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부터 삼성 반도체 이끈 경계현, 1년 더 지켜보자는 의견 우세
내부서는 '미래 투자 미비'에 대한 전임자 책임론도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사진=한국경제신문)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사진=한국경제신문)
삼성전자 인사는 '성과주의' 원칙 하에 이뤄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급, 연차에 상관없이 실력만 있다면 초고속 승진이 가능할 만큼 모든 평가는 '수치'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한종희 부회장(DX부문장)과 경계현 사장(DS부문장) 체제를 유지하면서 큰 변화를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심지어 반도체는 올해 1~3분기 누적 적자만 12조6900억원을 기록했지만 사업을 총괄하는 경계현 사장을 유임시키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놓았다. 내부에서도 이를 수긍하는 분위기다. 업황 악화가 예고된 만큼 경계현 사장 체제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도체 실적 악화에도 경계현 유임27일 삼성전자는 사장 승진 2명, 위촉 업무 변경 3명 등 총 5명 규모의 2024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지난해보다 사장 승진 규모가 대폭 줄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5일 '2023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고, 부사장 7명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이는 2018년 이래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실적 부진을 이유로 교체설이 나왔던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을 유임하며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안정 도모해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성과주의를 원칙으로 내세우는 삼성전자가 실적이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기존 대표를 유임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엄격한 평가 기준에 따라 성과주의 인사를 단행한다. 실력만 있다면 나이와 연차에 상관없이 젊은 리더를 사장단 인사에 포함하기도 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 '미래 준비'를 이유로 세대교체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실적이 악화한 반도체 사업부문(DS)에서 경계현 사장 체제를 유지한 것이 관심을 끌고 있다. 2021년까지 삼성전기를 이끌어온 경계현 사장은 지난해 사장단 인사에서 업무가 변경돼 삼성전자 DS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DS부문은 올해 1~3분기 기준 12조6900억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분기별 적자는 △4조5800억원(1분기) △4조3600억원(2분기) △3조7500억원(3분기) 등이다. 같은 기간 누적 매출은 43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0% 급감했다. 삼성전자 반도체는 수요 부진과 제품 가격 하락이 이어지며 올해 초부터 영업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사업부문이 상황이 부정적인 만큼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특유의 '신상필벌' 인사가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경계현 사장의 남은 임기에도 불구하고 교체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삼성 직원들 "큰 불만 없다"…이유는경 사장이 유임된 것은 기존 인사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결정이다. 그럼에도 내부에서도 큰 불만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황 악화로 인해 예상된 적자 △남은 임기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점 △전임자에 대한 부정적 평가 반영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반도체부문의 적자는 지난해부터 예고돼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감했고, 비교적 견조한 실적을 유지해온 서버용 D램 시장까지 규모가 줄어들면서 반도체 업황이 올해 바닥을 찍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내부에서는 "메모리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조차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은 단일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시각으로 경 사장의 유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아울러, 아직 임기가 남은 만큼 내년까지는 성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 사장은 2022년 3월 제53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신규 선임돼 공식 임기는 2025년 3월까지다.

경 사장에 대한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직원들의 평가가 나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한 관계자는 "현재 실적이 좋지 않은 것은 전임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과거 삼성전자 경영진들은 반도체 호황기에 미래를 위한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2018~2019년 슈퍼사이클 당시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양산에만 집중해 차세대 기술 개발 및 투자 등 미래 준비 타이밍을 놓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로 인한 결과가 D램의 한 종류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점유율'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HBM 시장 점유율 1위는 SK하이닉스(50%)로 집계됐다. 삼성전자는 2위(40%)다.

이로 인해 D램 점유율 격차도 좁혀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글로벌 D램 시장 짐정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9.4%로 1위, SK 하이닉스가 35%로 2위다. 양사 점유율 격차는 올해 1분기 약 18%p에서 3분기 4.4%p로 줄어들었다.

한편,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은 리더 교체보다는 조직 개편에 방점을 맞춰 내년 사업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SK하이닉스에 밀려 영향력이 줄어든 HBM 사업부를 중심으로 조직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