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경영 체제 본격화

사진=네이버 프로필 캡처
사진=네이버 프로필 캡처
HD현대 오너가 3세인 정기선 사장이 11월 10일 올해 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차기 총수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2021년 10월 사장 승진 이후 2년여만의 부회장 승진이다.

이날 인사 발표 직후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바뀐 정 부회장의 소속 직함이 눈길을 끌었다.

재계에서는 권오갑 회장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인사를 통해 지난 30여년간 전문 경영인 체제였던 HD현대가 정 신임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동안 HD현대의 주력 사업인 조선 부문을 이끌었던 가삼현 HD한국조선해양 부회장과 한영석 HD현대중공업 부회장은 오는 12월까지 활동한 뒤 2024년부터 자문역을 맡는다. 두 부회장의 용퇴로 정 부회장이 그룹내 유일한 '부회장' 직책을 갖게 됐다.

정 부회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다. HD현대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정몽준 이사장이 26.60%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으며, 정기선 부회장(5.26%)은 국민연금공단(7.55%)에 이은 3대 주주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 개막을 하루 앞둔 2023년 1월 4일(현지 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HD현대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정기선 부회장(당시 사장)이 기조연설 하는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 개막을 하루 앞둔 2023년 1월 4일(현지 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HD현대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정기선 부회장(당시 사장)이 기조연설 하는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정 부회장은 1982년생으로 대일외국어고를 졸업한 후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2009년 현대중공업 대리로 입사했다가 미국 유학길에 올라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13년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재입사했다.

2017년부터 현대중공업지주(현 HD현대) 경영지원실장, 현대중공업 선박·해양 영업본부 대표,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를 겸임하며 수소·AI·로봇 등의 신사업 발굴과 투자를 주도하며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 집중해왔다.

정 부회장은 주요 해외 사업도 총괄하며, 경영자로서의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2015년 사우디 국영회사 아람코와의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사업을 진두지휘하며 합작조선소 IMI 설립을 주도했다. 2021년에는 아람코와 수소 및 암모니아 관련 MOU 체결했으며, 2022년 11월에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직접 만나 양자 간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올해 초 CES 2023에서는 바다에 대한 관점과 활용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기반으로 하는 ‘오션트랜스포메이션’(Ocean Transformation)을 그룹의 미래전략으로 제시했다. 정 부회장은 2024년 초 열리는 CES 2024에서는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정 부회장은 2021년 10월 사장에 오른 뒤 세계 조선경기 불황으로 전사적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회사의 체질 개선과 위기 극복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 부회장의 사장 재임 기간 HD현대는 사명과 상징 체계(CI)를 변경하고 우수 인재를 영입하기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를 건립해 '판교 신사옥 시대'를 여는 등 변화의 폭이 컸다.

정 부회장은 2022년 12월 50주년 기념 비전 선포식 행사에서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업문화가 필요하며, 정말 일하고 싶은 회사, 직원들이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회사가 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HD현대는 자녀 유치원비 지원, 직장 어린이집 개원, 유연근무제 도입, 임직원 패밀리 카드, 사내 결혼식장 무료 지원 등 파격적인 복지 혜택을 도입해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조성해 가고 있다.

HD현대 관계자는 “정기선 부회장은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 속에서 기존 사업의 지속 성장은 물론, 새로운 50년을 위한 그룹의 미래사업 개척과 조직문화 혁신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이번 승진을 통해 재계에서 '1980년대생 부회장'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현재 1980년대생 오너가 중에서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1983년생),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1981년생), 홍정국 BGF 부회장(1982년생) 등이 40대 초반에 '부회장' 타이틀을 달았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