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대체재 아닌 AI·웨어러블 스마트기기 만남 관점으로 봐야

휴메인의 AI핀. (사진=휴메인 홈페이지)
휴메인의 AI핀. (사진=휴메인 홈페이지)
2007년 1월 9일.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애플 맥월드 2007 컨벤션에서 최초의 아이폰을 대중에 공개한 날이다. 역사는 이날을 단순히 또 하나의 스마트폰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폰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날로 기억하고 있다.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 스마트폰의 대명사는 림(RIM)의 블랙베리(Blackberry)였다. 당시 블랙베리는 하드웨어 자판을 장착해 손쉽게 이메일과 문자를 보낼 수 있어 마약베리(Crackberry)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따라서 앱과 터치스크린을 가지고 도전장을 내민 아이폰의 성공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중은 아이폰의 혁신적인 사용자 경험에 환호했고 결국 아이폰은 지금의 스마트폰 시대를 이끌게 됐다.

다양한 종류의 스마트폰 일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일일이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어 업무를 처리하거나 매장을 방문해서 물건을 사던 번거로운 일을 단지 손가락 터치 하나로 해결하게 된 것이다.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날로부터 16년이 지난 2023년 11월 9일, 새로운 형태의 스마트폰 이용자 경험을 내세우면서 스마트폰에 도전장을 내민 기기가 등장했다. 바로 AI핀(Humane AI Pin)이 그것이다. 화면 없는 웨어러블 스마트폰의 등장AI핀은 AI 스타트업 휴메인(Humane)이 개발한 새로운 형태의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다. AI핀은 전 애플 디자이너 임란 초드리(Imran Chaudhri)와 베서니 보조르노(Bethany Bongiorno)가 2018년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타이거 글로벌(Tiger Global), 오픈AI CEO 샘 올트먼 등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2억4000만 달러(3180억원)를 모금했다.

알려진 바로는 AI핀은 스마트폰을 대체하도록 설계된 699달러(93만원)짜리 웨어러블 기기다. 옷에 자석으로 고정되는 명함 크기의 정사각형 모양의 크기에 화면도 없고 앱도 없지만 다양한 AI 모델과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돼어 있다. 주로 음성 기반이며 정보 표시용 녹색 레이저 디스플레이를 사용하여 손바닥을 미니 스크린으로 활용한다.

AI핀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들, 즉 전화 걸기, 문자 보내기 및 받기, 사진 보기, 음악 듣기, 주문 알림 받기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심지어 손안에 아몬드를 집어 들면 칼로리를 표시하는 지능적인 기능도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2개의 배터리 팩이 장착돼 하루 종일 기기를 작동시킬 수도 있다. 배터리의 무게는 약 55g으로 테니스 공의 무게라고 한다. 이 기기에는 센서, 마이크 및 카메라가 장착돼 있고 녹화될 때마다 표시등이 켜지는 ‘신뢰등(Trust Light)’ 기능이 있어 개인정보보호 문제를 해결한다. 과거 논란이 되었던 구글 안경(Google Glass)의 약점을 피해 가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AI핀, 스마트폰 대체할 수 있을까이번 휴메인의 AI핀 발표 이후 수많은 외신들은 앞다투어 이 조그만 웨어러블 기기가 스마트폰을 대체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연일 쏟아 내놓고 있다. 이미 휴메인이 1년 동안 공개적으로 스마트폰을 대체할 새로운 기기를 만들고 있다고 공언해 왔기에 이미 예상한 반응이긴 하다.

개발사인 휴메인과 많은 언론사의 바람(?)대로 과연 이 조그만 웨어러블 기기가 스마트폰을 대체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을 대체하려는 시도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스마트 시계(smart watch)에서부터 가상(VR) 및 증강현실(AR) 헤드셋, 스마트 안경 등등. 심지어 인간의 뇌와 스마트폰을 연결하는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neural link) 프로젝트에서 전자 문신(digital tatoo)이 미래에는 스마트폰을 대체할 것이라는 빌 게이츠의 예측까지 다양한 관점과 기술들이 제시돼왔다.

웨어러블 기기인 스마트 시계는 가장 대표적인 스마트폰 대체 기기로 주목받은 제품이었다. 하지만 현재 활용도 면에서 볼 때 스마트 시계는 스마트폰의 대체 기기보다는 보완적인 액세서리로 간주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또 다른 대체 기기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혼합현실(XR) 기기로 현실과 가상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혼합현실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HMD)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보다는 증강현실 안경이나 가상현실 헤드셋을 통해 서로 의사소통하고 정보를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특히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손을 자유롭게 하는 혁신적인 사용자 경험으로 스마트폰을 쓸모없게 만드는 파괴적 혁신 제품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러한 메타버스형 기기는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얼굴에 착용하기에는 아직도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휴메인의 창업자도 스마트 안경 및 혼합현실 헤드셋과 같은 웨어러블 기기는 차세대 스마트 기기로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AI핀은 하루 종일 착용하고 있어도 거의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편리함을 내세우기에는 스마트폰 대비 기능적인 한계가 커 보인다. AI 비서 기능을 통해 음성으로 작동시킬 수 있지만 과연 선명하고 고화질의 스크린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손바닥 스크린에 만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휴메인은 스마트폰 대체재라는 정체성을 의식한 듯 AI핀을 스마트폰의 액세서리가 아닌 스마트폰에 연결할 필요가 없는 완전히 독립형 기기임을 내세운다. 실제로 AI핀은 이동통신사인 티모바일(T-Mobile)에 월 24달러의 데이터 구독료를 지불하고 별도의 전화번호가 부여된다.

다만 AI핀을 사용하려고 월 24달러의 구독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스마트폰 대체라는 관점에서 그리 좋은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이미 스마트폰 요금을 지불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동통신 서비스를 해지하고 화면 없는 AI핀으로 갈아타려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특히 휴메인은 안드로이드 기반 맞춤형 운영체제(OS) 코스모스(Cosmos)에 기반하다 보니 서비스 확장성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음악을 재생하려면 현재로서는 시장점유율이 2%도 안되는 타이달(Tidal)을 이용해야 하는 등 스마트폰의 성장을 견인했던 기존 앱 생태계를 지원하지 않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기기가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잘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레이저가 어둠 속에서 손바닥에 얼마나 정확하게 투사할 수 있는지, 소음이나 신호가 약한 지역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등등. 심장 박동기를 착용한 사람들은 배터리로 인해 잠재적인 자기 간섭 위험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명한 IT 잡지인 와이어드(WIRED)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AI핀이 스마트폰의 대체재보다는 새로운 기기를 위한 최신 장난감으로 보고 있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AI핀이 갖는 잠재적 의미그렇다면 AI핀에 대해 언론은 왜 이리 주목을 하는 걸까. 아마도 휴메인의 AI핀이 갖는 단기적 혁신보다는 미래의 잠재적 가능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바로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의미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점이다. 휴메인도 AI핀의 핵심 기능을 챗GPT에 대한 접근성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AI핀에 탑재된 코스모스 운영체제는 지능형 기술과 사용자 친화적인 상호 작용 및 보안 기능 등 AI시대에 맞게 설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AI핀의 AI믹(Mic)이라고 부르는 음성 도우미는 여러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활용한다. 이를 통해 AI핀을 길게 탭해 AI믹과 마치 AI 개인 비서처럼 지시하고 대화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AI핀은 당장 스마트폰 대체재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미래 AI 기반 스마트폰이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심용운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