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낸 경험있는 가수들만 참여 가능한 ‘싱어게인’
국내 대표 그룹사운드·아이돌 출신, 은둔고수 등 실력파 가수 출연
국세청 소득 상위 1% 가수 연평균 46억원 수익
성공하기 힘든 직업 ‘가수’···다양한 장르&가수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 마련해야
멜로디만 들어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는 국민노래를 부른 가수, 한 때 방송가를 주름잡던 유명 걸그룹의 멤버, 국내 대표 그룹사운드의 보컬 등 내로라하는 타이틀을 가진 이들이지만 정작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무명가수들이다. 그들은 사파에 은둔해 있는 고수의 모습으로 자신의 이름을 00호라는 숫자에 가린 채 시청자들과 마주한다. 앨범 낸 경험이 있는 가수들의 진검승부
싱어게인의 독특한 점은 신청자격에 있다. 앨범을 단 한 장이라도 낸 경험이 있는 가수여야만 신청할 수 있다. 이 조건만 갖춘다면 인지도, 비주얼, 실력은 다음 문제다. 하지만 이 아주 간단해 보이는 자격요건이 타 오디션 프로그램과의 차별점으로 작용한다.
싱글앨범이 워낙 흔한 시대이지만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고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서는 취미의 영역을 넘어 가수로서의 직업적 소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무대 위에 선 지원자들은 재미, 감동을 넘어 간절함마저 느껴진다. 인기의 목마름을 넘어 꼭 한 번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다는 그들의 간절함이 담긴 무대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감동하게 만든다.
찐 무명들의 반란? 그들의 잔치 ‘싱어게인’
“참 잘했어요” “미쳤나봐” 진심에서 터져 나오는 심사평
싱어게인의 출연자 대부분은 무명가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노래와 팀이 유명하지만 가수의 이름은 생소하다. 그마저도 없는 ‘찐 무명’들이 대부분이다. 무명들의 캐릭터도 다양하다. 갓 고등학생이 된 68호부터 전주만 들어도 다 알만한 노래를 부른 18호, 유명 걸그룹 출신 11호, 은둔 고수 5호, 소심하고 걱정 많은 56호 등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이들 모두 실력파 가수라는 점이다. 브라운관에서 마주하지 못했을 신선함과 그들의 실력이 이 프로그램의 차별성이자 인기 견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그들의 독특한 색깔을 음악적 전문성으로 풀어내주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두 번째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규현, 코드쿤스트, 선미, 이혜리, 그리고 임재범, 윤종신, 백지영, 김이나 작곡가의 신(新)·구(舊) 조합은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포인트다.
스스로를 산골가수라고 소개한 46호 가수는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캠핑장에 온 손님들을 대상으로 400회 이상 공연한 가수로 무대 위에 올랐다. 등장부터 해외파로 오인할 정도로 바운스가 넘쳤던 46호의 노래에 심사위원들은 “미쳤나봐” “천재네”라는 감탄을 연발케 했다. 특히 가사가 틀린 부분을 듣고도 바로 ‘A(합격)’ 버튼을 누른 백지영 심사위원은 “벌스 부분에서 가사가 틀렸는데도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는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평했다.
브라운관 특히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볼 수 없었던 임재범 심사위원은 완벽한 무대를 선보인 출연자들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참 잘했어요”라는 찬사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그 모습은 마치 그간 찐 무명으로 살아 온 출연진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아줘서 고맙고 대견하다는 뜻이 내포돼 있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 아닐까. 김이나 심사위원의 “왜 저래” “미쳤나봐” 같은 혼잣말은 시청자들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역할에 재미를 가미한다. 특히 임재범·윤종신 등 대선배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기준삼아 지원자들의 음악을 평하는 Z세대 심사위원이 즐기는 모습은 레거시의 대표 산물이 되어버린 브라운관에서의 새로운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설 자리 없는 ‘흙 속의 진주’···빈부격차 커지는 직업 ‘가수’
싱어게인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는 출연자들의 스타성이다. 가수로서 손색없는 실력과 스타성을 가진 출연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듯하다. 아이러니 한 건 이런 가수들이 수년 또는 십수 년 간 무명의 생활을 해왔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이런 무명의 가수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국세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소득 상위 1%의 가수가 연 평균 46억원의 수익을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소득을 신고한 가수 7,720명의 총 연소득은 5,156억원이 넘었고, 이들의 1인당 평균 소득은 6,679만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총 회원수는 47,140명으로, 한 해(2022년) 저작권사용료 분배 금액이 3,280억원을 웃돈다. 하지만 저작권 수입을 받는 이들보다 받지 못하는, 그마저도 어려운 가수들이 대다수다. 단언컨대 싱어게인의 출연자들 대부분이 국세청이 발표한 가수의 평균 소득에 한참 미치지 못하거나 조사대상에 끼지도 못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현상은 가수라는 직업의 특수성에 있다. 단지 노래만 잘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사, 음악(곡) 등 무수히 많은 부수적인 부분들이 합을 이뤄야 가능하다. 더군다나 시대적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져야 비로소 주목받는 직업이 가수다.
특히 소속사와 가수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가수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은 업계의 오래된 병폐다. 소속사들의 횡포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던 가수가 한 순간 사라지기도, 세상에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쏟아내는 수많은 성공 방정식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한 때 우리가 열광했던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들도 대거 출연한다. 그 가운데 당시 케이블방송 중 역대 최고 시청률(18.9%)을 기록한 ‘슈퍼스타K 2’에 나와 인기를 끌었던 김지수 씨도 싱어게인 출연자로 등장했다.
슈퍼스타K 2 출연 이후 유명 소속사에 들어간 그는 어릴 적부터 꿈꿨던 가수로서의 길을 걸었지만 생각만큼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현실의 벽에 막힌 그는 가수의 길을 잠시 미뤄둔 채 바버숍 원장으로 13년 만에 다시 나타났다. “이발사도 사랑하지만 음악은 내 삶의 전부였기 때문에 지원하게 됐다”고 말한 그의 지원동기가 새삼 가수라는 직업적 매력의 크기를 짐작하게 했다.
싱 어게인을 위해 도전한 그들에게 박수를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직업적 관점으로만 보면 ‘가수’는 여러 면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직업인 것만은 사실이다. 수년간 연습생 시절을 거쳐 데뷔한 아이돌 역시 다음 앨범을 내는 팀은 1%에 속한다.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그들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1996년 아이돌 1세대라 불리는 ‘H.O.T'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 온 아이돌의 수명은 고작 5년이다.
대중이 바라보는 가수들은 부와 인기를 한 몸에 얻은 스타로 보지만 그것은 수면위로 올라와 있는 가수들일 뿐. 대중이 보지 못한 수면 아래 가수가 더 많다는 사실, 그리고 수면 위의 가수들이 언제 물 밑으로 내려갈지 모른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 수면 아래에서 직업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은 가수들이 싱 어게인을 위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과연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그렇지 못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쳐줄 뿐.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출처=JTBC '싱어게인3-무명가수전' 캡쳐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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