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사우디 영빈관을 방문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함께 차량에 탑승해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사우디 영빈관을 방문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함께 차량에 탑승해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국빈방문을 맞아 함 약 27조원(202억 달러) 규모의 경제 성과를 올렸다.

사우디·카타르 방문에 맞춰 139개사가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해 총 63건의 계약과 MOU를 따낸 결과다. 이번 경제사절단 규모는 지난 4월 미국 경제사절단(122개사)보다 많았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사우디에서 약 21조원(156억 달러), 카타르에서 약 6조원(46억 달러)의 양국 경제협력을 위한 계약과 MOU가 체결됐다.

지난해 11월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방한을 계기로 양국 기업이 체결한 39조원(290억 달러)의 MOU, 아랍에미리트(UAE)의 300억 달러 투자 약속을 합치면 ‘중동 빅3’에서 모두 792억 달러, 한화로 107조원 규모의 경제협력이 체결됐다.

향후 사우디의 막대한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한 네옴시티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국내 기업의 참여가 늘어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MOU는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현실화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또 중동의 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어 숫자 그대로 성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 반응도 미지근했다. 몇 조원짜리 수주 계약이 발표되는 데도 해당 기업의 주가가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기업들이 기존에 수주한 계약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다음에 오면 사우디에서 만든 현대차 타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23일 사우디 네옴시티 내 현대건설 지하터널 건설현장을 방문했다./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23일 사우디 네옴시티 내 현대건설 지하터널 건설현장을 방문했다./연합뉴스
이번 순방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허태수 GS 회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기업인 130명이 동행했다.

사우디가 5000억 달러(약 677조원)에 이르는 네옴시티 건설에 속도를 내면서 건설은 물론, 에너지·전력·인공지능(AI)·이동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주를 노리고 기업인들이 대거 출동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사우디와 경쟁 중인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 활동을 위한 아프리카 방문 일정 때문에, 구광모 LG 회장은 그룹 내 중요 일정으로 이번 순방엔 동행하지 않았다.

우선 현대차가 중동 지역 중 처음으로 사우디에 전기차 생산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현대차와 사우디 국부펀드는 4억 달러(약 5400억원) 규모를 합작 투자해 킹압둘라 경제 단지에 자동차 조립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 기업의 중동 내 첫 전기차 생산기지로, 2026년부터 연간 5만 대의 전기차와 내연기관 차량 양산이 목표다.

이번 순방에서 사우디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가 윤 대통령을 승용차 옆자리에 태우고 운전하며 이동하던 중 “다음에 오면 사우디에서 생산한 현대 전기차를 함께 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지 기업과 손잡고 수소 모빌리티 생태계도 조성한다.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를 양산한 현대차는 사우디 버스운송 업체에 수소 모빌리티 보급 확대를 위한 기술 서비스와 인적 자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사우디는 원유 중심 산업 구조를 바꾸기 위해 수소차·전기차 등 미래 친환경차로 전환을 추진 중이다. 네옴시티를 위한 초석 다진 건설사
'27조원' 따냈다…중동 '오일머니' 빨아들인 경제 외교
건설사는 ‘제2 중동붐’에 필적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아직 협약 단계지만, 약 34조원(25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네옴시티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네옴시티는 90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하는 ‘더라인’을 비롯해 총 4개 프로젝트로 구성됐다. 여기에 소요되는 총공사비는 5000억 달러(약 67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기업은 이 중 250억 달러(약 34조원) 규모 터널, 건축 구조물, 항만 등 인프라 구축 사업 입찰에 참여했고, 수주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침체, 금리인상 등의 영향으로 국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던 국내 건설사들은 중동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사우디에서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은 3조1000억원(24억 달러) 규모의 가스플랜트를 수주했다. 이번에 수주한 ‘자푸라2 가스플랜트 패키지2 프로젝트’는 아람코가 중동 최대 셰일가스 매장지인 자푸라 지역에서 추진하는 플랜트 건설 사업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포함해 올해 현대건설이 사우디에서 참여한 신규 프로젝트만 10조원에 달한다. 현대건설은 올해만 아미랄 프로젝트(6월), 네옴-얀부 초고압직류송전선로(8월) 등을 수주한 바 있다.

삼성물산은 사우디 투자부(MISA)와 모듈러 관련 합작법인을 설립한다. 네옴시티 내 첨단산업단지인 ‘옥사곤’ 주택을 모듈러 공법으로 짓겠다는 목표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지난해 네옴 더라인 지하터널 첫 번째 구간을 공동 수주한 만큼 향후 더 많은 성과가 기대된다는 전망이 나온다.

DL이앤씨는 사우디 담수청과 담수화 플랜트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국전력·포스코·롯데케미칼은 아람코와 블루암모니아 생산협력 협약을 맺었다.

IT기업의 성과도 있었다. 네이버는 지난 3월 도시농촌주택부와 체결한 디지털 전환 협력 MOU를 기반으로 사우디 주택공사와 약 1억 달러 규모의 디지털트윈 플랫폼 구축·운영 계약을 체결했다.

K-푸드도 중동으로 갔다. 경제사절단으로 기념식에 참여한 SPC그룹은 빵집 브랜드 파리바게뜨의 사우디 등 중동 진출을 위해 현지 유력 기업인 갈라다리 브러더스그룹과 조인트벤처 MOU를 체결했다. 2033년까지 사우디·아랍에미리트·카타르 등 중동·아프리카 12개국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농심은 중동 내 K-스마트팜 시범단지 구축을 위해 현지 대표 농산물 재배 및 유통 기업인 사우디 그린하우스와 컨소시엄 형태로 MOU를 체결했다. ‘조선 잭팟’ 터진 HD현대
카타르에서는 HD현대중공업과 카타르 국영기업이 총 39억 달러(약 5조2570억원)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7척의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LNG 운반선 건조 계약은 단일 계약으로는 한국 조선업계 역대 최대 규모다.

156억 달러 규모의 수출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번 사우디 순방 성과까지 포함하면 총 202억 달러(약 27조2200억원)대의 사업 기회가 새로 열린 것이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토대로 ‘탈석유 시대’를 준비하는 사우디·카타르와 중동에 진출해 새 기회를 모색하려는 한국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정부는 윤 대통령의 사우디·카타르 국빈방문 후속조치에 즉각 착수해 MOU와 상담 실적 등이 빠른 시일 내 구체적인 수출과 수주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