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불확실성 거치며 장기계획보다 지금의 경험 우선시 돼
초과저축 감소·임금상승 둔화에 긴축정책까지, 경기 전망은 어두워
미국 언론과 경제학자들이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에 시달리는 와중에서도 씀씀이를 줄이지 않는 미국인의 소비행태를 표현한 말들이다. 실제 미국인들은 3분기에 역대 최대 수준의 카드빚을 지고 있다. 미국인들이 여가생활에 대한 소비를 늘리면서 델타항공과 티켓마스터 등 여행, 공연과 관련된 기업들의 실적도 좋다.
월가에서는 △뜨거운 노동시장 △초과 저축 △코로나19로 인한 현재를 즐기려는 삶의 태도 확산 등을 이유로 꼽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 카드 연체율이 올라가고 노동시장에서 구인난이 조금씩 둔화하고 있는 점은 변수다. 미국인 3분기 카드빚 역대 최대
뉴욕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3분기 신용카드 부채는 2분기보다 4.6% 늘어난 1조800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뉴욕 연준이 2003년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다.
미국인들의 아낌없는 소비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델타항공은 강력한 여행 수요로 3분기 순이익이 11억1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6억9500만 달러)보다 약 60% 증가했다. 델타항공은 올해 마지막 3개월 동안에도 여행 수요가 견조할 것으로 예상하며, 2022년 같은 분기보다 매출이 9%에서 12%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랙스먼 내러시먼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일 실적 발표에서 “고객 수요는 여전히 강하다”며 “고객층의 어떤 소비 변화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어비앤비,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등 여행 관련 기업과 컴캐스트, 넷플릭스 등 미디어 기업도 실적이 좋았다.
미국의 9월 소매 판매는 7049억 달러로 한 달 전보다 0.7% 증가했다. 전문가 예상치인 0.2~0.3%를 크게 웃돌았다. 이 수치 발표 전 시장에서는 학자금 대출 상환 개시 등 요인으로 9월 소매 판매 증가율이 전달보다 크게 둔화할 거라고 내다봤지만,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소비행태
미국인들의 소비행태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인들은 아직도 내일이 없는 듯 돈을 쓰고 있다”며 “집 장만 또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저축보다 콘서트, 여행, 디자이너 핸드백을 위한 소비가 우선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제학자들 사이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경제학자들과 금융 자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거치며 직장과 건강, 일상생활과 관련한 장기계획에 불안함을 느낀 사람들이 일생에 한 번뿐인 경험 활동에 돈을 쓰고 있다고 진단했다. 웰스파고은행의 마이클 리어스 금융 자문 책임자는 현재 미국인들의 소비 패턴에 대해 “후회로 가득 찬 충동적 결정이 아니라 그 반대”라며 “하지 않았다면 후회할 것에 지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택가격 상승도 소비심리에 불을 지르고 있다. 2021년 이후 주택 융자 비용이 상승하면서 평균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가 연 8%에 육박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기존에 이미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은 구입 시점에 적용받았던 낮은 금리 덕분에 여분의 현금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뉴욕 연준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2023년 2분기까지 미국인들은 주택 자산을 활용하여 총 2800억 달러를 벌었고, 재융자를 통해 약 1200억 달러를 절약했다. 카드 연체율 올라가
다만 최근 들어선 신용카드,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등의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대출자들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 연준에 따르면 미국에서 9월 말 현재 미결제 부채의 약 3%가 연체 단계에 있으며, 이는 전 분기 2.7%보다 증가한 것이다. 카드 결제일이 돌아왔는데도 통장잔고 부족 등으로 카드빚을 갚지 못한 비중이 3%라는 뜻이다. 특히 이 같은 증가세는 30∼39세 사이의 개인들에게서 가장 두드러졌다.
뉴욕 연준은 이런 카드빚 증가의 배경으로 최근 몇 년간 대출기관의 발급 기준 완화와 대출기관과 대출자에 의한 과도한 대출, 계속된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속에서 가계 금융의 어려움 등을 꼽았다.
금융정보업체 뱅크레이트에 따르면 신용카드 연 이자율의 지난주 평균은 연 20.72%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전 최고 기록은 1991년 7월의 연 19%였다. 총 가계부채는 신용카드 부문의 증가로 전 분기 말보다 1.3% 증가한 17조29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말보다 2조9000억 달러 증가한 것이다.
팬데믹 기간 2조 달러에 달했던 미국인들의 초과 저축도 줄어들고 있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밥 슈워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초과 저축을 적게 가지고 있다는 것은 소비가 둔화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노동시장 둔화 움직임도
소비를 떠받치던 미국 고용시장도 최근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11월 12일(현지 시간)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10월 전체 근로자의 임금 상승률은 6.3%에서 5.8%로 둔화했다. 특히 임금 분포의 하위 25%에 속하는 근로자의 둔화 폭이 컸다. 이들의 임금 상승률은 같은 기간 7.2%에서 5.9%로 줄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여가 및 접객업의 평균 시간당 임금 상승률은 올해 1월 7% 수준이었지만 지난 10월 4.5%까지 줄었다.
미국의 지난 10월 소비자물가상승률도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다. 미 노동부는 10월 CPI가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했다고 11월 14일 발표했다. 9월 상승률(3.7%)은 물론 시장 예상치(3.3%)를 밑돈다. 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하고 산출하는 근원 CPI 상승률은 예상치(4.1%)보다 낮은 4.0%로 집계됐다. 근원 CPI는 연간 기준 2년 만에 최저다. Fed 긴축으로 침체 올 수도
미국의 경기 상황이 예상 이상으로 빨리 침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CPI 상승률이 둔화하긴 했지만 여전히 미국 중앙은행(Fed)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있어서다. 특히 미국인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물가가 잡히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악의 경우 Fed가 추가 긴축에 들어간다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경기침체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시간대가 11월 10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3.2%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월가에선 이 같은 기대치가 Fed가 인플레이션 목표인 2%로 회복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의 임금 혹은 상품·서비스 가격 책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인들이 인플레이션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잃는 경우다. Fed는 금리를 인상하거나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금리를 유지함으로써 통화 정책을 더욱 긴축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윌밍턴 트러스트 인베스트먼트 어드바이저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루크 틸리는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고 통제되지 않는다면 Fed는 당연히 조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Fed의 가장 강한 매파로 알려진 미셸 보먼 연준 이사는 지난주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열린 뉴욕 은행가협회 포럼에서 “들어오는 데이터가 인플레이션 진전이 정체되었거나 적시에 인플레이션을 2%로 낮추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경우 향후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지지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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