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12조6900억원 적자에도 경계현 사장 유임
내부 직원 큰 반발 없어…그간 이어온 소통 결과
매달 라이브방송 열어 직원들과 대화…'소통왕' 별명까지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사진=한국경제신문)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사진=한국경제신문)
누적 적자 12조6900억원, 매출은 전년 대비 44.0% 급감.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의 올해 3분기까지의 실적이다. 그럼에도 삼성 반도체를 총괄하는 경계현 DS부문장(사장)은 살아남았다. 경영 환경이 불확실한 만큼 변화보다는 안정이 더 필요하다는 게 삼성의 판단이다.

성과주의 인사 체제에서 경계현 사장 유임 판단은 이례적이다. 심지어 이보다 더 의아한 것은 직원들의 반응이다. 성과급까지 반토막 난 상황에도 반발은커녕 경 사장을 믿고 1년을 더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어려울 때도 적극적으로 직원들과 소통을 이어온 결과다. 소통으로 얻은 신임…경계현 믿는 직원들=11월 27일 삼성전자는 사장 승진 2명, 위촉 업무 변경 3명 등 총 5명 규모의 2024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지난해보다 사장 승진 규모가 대폭 줄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5일 ‘2023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고, 부사장 7명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이는 2018년 이래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이날 가장 관심을 받은 것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교체설이 나왔던 경계현 사장의 유임이다. DS부문은 올해 1~3분기 기준 12조6900억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분기별 적자는 △4조5800억원(1분기) △4조3600억원(2분기) △3조7500억원(3분기) 등이다. 같은 기간 누적 매출은 43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0% 급감했다. 수요 부진과 제품 가격 하락이 이어진 영향이다.

그런데 정작 직원들은 큰 불만이 없다. 업계에서는 “경 사장이 고집해온 소통의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을 강조하며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나섰다. 경직된 조직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게 경 사장의 판단이다.

경 사장이 2022년 삼성전자 DS부문장으로 선임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소통’이었다. 임직원들이 소통하는 ‘위톡’도 경 사장이 2021년 12월 개설한 제도다. 경 사장이 실시간 방송으로 직원들과 소통한다. 위톡에서 경 사장이 직원들에게 “쫄지 말고 일하라”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 내라는 주문이었다.

한 직원은 “성과급이 깎인 이후로 위톡에 간혹 안 좋은 말이 올라오기도 한다”며 “쓴소리는 그냥 넘길 수도 있을 텐데 경계현 님(직원들이 부르는 호칭)은 그런 것들까지 다 답을 하려고 노력하는 리더”라고 말했다.

경 사장은 성과급 불만이 나왔을 때도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월 기본급 25% 수준의 상반기 보너스가 결정된 지난 7월 ‘위톡’을 열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올해만 버티면 되니까 조금만 힘내자”고 말하며 직원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전기차 충전소’ 일화도 있다. 사내 전기차 충전소를 늘려달라는 건의가 있었지만 담당부서에서 구체적 설명 없이 ‘화재 위험’을 이유로 반려한 사실이 위톡에 올라왔다. 경 사장은 이를 두고 “화재 위험이 있는지는 담당부서가 직접 가보고 자료를 남겨야 한다”며 “현장에서 일하지 않으니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하며 직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경 사장이 바꾼 또 하나는 ‘제도’다. 임원 평가 방식도 고쳤다. 실적에 따라 점수를 매기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구성원 성장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변경했다.

평가 종류도 늘렸다. 기존에 없던 부서원평가 등을 신설해 특정 평가에서 고과를 못 받아도 다른 평가에서 상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줬다. 특히 지난해 만들어진 ‘피어리뷰’는 고과에 반영되지 않지만 익명으로 부서원들의 장단점을 적어내는 평가로, 스스로 개선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통은 경계현 사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라며 “전체적인 조직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 당장 바뀌지 않더라도 10년 뒤를 내다보고 계속 바꾸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 점들이 임직원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