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후 부실 정리한 임병용 부회장, ‘품질 위기’ 직면
현장·소통 강점인 오너家 4세, 신사업·책임경영으로 새 시대 이끌까
과거 미국의 포드, 일본의 도요타 등도 위기에 오너들이 구원투수로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경험으로 얻은 인사이트와 경영능력 등을 기반으로 회사를 위기에서 구했다. 하지만 허윤홍 사장이 이끌어갈 GS건설의 미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그의 경험과 능력이 제대로 된 검증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10여 년 맡겨놓는 과정에서 고착화된 기업문화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조직원들의 추락한 사기를 올려놓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위기 정면돌파 통한 승계 시도는 긍정적허윤홍 사장은 전임 CEO 임병용 부회장과 성격부터 업무 스타일 등 전반적인 측면에서 전혀 다른 인물로 알려졌다. 검사 출신인 임 부회장이 카리스마 있고 결단력이 강한 ‘관리형 리더’라면, 허 사장은 건설 현장을 비롯한 사내 각종 분야에서 많은 직원과 협업해온 ‘현장형’ 또는 ‘소통형’라는 게 GS건설 측 설명이다.
업계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오너의 책임경영이다.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로 GS건설이 위기에 닥친 상황에서 가업 승계를 준비해온 허 사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위기가 수습된 이후 편안한 상황이 아니라 수많은 숙제들을 직접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최근 불거진 주택 품질 문제를 해결하고 공들여 쌓아온 브랜드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비용 관리’보다 ‘품질 우선주의’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오너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젊다는 것도 이런 시기에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1979년생인 그는 건설사 CEO로서는 젊은 나이다. 전임 임병용 부회장뿐 아니라 오세철 삼성물산 사장, 마창민 DL이앤씨 사장 등 현직 대형 건설사 CEO 대부분이 1960년대 생이며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은 1957년생이다.
그동안 GS건설 주변에서는 “전사적인 위기 상황에서 조직을 쇄신할 동력으로써 건설을 아는 젊은 피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허 사장 등판설이 지속적으로 나왔던 배경이다.
경험과 결단력은 미지수허 사장은 2002년 GS칼텍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05년 GS건설에 대리로 입사한 뒤 약 18년간 ‘건설맨’으로 살아왔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대학원 석사(MBA) 과정을 거쳤던 시기를 제외해도 나이에 비해 사내 경력은 긴 편이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플랜트기획팀과 재무팀 소속으로서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 건설업의 기본인 국내외 주택, 인프라, 플랜트 현장에서 근무했다.
이처럼 사내에서 여러 팀, 여러 직원과 일했지만 허 사장에 대한 소문이나 특별히 알려진 내용이 없었다. 그가 성향상 튀는 행동을 하는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오랫동안 동업을 했던 GS와 LG그룹 오너가에선 자제들이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지양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도록 교육하는 분위기”라며 “LG 구광모 회장도 이제 45세에 불과한 젊은 그룹 총수이지만 늘 점잖은 것은 가풍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허 사장은 일반적인 건설업계 CEO와 달리 회의에서 일방적으로 명령하기보다 듣고 소통하는 성격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는 임직원들과 소탈하게 어울리기도 했다. 말단 직원까지 함께 허름한 선술집에 방문해 시간을 보내는 등 사례도 여럿이다.
하지만 18년간 회사에 근무하면서 보여준 성과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기업 인수를 통해 몸집을 불린 신사업 분야를 제 외하면 ‘보여준 것이 없다’는 지적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결단력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온다. 과감하게 결정하는 스타일이 아닌 겸손함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현재 GS건설이 맞닥뜨린 상황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허 사장의 취임 후 첫 행보는 현장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허 사장은 CEO 인사가 나자마자 현장 세 곳에서 현장소장 브리핑을 듣고 직원들을 만났다”며 “그리고 바로 출국해 호주 프로젝트에 들른 뒤 사우디를 방문하는 등 현장 위주로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GS건설이 당면한 문제전임자들에게는 항상 공과 과가 존재한다. 전임 임 부회장은 건설업 경험은 없었지만 GS건설의 자이를 1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장기집권’의 폐해는 결국 품질 문제로 이어졌다.
임 부회장은 2009년 GS건설에서 첫 건설사 경력을 시작한 뒤 금융위기 이후 흔들리던 GS건설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들었다. 당시 GS건설은 해외 플랜트사업에서 대규모 부실이 불거지며 직원 임금이 밀릴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임 부회장은 비용 관리와 주택사업 강화, 두 가지 방침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실적을 개선했다.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공인회계사와 사법 시험을 통과한 그는 꼼꼼한 관리자였고 판공비 등 비용 관리에 힘쓰는 한편, 수익을 높이는 데 적임자였다. 또 임 부회장의 경영방침으로 인해 GS건설은 대형 건설사 중 주택부문을 주요 사업으로 성장시킨 첫 회사가 됐다.
GS그룹은 그를 믿고 오랜기간 CEO 자리를 맡기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국에 주택 프로젝트가 늘면서 수익 역시 늘었지만, 품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현장에서도 준공기한 및 비용 관리에 힘쓸 뿐 설계나 시공에 대한 현장 엔지니어들의 목소리는 외면 당했다. 직원들의 불만도 쌓여갔다. 주택 현장의 인력부족은 외부 경력직 충원을 통해 채워졌지만, 일관된 품질 유지에 도움이 안 됐다는 평가다. 경쟁사 대비 연구개발(R&D) 투자가 적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올해 4월 인천 검단에서 사고가 터지면서 임 부회장이 키운 자이 브랜드가 위기를 맞게 됐다. 업계 전문가는 “GS건설 외에 다른 건설사들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설계나 공사비 문제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하지만 기술자가 주차장 기둥과 슬래브를 받치는 전단보강근을 빼먹은 지 몰랐던 부분 등은 GS건설이 현장관리를 잘못했다”고 밝혔다.
조직개편이 의미한 것GS건설은 CEO 선임 전인 10월 13일 조직을 개편했다. 본부별 자율경영 체제가 핵심이다. 사업본부는 총 10개로 경영지원본부, 라이프테크본부, 재무본부, 조달본부, 호주사업본부, 건축주택사업본부, 그린사업본부, 플랜트사업본부, 신사업본부 등이다. 각 본부에선 자기 분야에 따른 사업기획 및 마케팅 업무를 직접 수행함으로써 제품과 서비스 품질 강화에 힘쓰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임원인사를 통해 상무 17명을 새로 선임했다. 현장 실무진과 40~50대 젊은층에 집중됐다. 이 중 40대 상무는 총 4명으로 김응재 호주인프라수행담당, 김병수 주택영업2담당, 기노현 프리팹사업그룹장, 유영민 경영전략그룹장 등이다. 유영민 경영전략그룹장은 세계적 컨설팅 그룹인 맥킨지 출신으로 외부에서 발탁된 허 사장 측근으로 알려졌다.
국내 주택에 집중됐던 사업구조는 해외사업 및 신사업으로 분산될 전망이다. 유학파인 허윤홍 사장은 해외 네트워크가 풍부하고 CEO 선임 전까지 미래혁신대표를 맡을 만큼 정보기술(IT) 접목과 신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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