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하이닉스, 美정부의 반도체 장비 중국 반출 규제 완화로 숨 돌려
포기하기 힘든 對中 비즈니스, 반도체 매개로 풀릴까
더구나 중국 내 순수 민수용 판매비율(85%)을 충족시킬 경우 레거시 반도체 설비를 확충할 수 있게 됐다. 종합하면 일부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중국(시안, 우시)에서 가동 중인 국내 반도체 업체는 생산을 확대하거나 반도체 공정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됐다.
한편 미국은 고성능 컴퓨팅에 사용되는 첨단 그래픽카드(GPU)에 대한 규제 만큼은 대폭 강화했다. 민간 데이터센터 등 민수용 칩에 대해서는 규제하지 않되, 우회 수출 방지를 위한 규제 대상 및 지역을 확대한 것이다. 또한 화웨이 최신 스마트폰(Mate 60)에 장착된 7나노 반도체칩 생산에 사용되는 심자외선(DUV) 장비가 중국으로 반입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미국산 기술이 포함된 DUV 장비가 중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현재 미국의 중국 견제는 첨단기술 분야에 집중돼 있고, 첨단 반도체를 제재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즉 미국이 언급해 온 이른바 ‘소수 품목을 대상으로 한 고강도 규제(Small Yard, High Fence)’ 전략이 적용되고 있다. 이 전략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이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많은 품목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한 정책과 대비된다.
경제안보란 중요한 문제지만, 규제는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경제손실을 줄이면서 경제안보 정책의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이번 조치에서 미국은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만 중국 내 VEU 요건을 완화해 주었다. 미 상무부는 총 11개 기업에 대해 VEU를 지정하고 반입이 허용된 반도체 장비와 소프트웨어(SW)를 명시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 기업이 속한 이들 11개 회사 중 유독 국내 2개 업체에 대해서만 극자외선(EUV) 장비를 제외한 모든 미 상무부 수출관리규정(EAR) 적용 대상 반도체 장비와 SW를 중국 지정 사업장에 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점은 사실 ‘의외’의 조치다. 이는 굳건한 한·미 동맹을 고려한 결과인 동시에 글로벌 반도체 수급 교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업계의 입장을 미 당국이 수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기술패권 경쟁의 핵심이라는 품목적 특성으로 인해 국내 반도체 업체는 대중국 비즈니스 전략 수립에 애로가 컸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 기조 자체가 바뀌지 않겠지만, 제한된 요건하에서 반도체 생산 설비를 가동할 수 있게 된 것은 한·중 관계 복원에도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최근 한·중 경제교류가 활성화되면서 경색된 양국 관계가 변곡점을 맞고 있다. 10월 17일부터 이틀간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일대일로(一帶一路) 국제협력 포럼’에 우리나라는 해양수산부 장관과 국내 기업이 참석했다. 11월 3~4일 일본에선 한·중·일 환경장관회의가 열려 황사 관련 공동합의문을 채택했다. 11월엔 ‘한·중 경제협력교류회’도 개최될 예정이다. 11월 11~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으며, 현재 한·중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과 한·중·일 정상회의 일정 또한 조율하고 있다.
지난 5월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디리스킹(탈위험)’을 대중국 정책 기조로 채택했다. 외국 기업의 중국 시장 진입 여건이 악화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중국 시장을 포기하기 어렵다. 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디리스킹을 견지해야 하며, 우리 정부는 정치적 요인이 국내 기업의 중국 비즈니스를 훼손하지 않도록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해야 한다. 반도체는 중국이 우리나라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품목이므로 국내 기업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 지속은 경색된 한·중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정상회의를 통해 경색된 한·중 관계가 풀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인교 전략물자관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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