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워진 매매시장, 갈아타기 실수요로 ‘양극화’ 발생
‘똘똘한 한 채’ 집주인, 침체기에 호가 낮출까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전경. 사진=강남구청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전경. 사진=강남구청
“집값이 많이 떨어졌다더니 전혀 모르겠네요. 제가 보는 아파트만 안 떨어졌나 봐요.”

40대 직장인 A 씨가 말했다. 최근 A 씨는 자녀를 좋은 학군에 진학시키기 위해 학군지 아파트를 알아보다 반쯤 포기하고 전세까지 고려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거주 중인 도심 아파트는 팔리지 않는데 새 학기 전 이사를 목표로 알아보고 있는 강남권 아파트는 호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거주 주택매수를 알아보는 일부 수요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매도자 우위시장이 이어지던 부동산 상승기가 지났는데도 원하는 입지에 아파트를 장만하기는 여전히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격이 문제다. 최근 개발호재 등으로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일부 지역 아파트 가격이 반등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절대적 가격 외에 집주인과 실수요자 간 ‘상대적 가격’ 차이가 크다고 설명한다. 서울같이 갈아타기 수요가 여전히 활발한 시장에선 ‘똘똘한 한 채’와 아닌 집이 위치한 지역 간 시장 변화가 상당 부분 진행됐기 때문이다. 고점 회복한 ‘똘똘한 한 채’
떨어졌다더니…내가 보는 집값만 아직 비싼 이유 [비즈니스 포커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11월 3주 기준 ‘2023년 누계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을 보면 올해 서울에서 일명 ‘강남4구’라 불리는 동남권 아파트 가격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자치구별로 보면 송파가 3.63%로 가장 많이 올랐고 서초가 0.88%, 강남이 0.71%로 그 뒤를 이었다. 강동은 0.58% 떨어졌다.

비(非)강남권은 모두 하락한 가운데 강북에서 선호도가 높은 한강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하락세가 가장 완만하게 나타났다. 용산은 –0.77%, 성동은 -0.47%, 마포는 –1.43%로 각 지역이 속한 도심권, 동북권, 서북권에서 가장 높은 증감률을 나타냈다.

정부는 올해 초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와 용산을 제외한 전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했다. 즉 이들 지역 상당수는 아직 투기과열지구에 대한 규제가 적용되고 있는데도 집값이 오르거나 약보합을 유지한 셈이다. ‘삼청대잠(삼성·청담·대치·잠실)’으로 유명한 강남3구 내 일부 지역과 압구정, 목동, 여의도 등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실거주 의무를 지켜야 아파트 매수가 가능하다.

이 같은 지역은 타 지역에 비해 집값이 높은 데다 규제가 적용돼 거래가 뜸한 편이다. 그럼에도 호가는 쉽게 낮아지지 않는 모습이다. 대기수요가 많은 데다 집주인들이 가격을 낮춰 급하게 팔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남구 대치동 소재 S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제 때문에 아파트 매수 문의가 많은 편은 아니다”라면서도 “한 차례씩 비싼 가격에 실거래가 되다 보니 매도인들 사이에 ‘굳이 호가를 낮출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형성된 듯하다”고 설명했다.

대치동에서 귀한 신축 아파트인 래미안 대치팰리스 1차 전용면적 84㎡ 타입은 지난 10월과 11월 한 차례씩 33억원에 실거래됐다. 33억원은 지난해 상반기 나온 같은 면적 신고가다.

반면 노원구 상계주공 단지들은 전성기 시절 가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상계주공 아파트는 소형 타입이 많아 외부 투자자들과 젊은 수요층들이 많이 진입했다. 이 때문에 요즘 투자자들의 현금보유 또는 갈아타기 목적에서 나온 매물이 많다. 상계주공 9단지 전용면적 41㎡ 타입은 부동산 경기가 정점이었던 2021년 8월 6억2000만원에 최고가를 기록한 뒤 지난해부터 가격이 급락해 지난 11월 3억7700만원에 손바뀜 되기도 했다. ‘미래가치’ 스민 아파트 호가, 지속되긴 어려워
핵심지역에 집중된 개발호재 역시 이 같은 양극화를 낳는 원인이다. 최근 도시정비사업 규제가 풀리며 재건축 사업이 급물살을 타거나 역세권 개발이 확정되는 등의 호재가 집값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재건축 단지로 지정되며 한강변 초고층 랜드마크로 거듭나게 된 압구정이 대표적이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압구정 미성아파트 전용면적 105㎡ 타입이 10월 26일 법원경매에서 감정가의 105%인 34억7999만9000원에 낙찰됐다. 부동산 경매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선방한 것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압구정 구현대나 신현대 작은 면적은 동네 부동산에서 매물 구하기도 어렵다”며 “미래가치를 생각해 장기적으로 보유하려는 소유주가 많다”고 강조했다.

강남뿐 아니라 재건축 호재가 있는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7단지도 고점을 상당 부분 회복했다. 목동7단지 전용면적 101㎡는 지난해 4월 25억4000만원에 최고가를 기록한 뒤 올해 2월 22억원에 거래됐다 9월 24억5000만원까지 실거래 가격이 뛰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은 “수십 년간 학습효과로 인해 장기적으로 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려는 수요가 높아진 상태”라며 “이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려는 수요는 기존에 보유하던 집을 빨리 처분하기 위해 저렴하게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김 소장은 “반면 이미 강남 주택을 장기 보유한 집주인 입장에선 최근 보유세도 낮아지는 추세인 데다 주택담보대출도 이자가 부담이 될 정도로 많지 않기 때문에 당장 가격을 낮춰 내놓을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떨어졌다더니…내가 보는 집값만 아직 비싼 이유 [비즈니스 포커스]
그러나 지금 상황이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장 거래가 줄어 눈에 띄지 않을 뿐 하락거래가 늘면서 곧 ‘대세 하락’에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강남권에서도 단기간에 집을 팔아야 하는 집주인이 호가를 낮춰 거래가 성사되면 이 같은 분위기는 인근 지역으로 퍼지고 통계에도 반영된다. 지난해 말부터 수도권에 급매물 거래가 늘면서 하락거래가 대거 나왔던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서초구 소재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인근 재건축 아파트에 대해 “호가만 보면 시세가 떨어진 것 같지 않지만 매수인이 원하면 가격을 조정해주겠다는 집주인들이 꽤 있다”며 “실제 거래는 호가보다 낮은 가격에 성사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들어 통계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일부 나타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1월 3주 강남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0.02% 하락했다. 강남구 집값이 하락한 것은 31주 만이다. 일명 ‘노도강’이라 불리는 노원, 도봉, 강북과 함께 구로 아파트값도 떨어지면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증감률은 0.05%에서 0.03%로 낮아졌다.

한국부동산원은 “매도‧매수자 간 희망가격 차이로 관망세가 깊어지는 가운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축소되고 매수문의가 감소하면서 일부 단지에서 가격이 조정되는 등 상승폭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강남에서도 일부 집주인에게 집을 팔아야 하는 일이 생기면서 호가를 낮춘 거래가 늘 수 있다”며 “통계상 저점에서 30% 오른 가격보다 높아진 가격에서 같은 비율로 하락할 때가 금전 단위 면에서 시장이 느끼는 충격은 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