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이야기 종결 (上)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의 초기작 ‘플란다스의 개’는 특이한 영문 제목을 지녔다. ‘Barking Dog Never Bites’,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이 외국 속담의 진실성에는 별 관심 없다. 그저 한국 복권 구매자들의 행태 묘사에 꽤나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권 관련 온라인 뉴스들과 댓글들을 보라. 금방 봉기라도 일으킬 기세다. 하지만 대부분이 디지털 허세임이 분명하다. 익명으로 숨어서는 민주주의도, 참여도, 사회변화도 아주 간편한 것 아니겠나. 사납게 울부짖지만 뭔가 집요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제도와 운영방식에 대한 원성이 끊이지 않지만 복권에 특화된 워치도그(watchdog) 하나 없다는 사실이 초라하다. 언론에 가끔 ‘복권 소비자 모임’이 언급되지만 실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해서 가칭 ‘전국복권소비자협회’ 발족을 가정해 본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나?

첫째, 지난 몇 년간 발생했던 주요 의혹에 대한 명쾌한 규명 추진.
둘째, 현 복권 운영방식과 제도에 대한 대안 공론화.
셋째, 현 동행복권의 소통부재와 닫힌 행정 개선.
넷째, 복권 관련 세금과 기금운용에 대한 소비자 감시와 개입.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렇다. 2021년 성인인구 4300만 명 중 62.8%가, 2022년에는 56.5%인 2400만 명이 적어도 1년에 한 번 이상 복권을 구매했다. 1인당 연간 평균 지출액은 26만6000원. 1일당 약 266개의 복권을 구매한 꼴이다. 이 정도면 범국민적 관심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전복협을 결성하라! 국민 대다수의 이해와 어마무시한 규모의 돈이 걸린 문제다. 복권기금 3조2000억 어디로 가나
2023년 복권판매 금액은 6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일 품목 판매금액으로 따지면 커피, 담배, 술에 이어 4위에 해당한다. 라면? 1인당 연평균 77개 소비 × 업계 최고가 신라면 1000원=약 3조원. 복권판매금액의 62% 수준이다. 프로야구 티켓? KBO 집계 관중수 810만 명 × 평균 객단가 1만4902원(2022년 기준)= 207억원. 복권판매금액의 1.8%에 불과하다.

담배에 붙은 세금 74%(4500원 한 갑당 3323원), 소주에 붙은 세금 45%(대형마트 판매가1380원당 617.1원). 1000원짜리 복권 한 장에 붙는 세금은 42%. 푼돈 같지만 없는 사람들에게 42% 세율은 가혹하다. 운영비와 당첨금 제하고 정부가 그 ‘푼돈’으로 챙겨가는 금액은 3조2000억, 꽤 쏠쏠한 장사다.

이 대박 세금은 어디에 어떻게 쓰여지고 있나. “복권기금은 국민의 복지증진사업에 쓰입니다”라고 기획재정부와 동행복권 측은 답변한다. 무슨 복지, 어떤 증진? 궁금해 들여다보니 복권 수입금의 35%는 복권기금법 제23조 제1항에 의거해 과학기술진흥기금, 중소기업창업 및 진흥기금 등 10개 법정배분기관에 주어진다.

기금이란 조세수입이 아닌 출연금, 부담금 등을 재원으로 국가가 특정목적 사업 추진에 쓰는 돈을 말한다. 그렇다면 ‘국민의 복지 증진’이라는 복권기금의 목적성과 과학기술진흥기금, 중소기업창업 및 진흥기금과 어떤 직접적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세금 낭비는 아니겠지만 관건은 복권기금 목적성에 부합하는지 여부다.

예컨대 과학기술진흥기금으로 2023년도 배정된 1010억원의 내역 속에는 과학문화확산사업(25억), 스페이스이노베이션(40억), 그것도 모자라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지원(140억)이 포함되어 있다. 18조9000억원이라는 과기정통부의 예산은 어디에 쓰여지길래 ‘취약계층 복지증진’을 목적으로 한 복권기금이 이곳에 투여되는 것인가.
전국복권구매자협의회(전복협)를 구성하라 [최정봉의 대박몽]
복권기금 홍보 (동행복권) 정부부처 쌈짓돈?
‘공익지원 사업’으로 분류된 나머지 65%의 쓰임새도 살펴봤다. 명시된 바로는 “임대주택의 건설 등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지원사업, 장애인·불우청소년 등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사업 등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서 선정한 공익사업”이 중심이라 한다.

테이블 1번 칸 내역들을 보면 문화예술진흥기금, 청소년육성기금, 양성평등기금, 보훈기금, 응급의료기금 등 공익성과 복지증진 연관성이 높은 지출들을 볼 수 있다. 사실 청소년육성기금, 양성평등기금 등은 여가부의 자체 재원으로 집행되는 것이 마땅하나 빈궁한 부서 재정을 고려해 그 타당성을 인정한다.
  1. 타당성 인정
  1. 타당성 의문
청소년육성기금 1,357억 법무부 14억
양성평등기금 5,955억 교육부 1,060억
보훈기금 161억 보건복지부 712억
응급의료기금 57억 고용노동부 20억
문화예술진흥기금 1,738억 금융위원회 2,365억
근로복지진흥기금 1,000억 국토교통부 4,500억
<복권기금의 공익지원 사업들>

문제는 우측 2번 칸에 보이는 용처들이다. 법무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게다가 금융위원회라니. 물론 이들 부처 내 취약계층 지원과 연결된 사업비들로 짐작된다. 예를 들어 교육부의 경우 전액 저소득층 장학사업에 투여했다. 하지만 이 사업이 자체 예산이 아닌 외부 예산에 의존해야 하는 성격인지, 무려 102조에 달하는 교육부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인지 의문이다.

금융위원회로 간 2365억은 무슨 용도일까, 적절한 곳에 잘 활용됐을까, 걱정이다. 복권기금의 가장 큰 문제는 사방팔방으로 뻗쳐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치 국가예산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다. 산만 그 자체다. 집중성이 없으니 평가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적절한 편성인지, 효율적 집행이었는지, 어떤 개선과 증진 효과가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개념이 원체 모호하게 우아해서 귀, 코, 목, 발 어디에 걸어도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니 여기저기 나눠주고 편하게 쓰자는 입장이면 곤란하다. “어차피 국민들 관심은 복권당첨금에 쏠려 있고, 복권 판매로 추렴한 막대한 세금은 있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 쓰여지는지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란 태도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확실한 결과를 내라
요는, 현재의 무질서한 기금 사용을 더 이상 묵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예를 들어보자. 코스타리카는 환경보전과 재생에너지에, 뉴질랜드는 생태계 보호와 멸종위기생물 보전에, 싱가포르는 첨단기술 인프라와 인력투자에, 프랑스와 벨기에는 문화유산 계승과 예술 활성화에, 이렇게 특화된 영역에 집중해 국민들이 공감하는 성과를 만들어 왔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UAE의 루브르 아부다비 건립, 영국의 런던타워 정비도 각국의 복권기금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시민들은 환호했다. 이런 기념비적인 건물들은 모두의 자랑이자 공적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다중의 지지를 받는 선명·현명한 복권기금 쓰임새가 필요하다.

자세히 보면 실질적 복지증진과 취약계층 지원사업은 ‘지방자치단체 지원금’ 안에 모두 집결되어 있다. 고용취약계층 일자리 지원, 생활환경 취약지구 개선, 교통약자 이동권 지원, 생애주기별 맞춤형 주거지원, 낙후지역 수질개선, 영세 관광사업체 융자지원, 소외계층 숲체험교육 지원 등.

그런데 전국 지자체에 배분되는 금액은 고작 1760억에 불과하다. 일개 금융위원회에 배정되는 1824억보다도 적은 규모다. 차라리 3조2000억 전액을 전국 지자체 복지사업에 몽땅 투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사업의 집중성과 뚜렷한 성과가 있어야 세금이 정당화될 것 아닌가.

아니면 한국사회가 직면한 4대 위기 대처에 집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1. 기후-자원위기(물, 공기, 토질, 탄소배출, 에너지 고갈 등), 2. 인구 위기(결혼, 출산, 양육, 가족, 고령화 등), 3. 양극화 위기(경제, 기회, 세대, 남녀 등), 4. 지방 위기(교육, 고용, 인력, 재정, 문화 등).

복지, 나눔, 동행 이런 두리뭉술한 용어 내세워 매년 수조원씩 무단방류할 게 아니라 확실한 목표와 구체적 성과를 내와야 한다. 정부가 벅차해하니 시민들이 나설 차례다. 전국복권소비자협회, 복권구매자연대, 복권정의실천연맹, 뭐가 돼도 상관없다. 엄청난 규모의 국민세금과 그것의 적절한 운용을 강제할 감시압력단체가 절실하다. 전국복권구매자협의회(전복협)를 구성하라!

최정봉 사회평론가, 전 NYU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