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미국 천재들의 우주전쟁…한국은 밥그릇 전쟁[EDITOR's LETTER]
지난 여름 충청북도 제천 어느 리조트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어릴 때 보던 하늘보다 별이 더 많았습니다. 뭔가 이상했지요. ‘밤하늘을 제대로 안 보는 사이에 별이 늘었나?’란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우주정거장, 희미한 위성들이 불빛이 없는 시골에서 별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하늘을 지저분하게 만든 주인공은 아시는 대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입니다.

그가 쏘아올린 저궤도 인공위성은 통신용입니다. 기지국이 없어도 통신을 가능케 하는 위성. 이 위성이 전쟁에 활용돼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러시아가 해킹으로 우크라이나 통신망을 붕괴시켰을 때 머스크는 재빨리 인공위성을 통한 통신을 제공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전열을 정비하고 반격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머스크가 쏘아 올린 위성은 우주 전쟁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렸습니다. 아마존, 애플 등 빅테크는 물론, 많은 국가들이 저궤도 위성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머스크란 사람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아공에서 태어나 왕따에 학폭까지 당했던 미국 이민자가 전기차 시대를 열더니, 하늘의 모양을 바꾸고, 사람들을 우주로 끌어들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화성으로 지구인들을 이주시키고, 사람의 머리에 칩을 꽂아 인위적 진화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었겠습니까.

왜 그가 화성을 꿈꿀까 궁금했습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책에 일부가 나와 있었습니다. 머스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먼저 기술발전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미국이 달에 착륙한 이후 새로운 발전이 없었다는 점,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건설했지만 그 기술은 전수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또 소행성 충돌이나 핵전쟁으로 지구가 파괴됐을 때 인류문명 및 의식을 보존할수 있는 방법이라고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머스크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은 인간의 탐험 정신이 응축된 곳이며 모험가들의 땅입니다. 그런 정신을 미국에서 되살려야 하며, 가장 좋은 방법이 화성 식민지 개척에 착수하는 일입니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지만 고무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이어 인간이 위대한 꿈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를 아침에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머스크에 대해 페이팔 마피아 중 한 명인 맥스 레브친은 “사람들을 흥분하게 하는 머스크의 가장 큰 능력 중 하나는 자신의 비전을 하늘이 내린 명령처럼 전달하는 것”이라 평하기도 했습니다.

탐험 정신, 모험가들의 땅, 위대한 꿈, 비전과 소명 이런 말들을 들으면 왠지 요즘 한국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는 먹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체도 명확지 않은 카르텔을 구실로 내일을 먹여 살릴 R&D 예산을 줄여버렸습니다. 그 여파로 포항 방사광가속기가 운영중단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기기는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킨 뒤, 발생하는 빛을 이용해 부품소재와 신약개발 등에 활용됩니다. 예산 삭감으로 전기료 30억원이 부족해 시설을 세울 처지에 놓였습니다.

항공우주산업으로 넘어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집니다.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지만 우주항공청 설립은 여러 가지 문제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직의 미션과 우주청장의 막대한 권한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후발 산업국가입니다. 그래서 한 분야, 한 분야 선진국들을 추격하고 때로는 추월했습니다. 육해공 가운데 조선(바다)은 1980년대에 세계 1위가 됐고, 자동차(육지)는 2010년대에 세계 5대 강국이 됐습니다. 이제 항공우주가 치고 나갈 차례입니다.

소프트웨어와 우주산업 등 21세기 산업은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 같은 천재가 이끈다고 합니다. 또 시간과 속도의 경쟁이기도 합니다. 순식간에 판도가 바뀌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천재가 나와도 쉽지 않은 게 우주 전쟁입니다. 선진국들은 화성 간다고 난리일 때 한국은 밥그릇 투쟁을 하도록 만든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김용준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