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국가보안법이 가른 두 도시의 운명

[비즈니스 포커스]

팝가수들의 홍콩 패싱이 이어지고 있다. 해리스타일스, 콜드플레이에 이어 테일러 스위프트가 내년 국제 투어에서 홍콩을 제외했다. 반면 스위프트는 인구 600만 명의 도시국가 싱가포르에서 콘서트를 6번이나 연다. 시드니, 도쿄, 멕시코시티보다 더 많은 공연횟수다.

팬데믹 이전에는 유명 아티스트의 메가 공연이 열렸던 홍콩이 팝가수의 선택지에서 제외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러한 팝가수들의 도시 선택이 홍콩과 싱가포르 두 도시의 운명이 엇갈리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53년 만에 1위 뺏긴 홍콩‘아시아 금융 허브’로 불린 홍콩이 53년 만에 최고 경제적 자유 지역 타이틀을 빼앗겼다.

지난 9월 캐나다 싱크탱크인 프레이저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 ‘세계 경제자유지수’를 발표한 이후 처음으로 홍콩은 1위에서 2위로 밀려났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왜 홍콩을 패싱했을까 [비즈니스 포커스]
프레이저 연구소는 세계 165개 사법권을 대상으로 경제적 자유를 조사한다. 경제적 자유는 국제 무역의 용이성, 시장 진입 및 경쟁의 자유, 비즈니스 규제 등을 기준으로 측정된다. 2023년 보고서 결과는 165개 사법권에서 비교 가능한 통계가 있는 가장 최근 연도인 2021년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 이 지수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 즉 스스로 경제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한다.

연구소 측은 “홍콩이 세계 경제적 자유 지수 조사 이래 1위에서 내려온 것은 처음”이라며 “중국 공산당이 모든 종류의 자유에 대한 탄압을 이어가면서 홍콩의 순위는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홍콩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선 곳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전년도 2위에서 홍콩을 넘어서 1위를 차지했다. 보고서는 “정부 규모와 규제 요소의 개선에 힘입어 싱가포르의 전체 점수가 0.06점 상승해 1위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위스, 뉴질랜드, 미국이 각각 3위, 4위, 5위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이자 경제 라이벌 관계다. 두 도시 모두 오랫동안 고도로 발전된 경제, 효율적인 교통 시스템, 효과적인 시민 서비스 및 세계적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자랑하며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라는 명성을 누려왔다.

싱가포르는 중국과 긴밀한 연결을 통해 동남아의 교통 허브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홍콩은 코로나19가 발생하기 1년 전에 6500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면서 중국 본토 관광객과 사업가들의 주요 명소로 통했다.

오랜 라이벌인 홍콩과 싱가포르의 순위를 가른 것은 2020년 홍콩에 시행된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은 홍콩의 반정부 시위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이 홍콩 내에서 분리·전복을 꾀하는 활동에 처벌을 높여 홍콩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제정한 법이다. 2019년 6월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반년가량 계속되며 도시가 마비되자 2020년 6월 중국이 홍콩 내 반중 활동을 최대 종신형에 처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홍콩 주권 반환일인 7월 1일부터 시행).

중국이 홍콩 의회를 우회해 홍콩 법률 제정에 직접 나선 것은 1997년 홍콩 반환 후 처음이다. 이 보안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홍콩의 자치권 축소이자 정치적 자유의 소실이다.

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홍콩의 사법적 독립과 공산주의 중국으로부터의 반자치권은 홍콩이 국제 금융 허브로서 명성을 쌓는 데 초석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 법으로 중국이 홍콩 반환 당시 영국에 약속했던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을 저버리자 미국은 홍콩에 대한 특별 지위를 박탈했다. 1992년 홍콩정책법에 따라 부여한 관세·투자·무역·비자 발급 등 우대 조치도 없앴다.

2047년까지 반자치권을 약속받았던 ‘아시아 금융 허브’ 홍콩은 사라지고 ‘중국의 한 지방도시’로 전락한 것이다. 그동안 홍콩이 낮은 세율과 낮은 투자 장벽 등에 힘입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금융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반자치권을 약속받은 특별 지위에 힘입은 것이었다.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지 3년. 홍콩과 싱가포르 두 도시의 경쟁력은 달라지고 있다. 홍콩의 비즈니스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외국인과 해외 기업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홍콩 최대 부호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이 소유한 청쿵센터의 공실률은 25%에 달한다. 부동산 전문기업 핸더슨 랜드그룹이 현재 건설 중인 빌딩의 공실률도 70%에 육박한다. 공실률이 오르면서 값도 크게 하락했다.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및 투자 전문기업인 콜리어스 인터내셔널 그룹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홍콩의 A등급 상업용 부동산 사무실 공실률은 15%다. 이는 2019년 대비 3배 이상 오른 것으로 미국 맨해튼(12.5%), 싱가포르(4.6%) 등과 비교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의 확산을 원인으로 볼 수 있지만, 홍콩 시장은 이와 구조적으로 다르다고 블룸버그 측은 설명했다. 중국의 통제 강화로 홍콩에 진출한 미국 등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거래가 둔화했고 이들 금융기관이 철수하면서 공실률도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홍콩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근무 인원을 줄이고 있다. 모간스탠리는 홍콩의 아시아태평양투자은행 인력의 7% 감축안을 검토하고 있고 JP모간은 홍콩 본사 등 투자은행 인력 30여 명을 이미 해고했다.
도이치방크, 스탠다드차타드그룹 등도 사무실을 비우거나 도시 외곽으로 이전했으며 페덱스는 홍콩에 있던 아시아태평양 본사를 싱가포르로 이전할 계획을 전했다.

프레이저연구소의 매슈 미첼 선임 연구원은 “홍콩의 최근 변화는 경제적 자유가 시민적, 정치적 자유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새로운 규제 진입 장벽, 사업 비용 증가, 외국인 노동력 고용 제한이 홍콩의 순위를 떨어뜨렸다는 설명이다. 미첼은 “이러한 탄압은 민간 부문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노력과 결합되어 필연적으로 경제적 자유를 약화시켰다”며 “그 결과 홍콩의 번영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 헤지펀드 자산 사상 최대홍콩이 약해진 틈을 타 비상하는 도시는 싱가포르다. 최근에는 페덱스가 아시아 본사와 경영진을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이전한다고 밝히면서 홍콩에 또 다른 타격을 안겼다.

싱가포르엔 이미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트위터를 비롯해 7000여 개의 다국적기업이 진출해 있다.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P&G, 가전 기업 다이슨,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도 싱가포르에 글로벌 거점을 마련했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나 롯데 역시 싱가포르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싱가포르의 비즈니스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싱가포르 중앙은행인 싱가포르통화청의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헤지펀드 자산은 2021년에 30% 증가한 2570억 싱가포르달러(약 1910억 달러)로 사상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통화청의 추정에 따르면 2020년 400개에 불과했던 패밀리 오피스(자산가에게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수는 지난해 말 1100개로 증가했다. 자산가들이 급증하며 이들의 삶과 부를 관리하는 회사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기업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싱가포르를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원인은 세금 혜택이다. 싱가포르는 법인세율 17%로 상당히 낮은 편이며, 신규 법인의 경우 추가적인 세제 혜택을 주어 기업의 성장을 장려하고 있다. 특히 첫 3년간 10만 싱가포르달러 수익에 대해서는 75% 면세를 해주고 있으며 이후 10만 싱가포르달러까지는 50% 면세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어 총 수익의 20만 싱가포르달러까지 상당한 절세 혜택을 추가적으로 누릴 수 있다.

중국, 인도를 비롯한 다양한 아시아 각국에 진출이 유리한 지리적 조건과 최고의 해상교통 입지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특장점이다. 발달한 금융인프라를 통해 자금이동이 유리하다는 점 역시 장점으로 손꼽히기에 향후 아시아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한 글로벌 기업들이 싱가포르를 진출지로 손꼽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중국으로 가는 관문을 찾는 글로벌 은행의 거점이자 무역 중심지로서 홍콩을 대체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 규모가 다르다는 것이다.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총 가치는 약 5조 달러로 싱가포르의 4000억 달러의 12배가 넘는다. 2023년 싱가포르에서 기업 공개를 통해 모금된 금액은 2000만 달러 미만으로, 전년 대비 95% 감소했다. 이는 전년 대비 68% 감소한 홍콩의 기업공개로 조성된 30억 달러의 일부에 불과하다.

싱가포르가 중국 부의 일부를 끌어들이고 있다면, 홍콩은 여전히 글로벌 은행가들의 고액 자산을 끌어들이고 있다. 아시아 헤지펀드 매니저의 절반가량이 홍콩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타임지는 “글로벌 은행의 현실은 홍콩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싱가포르는 아시아 지역에서 사업을 다각화하거나 중국을 넘어 더 넓은 아시아 지역 사업을 위한 거점을 찾고자 하는 기업들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