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희 KB 회장이 ‘리틀 윤종규’여선 안되는 이유 [하영춘의 경제이슈 솎아보기]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이 11월 21일 취임했다. 취임식은 이날 했지만 회장으로서 첫 행보는 전날인 20일 시작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소집한 8개 금융그룹 회장 간담회에 참석해 2조원가량의 상생금융 방안을 마련하자는 데 합의했다.

양 회장의 이틀간 행보는 그 앞에 놓인 과제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야당은 여전히 은행을 타깃으로 한 ‘횡재세’ 도입을 밀어붙일 기세다.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 등 정부·여당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KB금융은 어엿한 리딩금융그룹이다. 상생금융 요구에 어떤 식으로든 앞장서야 한다.

이런 환경은 윤종규 전 회장이 취임했던 9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당시 KB금융은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갈등을 겪다가 중도퇴진한 상태였다. 리딩금융그룹 경쟁에 뛰어들기는커녕 존립마저 위태로웠다.

윤 전 회장은 특유의 ‘로키(low-key)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나서지 않으면서도 꼼꼼함과 치밀함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전략을 구현했다. 내부적으론 보고하러 온 직원들을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는 낮은 자세를 보였다. 내부통제에 치중해 다른 은행이 파생결합펀드(DLF) 등으로 홍역을 치를 때 성장세를 가속화했다. 외부적으론 LIG손해보험(현 KB손보), 현대증권(현 KB증권), 푸르덴셜생명(현 KB라이프)을 인수해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3연임에 성공하면서 KB금융을 리딩 금융그룹으로 이끌었다.

윤 전 회장과 꼭 닮은 사람이 양 회장이라는 평가다. 풍기는 인상부터가 그렇다.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나 학자 스타일이다. 셩격도 비슷하다. 웬만해서 나서진 않는다. 직원들을 앞세우고 뒷바라지하는 데 만족한다. 일처리도 닮았다. 꼼꼼함과 치밀함, 전략적 사고는 윤 전 회장 못지않다. 윤 전 회장이 KB금융 부사장을 지내던 시절 부장과 상무를 지내면서 일처리 방식을 배운 영향도 컸다. 많은 사람들이 양 회장을 ‘리틀 윤종규’라고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양 회장이 KB금융 회장이 된 데는 윤 전 회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제 KB금융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었다. 도전자 입장에선 윤 전 회장의 로키 전략이 통했다. 지금은 리딩금융그룹 수장이다. 은행들이 이자장사로 떼돈을 번다는 따가운 시선을 피해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야 하는 위치다.

내부적으론 취약한 글로벌 역량을 키워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KB금융의 글로벌 수익비중은 10% 남짓으로 경쟁 그룹에 뒤진다. KB국민은행의 상반기 해외법인 당기순이익은 1139억원으로 신한은행(2600억원)의 절반도 안 된다. 2020년 인수한 뒤 1조5000억원가량을 쏟아부은 인도네시아 KB부코핀은행 정상화도 시급하다.

더 큰 문제는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홍콩H지수 연계 ELS(주가연계증권)이다. 홍콩H지수가 판매 당시(2021년) 1만2000에서 6120(11월 23일 기준)으로 급락하면서 ELS도 원금손실이 불가피하게 됐다. 홍콩H지수 연계 ELS의 미상환잔액은 총 20조5000억원. 이 중 KB국민은행이 7조6695억원으로 신한·농협·하나은행을 합친 것(6조5876억원)보다 많다. 원금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녹인 구간 진입 잔액’도 4조9273억원이나 된다. 홍콩H지수가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3조원 안팎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란 추정이다.

양 회장은 취임 전후 ‘상생금융’과 ‘글로벌 역량 강화’라는 두 가지 화두를 들고 나왔다. 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선 로키, 치밀함, 꼼꼼함으로 대변되는 ‘리틀 윤종규’로선 곤란하다. 시대적 환경과 KB금융의 위상이 ‘양종희식 리더십’을 요구한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발행인 및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