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기사 감소하는 데 ‘일하는 방식 개혁’ 시행으로 인당 근무 시간도 줄어
일본 정부, 트럭 의존도 줄이고 자동화 업무 확대하는 데 사활 걸어
이 고속도로에 내년부터 완전 무인 자율주행 트럭이 달리게 된다. 적어도 일본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그렇다. 지난 6월 일본 정부는 2024년 중 신도메이고속도로 누마즈인터체인지에서 하마마쓰인터체인지 구간까지 완전 무인 자율주행 트럭 전용로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누마즈~하마마쓰가 무인 트럭 전용도로 후보지로 선정된 이유는 상대적으로 직선이 계속되는 구간이기 때문이라는 게 일본 정부의 설명이다.
고속도로뿐만이 아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공상과학 소설에서 나올 법한 수송 대책들이 내년 4월 시작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운전기사 대신 화물을 트럭에 적재하는 자동 지게차와 물류시설 및 트럭을 오가는 무인운반차량(AGV) 도입 등이 비슷한 사례다.
그런가 하면 진시황 시대에서나 가능했을 법한 산을 움직이고 바다를 메우는 식의 대역사도 이뤄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7년 이내에 선박과 철도 수송량을 각각 지금의 두 배씩 늘리기로 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철도의 규격과 항만의 구조를 뜯어고치고 있다.
철도 화물수송회사인 JR화물은 기존 열차보다 높이를 26㎝ 낮춘 저상 화물열차를 개발했다. 기존의 화물열차보다 바퀴를 작게 만들어 높이를 낮췄다. 대형 컨테이너 선박에서 하역한 컨테이너를 바로 열차에 실어서 일본 전역으로 보내기 위한 시도다.
국제 해상운송용 컨테이너 대부분은 크기가 높이 2.9m, 길이 12.2m로 정해져 있다. 일본 독자 규격의 철도용 컨테이너보다 30cm 정도 높다. 이 때문에 국제 컨테이너를 기존의 화물철도 객차에 실어서는 터널을 지날 수 없었다. 해외에서 실어 온 컨테이너를 다시 일본 규격의 컨테이너로 옮겨 싣거나 트럭으로 날라야 했다.
그런데 화물열차 높이를 26cm 낮춤으로써 국제 컨테이너를 항만에서 그대로 철도에 옮겨 싣는 게 이론상 가능하게 됐다. 일본 정부는 연내 JR화물과 공동으로 먼저 수도권과 동해안 연안 도시를 잇는 노선에 저상용 화물철도 운행 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항만 하역시설도 가꾼다. 해외의 무역항은 컨테이너선 접안 시설까지 화물철도의 연장선로가 깔려 있다. 덕분에 크레인이 컨테이너 선박에서 내린 컨테이너를 바로 철도에 옮겨 실을 수 있다. 반면 일본은 항만의 연장선 정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항구에서 일단 트럭에 컨테이너를 실은 뒤 근처 화물역까지 옮기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다.
트럭 크기도 바뀐다. 지난 9월 말 일본의 상용차 전문회사인 이스즈자동차는 3.5톤 미만의 소형 디젤트럭을 내년 여름 발매하겠다고 발표했다. 경트럭 및 소형트럭과 중·대형 트럭 사이 크기의 트럭을 개발하는 이유는 대형 면허가 없어도 운전할 수 있는 트럭을 보급하기 위해서다. 2017년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일본에서 보통 면허로 운전할 수 있는 트럭은 3.5톤 미만으로 제한돼 있다. 3.5~7.5톤인 중형 트럭을 몰려면 준중형 면허를 새로 따야 한다. 준중형 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 때문에 택배회사 등 물류 기업들은 파트타임 근로자나 젊은 아르바이트생들도 별도의 면허 없이 몰 수 있는 트럭의 출시를 요구해 왔다.
터널 높이에 맞추려 기차를 낮게 만들고,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을 늘리려 트럭의 크기를 줄이는 일본의 시도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를 보는 것 같다. 통행자를 자신의 침대에 눕힌 뒤 침대보다 짧으면 늘리고, 길면 잘라서 죽였다는 그리스신화의 강도 얘기다. 일본이 얼마나 쫓기는 상황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이 시급하게 시도하는 대책들의 공통점은 트럭, 더 정확히는 트럭 운전기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다. 일본은 지금 ‘물류 2024년 문제’로 비상에 걸려 있다. 물류 2024년 문제란 내년 4월부터 트럭 운전기사가 부족해 택배를 포함한 물류의 상당 부분이 멈추는 사태를 말한다. 일본의 주 52시간 근무제도인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 법이 시행됨에 따라 내년 4월부터 트럭 운전기사의 연간 잔업시간이 960시간 이내로 제한되면서 생기는 변화다. 가뜩이나 일할 사람이 없는데 그나마 있는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도 줄어드는 셈이다.
‘물류 2024년 문제’는 갑작스럽게 현실로 다가온 인구감소의 역습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문제로 꼽히는 ‘재난’이다. 이 문제가 일본 경제와 일본인의 일상에 주는 충격은 예상보다 훨씬 크다. 26조 엔(약 234조원) 규모인 일본의 물류시장에서 트럭이 차지하는 비중은 16조 엔으로 약 60%에 달한다. 금액이 아니라 무게 기준(2018년)으로는 총 47억2700만 톤의 물류 가운데 92%인 43억3000만 톤을 트럭이 담당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대로라면 6개월 뒤 트럭 운전기사 14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게 되면 화물 수송능력이 2019년보다 14.2%(4억 톤 상당) 줄어든다.
미래는 더 암울하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2030년이면 일본 전역의 화물 35%가 멈춰 서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호쿠와 시코쿠 같은 국토의 주변 지역은 화물 40% 이상이 트럭 운전기사가 없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일본의 우체국인 일본우편은 올해 10월부터 소포(60 사이즈 기준) 가격을 820엔(약 7360원)으로 10엔 올렸다. 2014년 610엔이던 소포 가격이 34% 올랐다. 2018년 이후에만 세 차례 가격이 인상됐다.
일본 최대 택배회사인 야마토운수는 올해 6월부터 시코쿠와 산인지역을 익일 배송 지역에서 제외했다. 시코쿠나 오카야마현에서 온라인 쇼핑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빨라야 다다음 날에야 물건을 받을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온라인 쇼핑몰의 ‘무료 배송’도 줄일 방침이다. 인구밀도가 적은 지역은 아예 낙도 취급을 받으면서 배송료가 오르고, 배송 기간은 늘어나게 된다.
일본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 3월 말 물류 관계 장관회의에서 “6월 초순까지 긴급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정부 관계 부처와 화주, 물류업체들이 한데 모인 전문가 회의를 설치하고 지난 6월 2일과 10월 6일 두 차례에 걸쳐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모빌리티 시프트(Mobility Shift)’로 요약된다. 철도와 선박의 비중을 늘리고, 한정된 숫자의 운전기사가 법으로 정해진 근무 시간 동안 일하면서도 최대한 많은 화물을 나름으로써 트럭과 장거리 수송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10월 6일 발표한 ‘물류 개혁 긴급 패키지 대책’에는 내년 4월부터 부족할 운전기사 14만 명의 업무량을 메울 방안이 담겼다. 일본 정부는 ▲트럭의 적재시간을 줄여 4만5000명분 ▲화물 적재율 향상으로 6만3000명분 ▲철도와 선박 수송량 증대로 5000명분 ▲택배의 재배달률 감소를 통해 3만 명분 등 총 14만3000명분의 수송량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10년 이내에 선박과 철도 수송량을 각각 1억 톤과 3600만 톤으로 2020년의 두 배까지 늘리기로 했다. 물류회사에 상품 운송을 맡기는 화주, 즉 제조업체에는 ‘최고물류경영책임자(CLO)’ 직책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CLO는 자사의 물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만들고 이를 실행하도록 관리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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