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진 도쿄도시대 부교수 인터뷰

[스페셜리포트 : 지방생존 리포트⑦]
임화진 도쿄도시대 부교수./김영은 기자
임화진 도쿄도시대 부교수./김영은 기자
“한국이 지방 소멸을 대하는 방식은 일본과 다르다. 도시정책이나 국토정책은 사라지고 부동산정책만 남았다.”

도시계획가인 임화진 도쿄도시대 교수의 평가다. 임 교수는 도시 혁신과 도시 네트워크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한국과 일본의 도시 및 지역계획을 연구했다.

일본이 걸어온 길은 한국의 미래로 불린다. 1990년대 자산가격이 정점을 찍고 폭락하며 30년 넘게 저성장의 터널을 걸어온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 부동산 가격 하락, 젊은 세대의 무력함 등 한국이 직면한 문제를 먼저 겪었다.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말이 통한 곳은 또 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의 쇠락이다. 저출산, 고령화와도 뗄 수 없는 관계다.

임 교수는 지자체가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스테로이드’ 정책에 빠지면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일본 역시 보조금, 아동수당, 주택수당으로 단기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펼친 지역이 있었다”며 “하지만 그런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못하고 오히려 성장동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 중앙정부가 할 일은 지자체가 호흡을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제도와 예산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소멸, 치열한 브랜딩으로 접근해야
지방 소멸을 극복한 일본 지자체는 대부분 지역 특성을 100% 반영한 브랜딩에 성공했다. 일본 정부는 의욕과 의지를 가진 지자체에 자금이나 네트워크를 선별적으로 지원했다. 공모 형식을 통해 지자체 주도로 여러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전체 격차를 완화하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는 도시들을 선별해 지방의 소멸을 막고 부활을 도울 수 있게 지원했다. 일본 소도시마다 관광정책, 관계인구 창출, 위성사무실, 이주정책, 고세, 콤팩트 시티 등 각기 다른 해결책이 등장한 이유다. 모두 ‘지역 맞춤형’ 전략이었다. 지역마다 안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고안했다.

임 교수는 “지역마다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관광정책이나 이주정책을 세웠다면, 이에 맞는 타깃의 페르소나를 구체적으로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는 후쿠오카와 가미야마의 예를 들었다. 규슈 지역의 후쿠오카는 최근 일본의 ‘포틀랜드’를 목표로 잡고 있다. 포틀랜드처럼 중소도시지만 삶의 질이 높고 문화 인프라가 잘 갖춰진 ‘힙한 도시’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후쿠오카는 규제를 풀고 세제지원을 통해 적극적인 스타트업 육성책을 펼치고 있다.

가미야마는 IT 기업과 인재를 끌어들여 마을 전체를 ‘위성사무실’처럼 만든 산골마을이다. 가미야마는 이주자를 받을 때 구체적인 자격조건을 내세웠다. IT 종사자 중에서도 그들의 소셜 라이프스타일을 면밀하게 들여다 봤다. 지역에 살면서 지역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이주자를 가려 받은 것이다.

“지역마다 어떤 곳은 육아세대가 필요할 거고, 어떤 지역은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필요하겠죠. 또 다른 곳은 은퇴 직전의 5060이 필요할 겁니다. 지역마다 겪는 문제가 다르기 때문에 답도 다릅니다. 지자체가 어떤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유입할 ‘마케팅 마인드’를 가지고 브랜딩 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일본 정부는 2014년부터 ‘지방창생’이라는 이름의 정책으로 지방 소멸 극복에 나섰다. 지방창생은 아베 내각의 간판 정책이었다.

2014년 마을·사람·일자리 창생법과 창생본부를 만들어 1기 5개년 종합전략(2015~2019)을 끝냈고, 2기(2020~2024)가 시행되고 있다. 지방창생의 목표는 인구 감소를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한 희망 출산율은 1.8명. 지난해 일본의 출산율은 1.4명이었다. 도쿄로 사람과 인프라가 집중되는 ‘도쿄일극’을 해소하고 소멸 위기의 지방을 살리는 것도 이 정책의 핵심이다.

임 교수는 최근 일본의 지방창생 분위기가 변했다고 전했다. 정책 1기가 끝나면서 지방 소멸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아베 내각에서 기시다 내각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지방창생에 대한 관심도 비교적 낮아졌다.

임 교수는 “아베 내각은 아베노믹스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대기업과 대도시 중심의 성장과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정권이었다”며 “제로금리를 유지하면서 금융정책과 외환정책을 건드렸기 때문에 대기업의 현금 보유력은 올려줬지만, 분배 성장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고, 이에 대한 당근으로 지방창생을 강력하게 추진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었다”고 말했다.

기시다 내각은 지방정책으로 ‘디지털전원도시국가구상’을 들고 나왔다. 스마트워크, 스마트농업, 자율주행 기반 의료-간호 서비스, 배달 자동화 등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지역사회를 활성화해 도시와의 격차를 줄인다는 구상이다. 지방창생은 이 정책에 자연스럽게 흡수됐다. 임 교수는 “그렇다고 일본의 지방창생 정책이 실패는 아니었다”고 단언했다. 지역 특색에 맞는 다양한 활성책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전의 지역 활성화 정책은 국토교통성에서 개발과 인프라 정비 위주로 갔다면 지방창생은 내각, 총무성, 관광청이 함께하면서 다양한 조직과 횡단적인 사업이 연계를 이뤘다”며 “일본 전체 지방이 활력을 얻었다고 하긴 힘들지만 의욕이 있는 지역들은 부활했다”고 말했다.
한국, 스테로이드 정책에 빠지면 안돼
임 교수는 한국도 부동산이 아니라, 국토와 도시 측면에서 지방 소멸에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은 ‘입지적정화계획’에 따라 나온 콤팩트 시티를 도입하고 있다. 느슨한 인구밀도로 인해 인프라와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낭비되는 걸 막는 전략이다. 인구 감소 시대에 국토 공간에 대한 고민이 담긴 정책이다.

임 교수는 “한국이 2000년대 초반에 일본보다 먼저 국토법을 통합하면서 제도 정비화에 나선 적이 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도시정책이나 국토정책이 부재한 상태로 부동산정책만 남았다”고 말했다. 한국은 부동산이 곧 가계 자산의 중추이자, 민생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은 버블이 꺼진 뒤 국민들이 부동산을 투자의 개념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장기적인 정책을 펼치기에는 더 수월한 조건”이라며 “하지만 한국도 10년, 20년 후 인구 감소가 심각해지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시대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전환점이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한국의 지방소멸, 부동산 정책만 남았다"[지방생존 리포트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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