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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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주요 대기업을 이끌 오너 일가 중 미국 명문대 출신이 많아지고 있다. 과거 창업세대는 대학을 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2~3세대는 국내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SKY대 학사를 졸업한 뒤 유학은 선택이었다.

반면 4세대부터는 유학이 필수로 자리 잡았다. 조기 유학을 떠나 중·고교부터 학부와 대학원까지 모두 미국에서 졸업한 유학파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선 경직된 한국의 대기업 문화를 바꿔줄 것이란 기대와 동시에 이들의 스타일이 기존 문화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유학은 필수…SKY대→명문대 관행 깨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국내 명문대를 졸업하고 유학길에 올라 2~3세대의 경영코스를 정석으로 밟았다.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해외로 나간 총수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폭넓은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의 국내 인맥은 크게 경기초·청운중·경복고·서울대 동양사학과 동기들과 해외 유학시절 사귄 게이오기주쿠대 대학원,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 인맥으로 구분된다. 게이오기주쿠대 시절에는 경기초 동문인 조현준 효성 회장과 친하게 지냈고 하버드대 시절엔 최재원 SK 수석부회장과 함께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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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회장은 나이 차이가 15살 나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데 두 사람은 하버드대 동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한화·삼성 빅딜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총수일가 간 친분과 하버드 학맥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1980~90년대생 오너 4~5세들이 경영수업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이들의 학력을 살펴본 결과 조기 유학으로 중고교부터 미국에서 교육받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국내에서 초중고와 SKY대를 거쳐 유학길에 올랐던 경영수업 코스가 조기 미국 유학으로 바뀐 것이다. 경영수업 코스가 변화한 이유는 시대가 경영자에게 요구하는 리더십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실전과 경험을 통해 맨몸으로 경영 감각을 익혔던 창업세대에 이어 창업자 옆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았던 2~3세대를 지나 이제는 다양한 경험과 글로벌 감각이 후계자의 필수 덕목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재벌가 해외 유학의 목적은 경영수업과 명문대 졸업장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세계 시장의 변화와 흐름을 파악하는 글로벌 감각과 탄탄한 인맥 쌓기가 주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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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코넬·스탠퍼드·시카고대 학맥 뜬다

미국에서 유학한 오너일가의 학맥 루트를 살펴보니 컬럼비아·코넬·스탠퍼드·시카고대 출신이 특히 두드러졌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컬럼비아대는 버락 오마바 전 미국 대통령,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 등 수많은 인사를 배출했다. 유통업 오너일가의 선호도가 특히 높아 필수 유학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가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출신이다.

CJ그룹에서는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 경영리더가 이곳에서 금융경제학을 전공했고, 장녀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담당 경영리더는 컬럼비아대에서 불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조직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신동원 농심 회장의 장남 신상열 상무,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 부회장의 장남 전병우 상무도 컬럼비아대에서 경영과학과 철학을 각각 전공했다. 이해욱 DL그룹 회장, 이주성 세아제강지주 사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도 컬럼비아대 출신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 씨도 컬럼비아대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넬대는 뉴욕에서 컬럼비아대와 쌍벽을 이루는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다. 코넬대는 호텔경영학이 유명하며 전 세계 호텔 업계를 주름잡는 ‘코넬 마피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문들의 영향력이 크다.

재벌가들은 주로 딸에게 그룹의 호텔사업 승계를 염두에 두고 코넬대 호텔경영학과에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장남 정해찬 씨는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삼정KPMG에서 인턴으로 재직 중이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장남인 박상수 (주)두산 지주부문 CSO 신사업전략팀 수석이 코넬대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LX MDI 대표는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장녀 박하민 GFT벤처스 파트너는 코넬대 사학과 출신으로, 2013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 입사해 해외부동산투자본부에서 호텔 투자 업무를 담당하다 스탠퍼드대 MBA 과정을 마쳤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과 장녀 서민정 럭셔리 브랜드 디비전 AP팀 담당, 차녀 서호정 씨가 모두 코넬대 출신이다. 서 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거쳐 코넬대 MBA를 마쳤다. 아모레에서는 서 회장과 동문인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들이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코넬대 출신들의 역할이 부각되며 신흥 실세로 뜨고 있다. 이진표 아모레퍼시픽그룹 그룹전략기획실 전무와 노은석 라네즈 GTM 디비전장이 대표적인 코넬대 라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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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LG ‘실사구시 학풍’ 스탠퍼드대서 공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스탠퍼드대는 최고 인재가 몰리는 첨단 산업 기지인 실리콘밸리와 가까워 혁신의 에너지가 흐르는 곳이다. 실용주의 학풍을 지향해 산합협력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피치북 데이터에 따르면 스탠퍼드대는 전 세계에서 지난 10년간 스타트업 창업자 1435명을 배출한 최다 창업자 배출 대학으로 꼽힌다.

실리콘밸리의 대부분 IT 기업을 스탠퍼드대 졸업생이 창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글을 창업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이곳 출신이다.

재계에서는 LG, GS, LS 등 범LG가에서 스탠퍼드대 동문이 많다.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스탠퍼드대 MBA 출신이다. 구 회장은 로체스터 공과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LG전자에서 근무하다가 스탠퍼드대 MBA 과정에 입학했으나 중도에 학업을 중단하고 스타트업에서 1년 정도 근무한 뒤 LG전자로 복귀했다.

GS그룹 4세인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LS그룹 3세인 구본웅 마음캐피탈그룹 대표가 대표적인 범LG가 스탠퍼드대 동문이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홍석조 BGF그룹 회장의 장남 홍정국 BGF·BGF리테일 부회장도 스탠퍼드대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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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家, 3대째 ‘시카고대 패밀리’

시카고대는 ‘신자유주의 경제학파의 본산’으로도 유명하며 전 세계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경제학 분야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그만큼 공부량이 많은 대학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SK그룹에서는 최종현 선대회장과 최태원 회장에 이어 최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까지 3대가 미국 시카고대 동문이다.

SK그룹 기업문화로 자리 잡은 토론 문화와 SK 고유의 경영관리체계인 ‘SKMS’는 최종현 선대회장이 시카고 경제학파의 경제이론을 실제 기업경영에 접목시킨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SK그룹에서 실세가 되려면 시카고대를 나와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오너 일가뿐 아니라 계열사 임원들 중에도 동문이 많았다.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베네딕트대 경영학과 졸업 후 시카고대 MBA를 마쳤다. 이순형 세아그룹 회장의 장남 이주성 세아제강지주 사장은 스위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하며 시카고대 경제학·동아시아학, 컬럼비아대 MBA를 마쳤다.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의 장남 박상우 하이엑시엄 파트장이 시카고대 정치학을 전공했다. 이재용 회장의 장녀 이원주 씨도 시카고대에 재학 중이다.

브라운대 인맥도 빼놓을 수 없다. 브라운대는 아이비리그 대학 중에서도 자유분방하고 진보적인 학풍으로 유명하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인디애나대를 거쳐 선택한 학교다.

최태원 SK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이 브라운대 물리학과를 거쳐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재료공학 석사, 하버드대 MBA를 거쳤다. 최태원 회장의 장남, 조카인 최인근 SK E&S 북미법인 패스키 매니저가 그의 브라운대 물리학과 직속 후배다. 조현상 효성 부회장도 경제학과를 졸업한 브라운대 인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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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家, 뉴욕파 강세…혈연도 학연도 끈끈

두산그룹은 특히 4세들이 뉴욕대 동문회를 열 정도로 뉴욕대 MBA 출신이 많다.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부회장과 차남 박석원 (주)두산 사장, 박용현 전 회장의 장남 박태원 한컴 부사장을 비롯해 2세인 박용성 전 회장도 뉴욕대 MBA 출신이다. 4세들 상당수가 뉴욕대와 뉴욕대 MBA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유학파가 많은 이유는 박두병 초대회장의 남다른 자식 교육열이 대물림되면서 비롯됐다. 박두병 회장은 생전에 “도둑이 와서 재물은 훔쳐갈 수는 있지만 머리에 들어 있는 것은 절대 훔쳐갈 수 없다”며 자식들에게 수시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박용만 전 회장의 경우 보스턴대 출신이다. 5세들의 경영수업에서는 신사업과 관련한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학교와 전공을 택하는 추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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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 1번지’인 워싱턴DC에 있는 조지워싱턴대와 조지타운대는 특히 정치, 외교학과의 경우 교수진이 정계나 외교적 실무에 정통한 장관급 인사들이 많아 생생한 국제외교의 현장을 경험하며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교수진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국 정치외교 분야에서 탄탄한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다. 조지타운대 출신으로는 허용수 GS에너지 사장이 있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조지워싱턴대 출신이다.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은 제대 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메리카대를 거쳐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쳤다.

조지워싱턴대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은 곳으로 현대가와 인연이 깊다. 범현대가인 정몽진 KCC 회장과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도 조지워싱턴대에서 수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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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리그보다 강력한 세인트폴고 인맥

조현준 효성 회장은 예일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법학대학원 정치학 석사를 졸업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은 예일대 동아시아학과 출신이다. 조현준 회장과 김동원 사장은 세인트폴고 동문이기도 하다.

뉴햄프셔주에 있는 세인트폴고는 미국 내 톱 5위권에 드는 명문 보딩스쿨로 전 세계 부유층 자녀들이 모이는 곳이다. 아이비리그 대학 재정을 능가하는 대규모 학교 기금으로 유명하다. 명문 보딩스쿨인만큼 학비가 비싸지만, 고교시절부터 글로벌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 JP 모건을 비롯해 ‘신문왕’으로 불리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존 케리 미국 백악관 기후변화 특사 등 걸출한 정재계 인물들을 배출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도 국내에서 구정중(현 압구정중)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세인트폴고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학사를 취득했다.

세인트폴고는 효성그룹과 인연이 깊다. 범효성가인 조욱래 DSDL 회장의 세 자녀가 모두 세인트폴고를 졸업했다. 조현준 회장은 2001년 세인트폴고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정도로 모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국내 동문모임인 서울 펠리칸 네트워크에도 참여하고 있고 국내에서 열리는 세인트폴고 입학설명회를 지원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세인트폴고 인맥이 해외 기업과의 비즈니스에서 큰 힘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세인트폴고 시절 클래스메이트였던 듀폰 집안 자제를 통해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듀폰 회장과 직접 사업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일화가 있다.


[돋보기]
학맥으로 반려자 찾기도

학맥이 혼맥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남편인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소개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청운중 동창인 이재용 회장과 김재열 사장은 친구이자 매제가 됐다.

최태원 SK 회장은 현재 이혼 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시카고대 유학 시절 만나 연애 결혼했다. 두 사람은 시카고대 동문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담당 경영리더는 남편 정종환 CJ그룹 글로벌통합팀장 겸 미주본사 대표(부사장)를 컬럼비아대 석사 시절 만나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