 일본에서도 저출산·고령화 및 인구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중 간 마찰로 인해 무역 세계화 흐름이 후퇴하고 공급망 리스크 또한 확대되면서 기업의 비용이 늘어 이 또한 물가를 끌어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탈탄소화를 위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상승, 이 과정에서의 화석연료 자원 개발 투자 부진으로 인한 자원 가격 상승도 잇따르고 있다. 탈탄소화를 위해 필요한 전기차용 리튬 등 녹색 광물의 가격도 오르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지속된 재정확대 정책의 축소가 매우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이다. 미국처럼 정부에서 반도체, 배터리 등 생산 기반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 지원 및 재정 확대 정책을 펴는 등 재정 측면에서 총수요 확대 및 국채 팽창의 압력이 여전하다.
이 같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과 함께, 향후에는 일본 장기금리가 일본은행의 유도 목표 상한선인 1%를 돌파하려는 움직임이 투기적인 국채 매도 압력과 동시에 강해질 수도 있다. 물론 현재 미·일 간 금리차로 인해 엔화 가치를 낮추는 압력이 당분간은 강할 것으로 보이나 일본 금리의 추가 인상 가능성, 제로 금리정책 또는 YCC 정책 철폐 가능성 등이 엔저 현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도 고금리정책의 장기화가 시장에 점차 부담이 될 수 있다. 미국 행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을 의회가 견제한다는 점 등도 고려하면, 미국 국채 매도 압력이 점차 완화되고 금리 또한 안정화될 수도 있다. 즉 일본 입장에서 당장은 지나친 엔저 현상이 진행되더라도 급격한 엔화 가치 반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또한 항상 경계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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