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기본적으로 음식에 곁들여 마시는 술이다. 음식과 서로 잘 어울릴 때 진가를 발휘한다. 마리아주를 위스키나 소주 마실 때 곁들어 먹는 ‘안주쯤’으로 단정 짓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밥과 국처럼 독립적이면서도 서로의 맛에 상당한 상호작용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리아주가 잘 맞으면 놀라운 맛의 세계를 경험한다. 까다로운 미식가가 아니어도 가능하다. 와인 전문가 중에는 “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해 와인을 마신다”고 외치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정도.
반면 와인과 음식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속언이 적절하다. 이 경우 아까운 와인만 버리는 셈이다.
워킹맘 A 씨의 사례를 보자. 와인모임 총무를 맡고 있는 그는 항상 장소 선택이 고민이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회원들 입장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콜키지(손님이 자신의 와인을 가져오면 식당에서 잔을 제공하고 코르크를 따주는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식당인데도 극구 사양하는 곳이 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매장도 넓고 서비스도 좋아 나름 인기 있는 곳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한식 베이스 음식의 양념이 너무 강해 시너지 효과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와인 맛을 뚝 떨어뜨리기 때문. 알뜰파 A 씨의 아쉬운 심경을 짐작할 만하다.
이처럼 짜고 매운 음식 외에도 향이 강한 치즈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섬세한 와인 맛의 느낌을 잡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화이트,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리는 음식
화이트 와인 | 레드 와인 | ||
질감 | 어울리는 음식 | 질감 | 어울리는 음식 |
라이트 바디 | 혀 가자미, 넙치, 조개류, 굴 | 라이트 바디 | 연어, 참치, 오리고기, 로스트치킨, 삼겹살 |
미디엄 바디 | 도미, 농어, 새우, 가리비, 송아지요리 | 미디엄 바디 | 엽조류, 송아지 갈비, 돼지갈비 |
풀 바디 | 연어, 참치, 랍스터, 오리고기, 로스트치킨, | ||
풀 바디 | 양갈비, 소고기 스테이크, 수렵고기, 양다리 요리 |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음식과 어떤 와인이 잘 어울릴까. 마리아주의 기본 공식은 ‘조금 약하게’이다. 음식 산도가 와인 산도보다 조금 약할 때 조화를 이루고 승수효과를 낸다는 것. 약한 신맛이 좀 더 강한 와인 맛을 살린다.
실제로 ‘음식의 신맛은 와인의 균형감과 향의 발산을 높여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따라서 신맛이 와인보다 강한 과일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단맛도 마찬가지다. 음식의 단맛이 와인보다 강하면 쓰고 떫은맛이 더욱 진하게 나타난다. 그로 인해 와인 고유의 향과 풍미가 약해지고, 불쾌한 맛은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동안 인류의 경험으로 볼 때 생선이나 해물 요리에는 화이트 와인이, 붉은색 육류 요리에는 레드 와인이 어울린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생선 요리에 화이트 와인이 어울리는 이유는 와인 산미가 생선의 비린 맛과 조화를 이루거나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레드 와인의 타닌 성분 역시 육류의 기름기와 느끼한 맛을 잘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다만 같은 레드 와인이라 할지라도 피노 누아 등 가벼운 느낌(라이트 보디)의 와인은 생선류와도 잘 어울린다. 보리굴비는 스페인에서 주로 재배되는 레드 포도품종 모나스트렐의 마리아주로 손색없다.
한편 음식과 와인 페어링은 철저히 개인 취향이다. 완벽한 조화도 없다.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각과 감정이 천차만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와인이 주는 행복’은 사막 한가운데 나타나는 신기루처럼 아득하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국제와인전문가(WSET Level 3)
juju43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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