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왼쪽부터) 박상수 (주)두산 지주부문 CSO 신산업전략팀 수석, 박상우 하이엑시엄 파트장,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 사진=두산·롯데지주
(왼쪽부터) 박상수 (주)두산 지주부문 CSO 신산업전략팀 수석, 박상우 하이엑시엄 파트장,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 사진=두산·롯데지주
미래 준비를 위한 정기 임원인사 시기가 앞당겨지는 가운데 재계 경영 승계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주요 그룹 오너 2~5세들이 초고속 승진으로 핵심 요직에 배치돼 차기 후계자로 눈도장을 찍는 모습이다.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뉴페이스’들도 속속 경영 수업에 돌입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 수업을 받던 1980~90년대생 오너 자녀들의 경영 참여가 본격화하고 있다”며 “젊은 오너들의 등장으로 이들을 보좌할 임원들의 평균연령도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과거보다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家 5세, 경영 수업 본격화

127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장수 기업인 두산에서는 5세가 공식적으로 그룹에 합류하며 눈에 띄는 변화가 포착됐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상수 씨와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의 장남 박상우 씨가 최근 지주사인 (주)두산과 그룹 수소에너지 담당 계열사 두산퓨얼셀에 각각 입사했다. 두 사람은 1994년생 동갑내기다.

박상수 씨는 지난 9월 (주)두산 지주부문 CSO(Chief Strategy Officer) 신사업전략팀에 수석 직급으로 입사해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룹 전반의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신사업을 기획하는 일을 맡는다.

박 수석은 2019년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2020년부터 올해 초까지 한국투자증권의 반도체 분야 전문 연구원으로 활약했다. 박 수석은 고(故) 박용곤 명예회장의 맏손자로 두산그룹 5세 중 장손이다.

2019년 박 명예회장의 영결식에서 영정을 들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 초 91억원어치의 두산 주식을 매입하며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박 수석이 보유한 두산 주식은 총 13만2380주로 지분율은 0.8%다.

박상우 씨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2018년부터 2022년 초까지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하다 2022년 두산그룹의 연료전지 제조사인 두산퓨얼셀 미국 법인인 하이엑시엄으로 옮겨 파트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산그룹은 차세대 에너지, 산업기계, 반도체·첨단 IT 등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5세들에게 미래를 책임질 신사업을 맡겨 경영 수업에 돌입한 것으로, 재계에선 두산그룹이 5세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고 본다.

두산그룹은 그동안 ‘형제 경영’과 ‘장자상속’의 원칙에 따라 고 박용곤 명예회장→박용성 전 회장→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박용만 전 회장 순으로 형제들끼리 회장을 넘겨주며 그룹을 운영해왔다. 3세인 박용만 전 회장이 2016년 조카이자 4세인 박정원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3세들의 형제경영에서 4세들의 사촌경영 체제로 넘어갔다.

60대 초반에 불과한 박정원 회장이 아직은 젊기에 20대 후반인 5세들을 두고 차기 후계구도를 논할 시기는 아니라는 게 재계의 시선이다.

두산그룹에선 박정원 회장과 박지원 부회장을 비롯해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부회장과 차남 박석원 (주)두산 사장, 박용현 전 회장의 장남 박태원 한컴 부회장과 차남 박형원 두산밥캣코리아 사장, 삼남 박인원 두산로보틱스 사장 등 4세 경영인이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윤홍 GS건설 사장. 사진=GS건설
허윤홍 GS건설 사장. 사진=GS건설
4세 허윤홍, GS건설 위기 구원투수로

GS건설에선 철근 누락 사태 속에 오너 4세인 허윤홍 사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의 아들로 GS그룹 4세인 허 사장은 임병용 부회장을 대신해 최고경영자(CEO)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철근 누락 사태로 회사가 유례없는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오너 일가가 나서 책임 경영을 강화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혁신을 가속화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허 사장은 1979년생으로 올해 44세다. 허 사장은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2002년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에 입사해 사원으로 활동하다가 2005년 GS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경영관리·플랜트기획·외주기획·재무팀 등에서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2012년 경영혁신·IR 담당 상무보를 시작으로 플랜트공사, 사업지원 등으로 역할을 확대했다.

201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신사업추진실장을 맡아 해외시장 개발, 수처리 사업, 모듈러 사업 등 미래 전략사업을 이끌었다. GS건설이 40대 CEO 체제를 맞아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신규 사업 강화에 힘을 실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왼쪽부터) 홍정국 BGF 대표이사 부회장 겸 BGF리테일 부회장, 조성민 한솔홀딩스 부사장,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상무. 사진=BGF·한솔홀딩스·삼양라운드스퀘어
(왼쪽부터) 홍정국 BGF 대표이사 부회장 겸 BGF리테일 부회장, 조성민 한솔홀딩스 부사장,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상무. 사진=BGF·한솔홀딩스·삼양라운드스퀘어
80·90년대생 경영 전면에…세대교체 가속

범삼성가인 한솔그룹은 3세 경영을 본격화했다.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증손자인 조성민 한솔제지 친환경사업담당 상무가 지주사인 한솔홀딩스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1988년생인 조 부사장은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뒤 2016년 한솔홀딩스에 입사했다. 2019년 주력 계열사인 한솔제지로 이동했으며, 2021년 임원으로 승진한 뒤 친환경 포장 소재 개발 등 친환경 사업을 주도해 왔다. 앞으로 지주사인 한솔홀딩스 부사장을 맡으며 그룹 전반의 전략 기획을 담당하며 3세 경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BGF그룹은 11월 2일 최고경영진 인사를 통해 오너 2세 홍정국 사장을 BGF 부회장 겸 BGF리테일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1982년생인 홍 부회장은 홍석조 BGF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홍 회장의 차남인 홍정혁 BGF 사장 겸 BGF에코머티리얼즈 대표에 앞서 차기 그룹 총수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평가다. 홍 부회장은 2013년 BGF그룹에 입사해 전략기획본부장, 경영전략부문장을 거쳐 2019년부터 지주사 BGF의 사장을 맡았다. 홍 부회장은 그룹 전반의 신성장 기반을 발굴하고, 편의점 CU의 성공적 해외 진출로 글로벌 역량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양식품그룹도 3세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너 3세인 전병우 전략기획본부장이 10월 31일 정기 임원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해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1994년생인 전 상무는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 부회장의 장남이자 창업주인 고 전중윤 명예회장의 장손이다.

전 상무는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 삼양식품 신사업본부장도 겸직한다. 지난 7월 그룹 이미지(CI) 리뉴얼을 추진했고, 9월 열린 비전선포식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 과학과 문화를 융합해 한 단계 더 도약하겠다는 기업 철학과 비전을 직접 전달했다. 직속 조직으로 라면 TFT팀을 신설해 ‘맵탱’ 브랜드의 출시 전 과정에 참여해 한 달 만에 판매량 300만 개를 돌파하는 성과를 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의 승진 여부도 연말 인사의 관전 포인트다. 롯데그룹 3세인 신유열 상무는 일본 롯데케미칼 임원에 이어 최근 일본 롯데파이낸셜 대표에 취임하며 한·일 양국 롯데사업에 두루 관여하고 있다. 지난 9월 신동빈 회장의 베트남 출장길에 함께 동행하는 등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신 회장이 최근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개장식 자리에서 대내외 관계자들에서 신 상무를 공식적으로 소개한 만큼 연말 인사에서 신 상무의 역할이 유통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LX MDI 부사장의 승진 여부도 관심을 모았으나 올해 인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구 회장은 1987년생인 구 부사장과 1990년생인 구연제 씨 등 두 자녀를 두고 있는데 구연제 씨는 아직 LX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만큼 구 부사장이 LX그룹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혀왔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