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링크가 앞당긴 별들의 전쟁]
지난 2월 스페이스X의 위성 '스타링크'를 탑재한 '팔콘9'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월 스페이스X의 위성 '스타링크'를 탑재한 '팔콘9'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연합뉴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가 올해 70번째 ‘로켓 배송’에 성공했다. 지난 10월 5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기지에서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이 우주로 향했다. 이날 팰컨9이 우주로 실어나른 건 스페이스X가 개발한 저궤도 통신위성 스타링크 22기다.

스페이스X는 올해 나흘에 한 번꼴로 우주에 발사체를 보냈다. 이렇게 운반한 사람이나 물건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스타링크다. 하늘을 수놓은 8000개의 전체 위성 중 4500개나 된다. 전체 위성 중 50% 이상이 머스크의 통제 아래 있다는 말이다. “위성 꺼서 핵전쟁 막았다” 전쟁 개입 논란
스타링크 위성 안테나./스타링크
스타링크 위성 안테나./스타링크
스타링크의 위력이 입증된 건 지난해 2월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머스크는 전쟁으로 지상 통신망이 파괴된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를 무상으로 공급하며 인터넷을 제공했다. 전쟁 중 일상생활을 위한 통신뿐 아니라 군사작전을 짜고 지역별 현황을 파악하고, 날씨 정보를 얻거나 무기를 작동하는 등 모든 것이 스타링크 없이는 불가능했다.

러시아군의 공격에 의해 ‘물리적’인 차단이 어려운 만큼 우크라이나군에는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었던 셈이다. 전 세계가 ‘뜻밖의 권력’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지상전을 앞둔 이스라엘 역시 스타링크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스페이스X가 우주 경제뿐 아니라 전 세계 안보 패권을 쥘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올해 출간된 머스크 전기에는 머스크가 크림반도 지역 스타링크 통신망을 차단하며 전쟁에 개입했다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 됐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가 통제하는 크림반도 인근에서 스타링크 접속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머스크가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후 머스크는 우크라이나 전쟁 확전을 우려해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문제로 항의 의사를 밝히기로 했다.

논란에도 결론은 분명하다. 테슬라로 세계 최고 부자가 된 머스크가 스타링크로 세계 정치·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스페이스X의 힘은 날로 커지고 있다. 2020년 12월 북미에서 처음 상용화한 스타링크는 현재 62개국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스타링크 성장에 힘입어 스페이스X는 올해 사상 첫 흑자를 달성했다. WSJ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올해 1분기 매출 15억 달러, 순이익 5500만 달러로 스타링크 출시 후 3년 만에 흑자 전환했다.

스타링크 같은 저궤도 통신 위성은 쉽게 말해 우주 인터넷 사업이다. 지상용 스타링크 단말기를 가지고 있으면, 위성과 연결된다. 스타링크는 지구 상공 약 480km에서 작동하는데, 이는 기존 위성인터넷 서비스보다 지구와 60배 이상 가까운 거리다.

지구와 거리가 가까울수록 지상에서 수신하는 인터넷 신호의 세기가 강해지기 때문에 초고속 인터넷을 안정적으로 쓸 수 있다. 스타링크의 평균 다운로드 속도는 초당 약 100메가비피에스(Mbps)로 기존 서비스보다 10배 이상 빠르다.

지연 시간 역시 10배 이상 짧다. 다만 지구와 거리가 가깝고, 크기가 작은 소형이다 보니 커버하는 영역이 좁다. 그래서 많은 양의 소형 위성이 필요하다. 머스크는 향후 몇 년 안에 4만2000개의 스타링크를 쏘아 올린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억만장자 머스크, 방위사업자 됐다"
2020년 5월 세계 최초로 민간인 우주 왕복 비행에 나섰던 스페이스X의 크루 드래곤./연합뉴스
2020년 5월 세계 최초로 민간인 우주 왕복 비행에 나섰던 스페이스X의 크루 드래곤./연합뉴스
스타링크가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지원군’ 역할을 하면서 가장 초조해진 건 러시아와 중국이다. 중국은 미국이 스타링크를 통해 지구 궤도의 영토를 잠식하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스페이스X는 아예 방위용 저궤도 위성인 ‘스타실드’를 내놓기도 했다. 스타링크가 소비자와 상업용으로 설계됐다면 스타실드는 국가 안보를 위한 정부용 서비스다. 스페이스X에 따르면 스타실드는 높은 암호화 시스템을 적용해 위성 탑재체의 기밀이 유지되고 데이터가 안전하게 처리된다.

지난 9월에는 미 우주군과 1년간 스타실드 사용 계약을 체결했다.이 계약은 미 우주군의 상업 위성통신 사무소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며 스페이스X 외에도 18개의 다른 회사들이 계약을 따냈다. CNBC에 따르면 이번 계약의 최대 가치는 7000만 달러(약 950억원)다.

블룸버그는 이번 계약으로 “도발적인 억만장자인 머스크가 방위사업자로서의 역할까지 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최근 미국의 또 다른 빅테크 기업인 아마존 또한 지구 저궤도에 인공위성을 띄우며 우주 인터넷 서비스의 시작을 알렸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추진 중인 ‘프로젝트 카이퍼’의 일환이다. 아마존은 지난 10월 6일 테스트 위성 두 대를 우주로 보냈다. 향후 10년 내로 최대 3236개 위성을 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지구 저궤도 위성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국적 위성의 점유율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러시아, 머스크 견제하며 ‘위성군단’ 키운다
'70번째 로켓배송' 성공한 머스크...우주 전쟁 앞당겨[스타링크가 앞당긴 별들의 전쟁②]
중국도 스타링크에 맞서기 위해 자체 위성인터넷망 구축 프로젝트인 ‘궈왕’, 제2 위성군단 ‘G60’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은 궈왕으로 1만3000개의 위성을 쏘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G60 역시 1만2000개 위성 발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2020년 이미 유엔 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에 1만2992개의 위성 배열을 위한 서류를 제출해 놓은 상태다. 이후 2021년 중국 정부는 중국위성네트워크그룹유한공사를 설립하고 자체적인 저궤도 위성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최소 7개의 국영·민간 기업이 위성 공장을 건설하는 등 이 분야에 진출했고 이 밖에 다양한 민간 기업들의 참여도 늘고 있다. 위성을 보내기 위한 새로운 로켓 발사장도 건설 중이다.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저궤도 인공위성’은 전 세계 각국이 참전하며 불이 붙었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위성인터넷 서비스의 향후 경제적인 가치가 높게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지상망이 깔린 ‘통신 강국’ 한국과 달리 현재 전 세계 인구의 40%는 인터넷 접속이 어렵다. 이 같은 사실을 감안한다면 지상망 기반의 이동통신을 보완하는 역할로 위성망의 중요도가 앞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차세대 이동통신인 6G와 결합해 자율주행차·도심항공교통(UAM) 등 차세대 기술과 융합한다면 수익 역시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투자은행 모간스탠리는 위성통신 서비스 시장 규모가 2020년에서 2040년 사이에 13배 성장해 950억 달러(약 120조2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주산업 컨설팅 회사인 유로컨설트는 위성통신 사용자 수는 2022년 7100만 명에서 2031년 1억5300만 명으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러시아 또한 자체적인 저궤도 위성 개발에 나서고 있고, 스타링크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대만은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자체적인 저궤도 위성 개발에 착수했다. 대만은 2025년 첫 위성을 발사한다는 목표다.

영국에서는 위성통신 업체 원웹이 이미 618기의 위성을 우주로 올려 보냈다. 2020년 원웹이 파산 위기에 처하자 영국 정부가 직접 나서 5억 달러(약 7000억원)를 투자해 지분 45%를 인수하기도 했다. 캐나다 정부도 2020년 위성통신 업체 텔레셋에 17억5000만 캐나다달러(약 1조7000억원)를 투자해 298기의 위성 개발을 지원했다. 유럽의회는 현재 자체 저궤도 위성통신망 구축 프로젝트인 IRIS2를 최종 승인해 2027년까지 24억 유로(약 3조4000억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한국도 저궤도 위성 시장을 선점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대표적으로 한화시스템이 2021년 영국 원웹에 3억 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기간 통신 사업자 등록을 마치며 우주 인터넷 사업을 준비 중이다.

전문가들은 시장점유율 1%에 불과한 한국의 우주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정률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학과장은 “우주 시장은 로켓 발사에서부터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모든 과정에서 기술력이 하나라도 부족하면 수익률을 해치는 사업이 된다”며 “지상으로 보내온 데이터를 활용하는 다운스트림까지 생태계 전반에 대한 투자와 기술 성장이 다각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