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이태원동에 설치된 주요 은행 현금인출기(ATM)./한국경제
사진은 서울 이태원동에 설치된 주요 은행 현금인출기(ATM)./한국경제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손실이 나지 않는다고 안내했다”
“고위험이라는 설명 없이 마치 예금인 것 마냥 두루뭉술하게 설명했다”
“가입하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는 은행 직원의 말을 믿었다”

홍콩 ELS 상품 가입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홍콩 주가지수(H지수)에 따라 손익이 결정되는 홍콩 ELS 상품에서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는 소식에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5대 은행이 판매한 H지수 ELS 중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 규모만 8조 4100억원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은 이 상품을 가장 많이 판매한 KB국민은행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다른 판매 은행과 증권사 6곳에 대해서는 서면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은행이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고 불완전 판매를 했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ESL는 보통 6개월마다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약속한 수익을 돌려주는데, 반대로 한 번이라도 정해진 기준 밑으로 떨어지면 만기 시점에 원금 손실구간에 진입한다. H지수 ELS는 리스크가 높은 장외 파생상품이지만, 저금리 시기에는 은행 예금을 넣어두는 것보다 2%가량 수익률이 높아서 인기를 끌었다.
내년 8조원 만기…은행 초비상
하지만 중국과 홍콩 경제가 타격을 받으면서 H지수도 함께 고꾸라졌다. H지수에 포함된 중국 본토기업의 실적 악화와 중국 부동산 침체,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등이 맞물리면서 지수가 2년 전 고점 대비 절반 가까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1만 2000을 넘었던 H지수는 불과 2년 사이 6000대로 급락했다.

내년 상반기에도 지수가 회복되지 않으면 5대 은행에서만 4조 6000억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지난 2019년 DLF 사태 때 불완전 판매로 발생한 손실의 10배가 넘는다.

앞선 DLF 사태 때는 불완전 판매가 인정돼 투자 손실의 최대 80%까지 배상이 이뤄지기도 했다. 다만, 이번에는 판매사들도 불완전 판매를 막기 위해 적법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이 강화돼 투자자의 가입 의사를 재차 확인한 만큼 피해가 아니라 손실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이번 조사에서 본사 차원의 판매정책과 시스템을 조사하고 있다. 은행권의 고위험 상품 판매가 적절한지로 논의가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ELS 상품 판매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복잡한 고위험 파생 상품을 은행 창구에서 고령층을 상대로 파는 것이 적정한지 강한 의문이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