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0월 20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한국국제경제학회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정책세미나에 참석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한국의 무역 지도가 격변하는 가운데 ‘금융 수출’이 성장모멘텀이자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내 은행산업은 세계 100대 은행에 6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산업·기업은행)이 포함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세계 무대에서 한국 금융의 위치는 아직 낮은 수준이다.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점포 수와 자산, 이익 규모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지만 해외 진출은 아시아 지역(68%)과 은행업권(42%)에 집중돼 있다.
한국의 전체 서비스 수출에서 금융서비스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3.6% 수준으로, 영국(21.6%), 미국(21.6%), 독일(9.0%), 일본(8.0%)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또 국내 증권사의 해외 점포 수익 비중(2022년 말 기준 5.3%)이 글로벌 IB에 비해 10분의 1 수준으로 크게 낮고 자기자본 등 규모 면에서도 아시아 10위권 내에 전무하다.
전문가들은 이제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 수출의 대안 중 하나로 금융 수출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부위원장은 “글로벌 시장의 크기는 무한대에 가깝고 편익의 한계가 없다”며 “그런 측면에서 아웃바운드(Outbound), 즉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진출과 해외금융투자가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 수출의 선두주자이자 본보기는 미래에셋그룹이다. 미래에셋은 박현주 회장이 2018년 4월 글로벌투자전략고문(GISO)으로 취임한 이후 해외사업에 집중하며 4년여 만에 금융수출로 1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박 회장의 성공전략은 인수합병(M&A)을 통한 성장과 국외 현지법인의 자체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미래에셋이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은 지난 2003년 홍콩에 자산운용사를 설립하면서부터다. 당시 박 회장은 “원화가 국제통화가 아니어도 현지에 나가서 현지 통화로 돈을 벌 수 있다”며 원화로 달러화를 벌어들이는 금융 수출론을 설파했다. 현지에 법인을 설립해 외국인들 자금을 중개·운용해주면서 돈을 벌면 금융이 수출산업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후 홍콩을 시작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중국, 브라질, 인도, 베트남 등 16개 지역에서 39개의 현지법인 및 사무소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졌다.
이 중에서도 미래에셋증권은 해외 현지 법인 10개, 사무소 3개 등 가장 많은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한 국내 1위 증권사다. 특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법인의 성공이 뚜렷하다. 2022년 호찌민 증권거래소(HoSE) 발표에 따르면 베트남 시장점유율 기준으로 미래에셋 증권은 4위다. 3위와의 격차는 단 1.88%포인트다.
인도네시아 법인은 현지 업계 최초로 HTS(홈트레이딩시스템),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를 개시했다. 또한 인도네시아 최초 펀드몰(온라인 펀드판매) 론칭과 비대면 계좌 개설 서비스를 열며 지난 2020년 현지 주식시장 시장점유율 1위로 도약하며 인도네시아 최고의 리테일 증권사로서의 위상을 달성했다.
미래에셋그룹이 현재 주력하는 곳은 인도다. 지난 10월 23일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한 미래에셋은 스와럽 모한티(Swarup Mohanty)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 대표를 부회장에 발탁했다. 외국인이 부회장에 오른 것은 그룹 최초로, 박현주 회장의 인도 공략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래에셋그룹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중심으로 인도 시장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1월 박현주 회장은 인도법인 15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해 “인도는 높은 교육열과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높은 자존감 그리고 영어 공용화 등의 환경으로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을 갖춘 나라”라며 인도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뿐 아니라 미래에셋증권 또한 2017년 10월 인도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이듬해 2월부터 본격적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인도를 K-금융의 신흥 투자처로 점찍은 곳은 미래에셋뿐이 아니다. KB, 삼성, 키움 등 국내 주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이 핵심 투자처로 인도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인도가 이른바 ‘넥스트 차이나’ 국가로 부상하면서 인도 증시와 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있다.
단, K-금융이 가야 할 길은 타 산업에 비해 비교적 험난하다. 업의 특성상 법과 제도 그리고 규제 면에서 차이가 많으며, 불확실·불명확한 제도로 인해 법규 리스크가 크고 국가에 따라 시장 인프라가 미비해 위험과 불확실성이 잔존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도 K-금융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금융 국제화 대응단’을 신설하고, 7월 금융회사 해외진출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선 방안을 발표하는 등 우리 금융산업의 국제화를 중점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 해외 진출 관련 정보 공유 인프라를 확충하고, 현지 금융당국과의 소통을 지원하는 등 체계적으로 지원 절차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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