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보다 정신적 피해 커, 청결 여부 상관없이 확산
일부 살충 성분에 내성 가진 빈대 존재, 50도 이상 고온 30분 유지해야

21세기 한국에 나타난 '빈대 포비아'의 다섯 가지 궁금증[비즈니스 포커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21세기. 때아닌 ‘빈대 포비아(phobia, 공포증)’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 9월 대구광역시 소재 계명대 기숙사에 빈대가 출현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지난 10월 인천 한 사우나에도 나타나면서, 빈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뉴스를 장악한 상태다. 화학살충제가 보급되며 1970년대 초반 국내에서 박멸된 뒤 근 50년 만이다.

동시에 살충제를 생산하는 경남제약과 동성제약 주가가 치솟았다. 특히 경남제약 주가는 10월 말부터 급등하기 시작해 11월 8일 주당 2515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빈대 이슈가 부각되기 전보다 2배가량 오른 것이다. 대표적인 빈대 퇴치제로 알려진 동성제약 ‘비오킬’은 한때 품귀현상을 일으켰으며 의류관리기와 스팀청소기, 빨래건조기 등 가전 수요가 늘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반면 국내 관광, 숙박업계엔 비상이 걸렸다.

이처럼 국민건강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빈대는 대체 왜 한반도에 돌아왔는지, 증상은 어떠하며 어떻게 퇴치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1. 빈대에 물렸을 때 증상은?
질병관리청을 비롯한 공공기관 자료에선 빈대가 모기처럼 질병을 전염시킨다는 근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대신 빈대는 모기와 달리 여러 군데에 일렬이나 원형으로 물린 자국을 낸다. 혈관을 잘 찾지 못해 피부를 연달아 물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긴 자국은 물린 지 하루에서 최대 14일이 지나야 나타나 가려워지기 시작한다. 마치 잠복기와 같은 시차로 인해 그동안 빈대가 더욱 확산하며 피해 또한 커질 수 있다.

유럽 성지순례나 워킹 홀리데이 체험 당시 방문한 숙소에서 빈대의 위력을 몸소 느낀 경험자들은 “한 번 물리면 끔찍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체질에 따라 다르지만, 다른 벌레에 물렸을 때보다 자국이 광범위하고 가려움의 정도도 심하다. 최근 중고물품 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에는 아파트에서 소음을 일으키는 옆집에 복수하겠다며 빈대 10마리를 3000원에 사겠다는 글이 올라왔을 정도다.

물린 자국 자체는 별다른 치료 없이도 1~2주 내에 회복되지만 후유증이 문제다. 빈대에게 물린 환자는 심한 가려움증으로 불면증을 겪거나 가려운 부위를 심하게 긁어 피부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영국해충방제협회(BPCA)는 극단적인 경우 치료가 끝난 뒤에도 자기 신체가 여전히 해충에 시달린다고 믿는 ‘기생충 망상증(delusional parasitosis)’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2. 빈대는 어떻게 활동하나?빈대는 성충이 되면 몸길이가 5~6㎜ 정도이며 납작한 몸통을 무기로 좁은 틈새에 숨어 살아간다. 특히 영어로 베드버그(bedbug)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낮에 침대 매트리스나 원목 가구 이음매 등에 숨다가 밤에 사람 등 온혈동물이 다가오면 이들 동물이 내뿜는 체온과 이산화탄소를 감지하고 물기 시작한다. 어둠을 좋아하고 새벽 3~4시 사이에 주로 흡혈활동을 하는데, 낮시간에 빈대를 발견했다면 해당 장소에 빈대가 많다는 뜻이다.

빈대는 암수 상관 없이 일주일에 1~2회 흡혈을 하는데 10분간 자기 몸의 2.5~6배 피를 빨 수 있다. 흡혈을 하지 않고도 6개월 이상 생존할 수 있는 데다 일생 동안 200여 개 알을 낳을 수 있어 번식력이 강하다. 3. 최근 국내에 빈대가 왜 생겼나?
‘2023년도 서울시 빈대 예방 및 관리 안내서’에서는 “빈대가 위생관리 부족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에선 엔데믹 이후 해외에서 입국한 내외국인을 통해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저 빈대가 있는 곳에서 옮아와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반날개빈대’가 보고된 사실이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서울은 물론 프랑스 파리 등 선진국 대도시가 요즘 빈대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히려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 환경이 빈대가 급속도로 확산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 셈이다. 4. 빈대를 퇴치하려면?
질병관리청에선 일단 빈대를 확인하면 ‘물리적 방제’와 ‘화학적 방제’를 병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화학적 방제는 ‘비오킬’로 대표되는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를 뿌리는 것이다. 훈증을 이용한 방제는 효과가 적고 빈대가 약제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제하는 것이 좋다. 물리적 방제는 빈대가 열에 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50~60℃ 이상 고온에 30분 이상 노출하는 방식이다. 또 빈대가 숨어 있기 좋은 침대 주변 물건을 정리하고 벽이나 바닥 균열, 몰딩과 걸레받이 등을 보수해야 한다. 헤파필터가 탑재된 진공청소기로 집안 곳곳을 청소한 뒤 필터에 걸러진 성충과 알에 살충제를 뿌린 후 밀봉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피레스로이드계 등 일부 살충제 성분에 내성을 지닌 빈대가 유입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물리적 방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고온세탁과 건조가 가능한 세탁기, 빨래 건조기 제품과 의류관리기, 스팀 청소기 등 다양한 가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LG전자 건조기와 의류관리기 등이 확실히 빈대를 박멸한다고 확인하긴 어렵지만 이들 제품에 탑재된 ‘스팀 살균’ 기능이 빈대 퇴치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엄훈식 한국방역협회 선임연구원은 “빈대가 일부 살충제에 내성을 가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따라서 물리적 방제를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각종 스팀 제품을 쓸 때는 스팀 자체 온도보다 실제 스팀이 방제 대상에 닿았을 때 온도와 해당 온도가 30분 이상 지속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5. 빈대 예방법은?
이처럼 방제하기 까다로운 만큼 애초에 빈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실제 빈대는 택배 상자나 대중교통 시설에서 옮기보다는 빈대가 이미 확산된 숙박업소나 집단시설에 방문해 옮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정부에선 숙박업소에 방문하자마자 특히 침대 매트리스와 모서리, 침구 등을 들춰 빈대가 눌려 죽으면서 남긴 혈흔이나 배설물, 탈피 혈흔, 알 등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노린내나 곰팡이 같은 냄새로 빈대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도 설명한다. 또 당장 빈대가 보이지 않아도 여행짐을 방 바닥이나 침대 위에 올려두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여행 중 빈대를 발견했다면 짐을 밀봉해 장기간 보관하거나 옷이나 수건 등 직물류는 빨래 건조기에 돌리는 등 고온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방제 조치를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행하고 방제 과정에서 발생한 오염물을 처리 없이 버리지 않도록 주의함으로써 빈대가 이웃에게 확산하지 않도록 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5성급 호텔이나 리조트, 평소에 청결한 집에서도 빈대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언제 어디서나 정기적인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