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명 중 절반이 65세 이상 고령인구…젊은 창업가와 마을이 합작해 부활 성공

[스페셜리포트 : 지방생존 리포트②]
150년 된 대갓집을 리모델링 해 만든 고스게촌 호텔./김영은 기자
150년 된 대갓집을 리모델링 해 만든 고스게촌 호텔./김영은 기자
일본 도쿄에서부터 차로 2시간. 700명이 사는 산골마을 고스게촌의 지방 소멸은 유쾌하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더 재미난 일을 벌일 순 없을까” 고민하며 마을을 변화시키는 데 집중한다. 어차피 소멸할 것이라면 할 일은 해보고 소멸하자는 생각이랄까.

그 결과는 반전이었다. 빈집으로 신음하던 마을 전체가 스토리를 품은 호텔로 재탄생했다. 다양한 실험도 이뤄졌다. 65세 이상 인구가 46%인 마을에 ‘드론’이 날아다니며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배송한다.

늙어가던 마을은 관광객과 이주자들로 활기를 찾았고, 첩첩산중에 위치해 이름조차 생소했던 지역이 일본 지방 재생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일본 내에서는 “지방 소멸을 막을 힌트를 얻으려면 고스게촌으로 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방의 부활을 돕는 기업가와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리더가 힘을 합친 결과다.
고스게촌 마을 전경./김영은 기자
고스게촌 마을 전경./김영은 기자
산골마을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풍경소멸을 걱정하던 마을의 부활을 보기 위해 지난 11월 7일 고스게촌을 찾았다. 도쿄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빠져나온 뒤에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 가서야 마을이 나왔다.

눈이 많이 내리면 그대로 고립돼 버리는, 땅 위의 섬 같은 지역이다. 대신 도쿄 인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는 곳이었다. 산세가 웅장하고 깨끗한 강이 흐르는 일본의 '알프스'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서대문구 3개를 합친 면적(52㎢)이지만, 산림이 전체의 95%를 차지하는 이곳. 편의점도 없고 신호등은 마을에 딱 하나뿐이다. 이마저도 마을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교통신호 교육을 위해 설치한 것이다.

“처음 마을에 왔을 땐 걱정이 앞섰어요. 이렇게 불편한 곳에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누가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죠.”

고스게촌의 부활을 이끈 지방 컨설팅 기업 ‘사토유메’의 시마다 슌페이 대표가 말했다. 시마다 대표는 2014년 사토유메를 창업한 뒤 일본 전역의 지방 재생을 돕는 일을 했다. 2014년 고스게촌 사무소 직원이 시마다 대표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면서 10년째 고스게촌의 변화를 만들고 있다.
150년 된 대갓집을 리모델링 해 만든 고스게촌 호텔./사토유메
150년 된 대갓집을 리모델링 해 만든 고스게촌 호텔./사토유메
마을 주민 모여 ‘역도산’ 보던 대갓집이 호텔로
시마다 대표는 변화를 위해 이 지역이 갖고 있는 이야기와 콘텐츠를 활용했다.

지은 지 150년 된 빈집 하나를 첫 대상으로 낙점했다. 마을 어른들이 ‘대갓집’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여기던 저택이었다.

“이 마을의 50세 이상 주민들은 모두 이 집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이 집에 드나들며 글씨쓰기와 유도를 배웠고, 1950년대 마을에 처음 TV가 들어온 집도 이곳이었죠.”

시마다 대표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역도산 경기를 보던 이 집을 고스게촌 호텔 프로젝트의 출발로 삼았다.
150년 된 대갓집을 리모델링 해 만든 고스게촌 호텔./사토유메
150년 된 대갓집을 리모델링 해 만든 고스게촌 호텔./사토유메
이 집은 마을의 유명한 호소카와 집안의 소유였다. 고스게촌 초등학교 교장이던 집주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부인 혼자 살았지만, 건강이 나빠져 시설에 들어가면서 5년 정도 빈집으로 남아 있던 곳이었다. 주민들은 ‘대갓집’이 상해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호소카와 저택의 지붕과 정원, 기둥은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했고 가마, 실을 짜던 물레 등 집안과 마을의 이야기가 담긴 물건은 인테리어로 활용했다.

고스게촌 호텔의 시작이었다. 집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 시마다 대표는 수개월간 마을에서 전수 조사를 하며 절벽 끝에 위치한 목조건물 두 채를 발견했다. 벽은 완전히 검정으로 그을렸고 빨간 함석지붕도 바람에 날아가버릴 듯 위태롭게 덜컹거리고 있었다. 폐가 수준의 집이었다.
가파른 절벽에 위치한 목조주택을 호텔로 바꾼 모습./김영은 기자
가파른 절벽에 위치한 목조주택을 호텔로 바꾼 모습./김영은 기자
하지만 산속 ‘절벽마을’ 고스게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집이었다. 인구 감소로 벼랑 끝에 서 있는 고스게촌의 또 다른 상징을 담고 있기도 했다. 이렇게 대갓집과 절벽 끝에 매달린 두 개의 집은 호텔 객실로 변신했다. 시야에 산과 계곡밖에 보이지 않는 곳이었지만, 고스게촌의 자연을 느끼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이렇게 ‘700명 마을이 하나의 호텔로’라는 콘셉트로 2019년 8월 17일 호텔이 문을 열었다.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만드는 ‘분산형 호텔’ 전략이 본격화된 셈이다.

주민들은 운영자로 참여했다. 대갓집인 호소카와 집안 할아버지가 호텔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고, 마을 할머니가 직접 만든 만쥬는 접객 서비스로 제공된다.

마을 주민들이 생산한 식자재는 호텔 식당과 휴게소에서 요리로 활용한다. 객실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을 수도 있다. 객실에 배치된 아이패드로 레시피를 제공하고, 밀키트처럼 마을에서 생산된 식자재를 손질해 직접 방으로 배달해준다.

호텔 운영을 위해 마을과 함께 회사도 설립했다. 사토유메와 고스게촌, 분산형 호텔 기업인 NOTE까지 3개 기업이 출자해 엣지(EDGE)라는 호텔 운영 회사를 세웠다. 시마다 대표가 이 기업의 대표를 맡고 있고 고스게촌의 촌장이 이사로 있다. 민간기업과 지자체가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건 일본 내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가파른 절벽에 위치한 목조주택을 호텔로 바꾼 모습./김영은 기자
가파른 절벽에 위치한 목조주택을 호텔로 바꾼 모습./김영은 기자
주민들의 신뢰와 협력이 프로젝트의 근간어떤 정책이라도 마을 사람의 협력을 얻지 못하면 쉽지 않다. 주거지가 관광지화되면 반기지 않을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시마다 대표는 마을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년층부터 설득했다. 호텔 개장 3개월 전 마을 노인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고, 30명의 마을 주민이 참석할 것이라고 예상한 강연회에는 100명이나 와서 귀를 기울였다. 마을을 새로 일으키려는 주민들의 의지가 강했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시마다 대표를 믿었다. 시마다 대표는 마을 전체를 호텔로 만들기 전 고스게촌의 휴게소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었다. 일본에는 차를 타며 여행하는 여행객들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미치노에키’가 있다. ‘길가의 역’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말로 하면 일종의 휴게소다.
고스게촌 마을 주민들과 사토유메 임직원들./사토유메
고스게촌 마을 주민들과 사토유메 임직원들./사토유메
고스게촌이 처음 시마다 대표와 사토유메를 찾은 것도 이 휴게소 때문이었다. 2014년 휴게소 개장과 같은 시기에 고스게촌과 인근 도시인 오쓰키시를 잇는 길이 3km의 마쓰히메 터널이 개통됐다.

마을 주민들이 30년간 염원해온 사업이다. 마쓰히메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다른 도시로 나가기 위해 가파른 산길을 넘어야만 했다.

처음 고스게촌 휴게소는 산 중턱 휑한 빈터에 새로 지은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바로 옆에는 ‘고스게 온천’이라는 온천시설과 ‘물산관’이라고 간판을 써놓은 낡은 매점이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시마다 대표는 이 휴게소를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일반 휴게소라면 식권발매기를 들여놓고 메밀국수나 우동, 정식 등을 파는 식당을 몇 개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통량이 많은 국도변의 일반 휴게소라면 화장실 가는 김에 잠시 들러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산속에 있는 휴게소는 사정이 달랐다. 시마다 대표는 전략을 짰다. ‘일부러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한 콘텐츠가 없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르는 휴게소가 아니라 ‘여정의 목적이 되는’ 휴게소를 만들었다. 휴게소를 여행의 목적지로시마다 대표는 고민 끝에 고스게촌의 스토리를 그대로 입히기로 결정했다.

고스게촌은 도쿄에 흐르는 다마가와 강의 발원지다. 산천어와 민물고기뿐 아니라 버섯과 고추냉이, 곤약 등 농산물이 풍부했다. 시마다 대표는 마을의 신선한 먹거리를 이용해 ‘발원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자판기를 설치해 고스게 마을 주민들이 재배한 채소와 가공식품, 맥주 등 선물꾸러미를 살 수 있도록 하는 등 공간 기획부터 상품 전시, 체험프로그램 같은 모든 콘텐츠를 색다르게 꾸렸다.

예상은 적중했다. 개장 첫날부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휴게소 식당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연예인이 지방에 살면서 현지를 체험하는 무대로도 활용됐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고스게촌 촌장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엔 마을을 살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서둘러 인구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앞으로 30년 안에 고스게촌은 사라져버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마을을 지키려면 매년 40명 정도의 이주자, 그것도 20~30대 이주자를 확보하고 출생률도 1.4~1.6명으로 높여야만 했다.

마을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뭔가 매혹적이고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그 결과 나온 전략이 ‘마을 전체를 호텔로’ 만드는 계획이었다. 마을의 삶이 콘텐츠가 되다
시마다 슌페이 사토유메 대표./사토유메
시마다 슌페이 사토유메 대표./사토유메
시마다 대표는 ‘고스게촌에서의 생활’을 수익사업으로 삼았다. 고스게촌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보고, 온천에서 땀을 빼고, 그들이 재배한 식자재로 음식을 먹고 마을을 산책하고, 마을 특산품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모두 체험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고스게촌 호텔과 고스게 휴게소에 있는 온천, 가게 등의 콘셉트를 잡고 운영하는 것까지 사토유메가 도맡았다. 그 결과 적자가 여러 해째 이어지던 마을의 사업은 흑자로 돌아섰다.

고스게촌을 찾는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3040세대다. 20대도 20%에 달한다. 고스게촌 호텔 매출은 2021년 5084만4000 엔(약 4억3800만원)에서 2022년 5917만2000 엔(약 5억원)으로 16% 뛰었다. 2023년에는 6700만 엔(약 5억8000만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휴게소 매출 역시 2020년 1200만 엔에서 2022년 1870만 엔으로 55% 급등했다. 시마다 대표는 “젊은 세대는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찾으려다 고스게촌을 발견하고 방문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스게촌의 성공은 소프트웨어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지방 재생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하드웨어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관광의 가치는 경험과 체험으로 옮겨가고 있어요. 지방 소멸을 겪는 곳들은 모두 아름다운 자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 마을의 모습과 건물을 다 유지하고 있고 밥도 맛있고 물도 맛있죠. 그런 면에서는 차별화하기 어렵습니다. ‘맛있다, 예쁘다, 좋다’로 끝나서는 안 돼요. 그보다 ‘누가 이런 걸 만들었고, 누가 이런 걸 해낼까?’ 어떤 사람들의 노력이 얽혀 있는지와 어떤 삶의 모습을 전달할지가 마을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사토유메의 다음 목표는 30개 마을을 고스게촌처럼 바꾸는 것이다. 동일본여객철도와 함께 출자한 회사를 통해 이 일을 추진 중이다. 동일본여객철도가 먼저 시마다 대표를 찾아 노선이 지나는 마을의 변화를 부탁했다.

시마다 대표는 “30개 마을의 변화를 주도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지방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심어주고 싶다”며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아니라 일본의 젊은이들이 지방에 가서 뭔가 이루고 싶어하는 ‘마음의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700명 마을이 호텔로…일본의 유쾌한 지방소멸[지방생존 리포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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