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에 투자하라”는 조언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이어졌다. 금리가 낮을 때는 채권의 매력이 떨어지지만, 높은 금리에서는 채권 투자 가치가 높아진다. 채권 금리가 치솟으면 채권 가격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저가 매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규 발행 채권의 금리가 높으면 이전에 발행된 낮은 금리의 채권은 매력과 수요가 떨어지면서 가격이 하락하는 구조다. 하지만 지난해 투자했던 투자자라면, 올해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꾸준히 미국과 한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기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내년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긴축이 마무리되고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긴축의 마무리 국면’일수록 채권을 향한 관심은 커진다.
발 빠른 한국 개인 투자자는 바로 매수에 나섰다. 올해 개인 투자자가 쓸어 담은 채권 순매수 금액(장외시장)만 34조4422억원에 달한다(11월 29일 기준). 2021년(4조5675억원)의 8배가 넘는다. 지난해와 비교해도 올 연말까지로 기간을 늘리면 개인 투자자의 채권 순매수 금액이 2배가량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향후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채권 가격이 다시 오를 것이라 내다보고 선제 투자에 나서려는 것이다. 물가상승 압력이 사라진다=금리인하의 시기가 온다‘타이밍 싸움’인 채권과 외환 투자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하 시기와 주요국의 경제성장 여부가 채권 투자 성패를 결정한다. 단서는 하나둘 제시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11월 29일 미국 경제의 성장과 물가상승 속도가 둔화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2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현재 기준금리(5.25~5.50%)가 성장과 물가상승 속도를 둔화시키는 한편 노동시장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발표된 베이지북에 따르면 12개의 관할 지역 중 6개 지역에서 경기 하락세가 확인됐다. 고용시장에서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긍정적인 신호가 확인됐다. 보고서는 “고용시장에서의 수요가 계속 완화하고 있다”며 "대부분 관할 지역에서 노동수요가 보합이거나 완만하게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물가에 영향이 큰 임금 상승폭도 둔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 상황은 크게 개선됐고, 내년에도 물가상승이 완만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Fed가 내린 결론이다.
이에 따라 미국 기준금리는 하락하고, 달러화 가치는 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내년 미국의 금리인하에 베팅하는 사람들이 늘자 달러화 가치는 급락했다. 11월 28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주요 6개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측정하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전일 대비 0.5% 하락한 102.61로 지난 8월 중순 이후 약 3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내년에도 달러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전문가들은 달러 비중을 줄이고,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 투자를 늘리라고 조언했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내년 달러화 가치는 올해보다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안정되고 국제유가, 지정학적 이슈 등 외부 요인도 안정세를 찾으면서 미국 시장의 금리가 급락하고 달러 가치도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환투자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엔화와 위완화를 중심으로 구매하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채보다 한국채, 왜?
채권 투자는 미국채보다 ‘한국채 장기물’을 추천하는 전문가가 많았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미국 Fed와 한국은행은 빨라야 내년 3분기에 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내년 상반기 중 한 번 더 금리인상을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는 내년 상반기가 투자 적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채보다 한국채의 매력이 높다고 진단했다. 한국채가 내년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되면 글로벌 패시브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는 점 또한 한국채 장기물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수요와 공급의 측면에서도 한국채 장기물은 눈여겨볼 만하다. 수요는 느는데, 공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내년에 정부가 발행할 예정인 국고채 규모는 158조5000억원이다. 올해보다 9조3000억원 줄어든다. 이 와중에 30년물은 만기가 긴 상품을 운용하는 보험사와 연기금 등이 필수적으로 산다. 부족하면 평균 잔존만기(duration) 관리가 어려워진다. 임 연구원은 “내년 생보사의 초장기(잔존만기 20~30년) 국고채 거래가 중단기물(5년 이하)보다 활발할 것”이라며 “개인투자자는 단기적으로 외국채 수익률의 3배를 추종하는 ETF 투자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장기물 한국채를 가장 추천한다”고 말했다.
회사채 금리는 내년 1분기 말에서 2분기 사이에 또 한 번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임 연구원은 “회사채는 발행 측에서 발행을 내년으로 미뤄놓은 상황이라 살 채권이 없어서 수급상 강세가 나타날 수 있지만 내년 초에 기관의 자금 집행 수요도 같이 몰려 있기 때문에 일종의 착시효과라고 봐야 한다”며 “1분기 말에서 2분기 사이에는 다시 회사채 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홍 대표 역시 한국채 장기물 투자가 미국채보다 상대적으로 매력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리와 환율 전망은 임 연구원과 달랐지만, 한국채 추천 의견은 동일했다.
홍 대표는 우선 내년 점진적인 환율 하락을 예측했다.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 봤는데, 이 경우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빠르게 잡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소비 상승 등 수요 측면이 아니라, 공급 측면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상승률 5%의 대부분은 공급 충격에서 왔다”며 “즉 소비가 늘어서 물가가 오른 것은 아니라서 내년 환율이 지금보다 100원 빠지면, 물가상승률은 1% 떨어진다. 내년 경기의 상승 탄력이 올해보다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채권의 실질적인 수익이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면 한국의 인하 속도는 더 빨라진다는 것 또한 그가 한국채를 추천한 이유다.
국채 투자는 장기물의 가격 민감도가 단기물보다 더 큰 만큼 2, 3년물 등 단기물보다는 금리인하에 따른 가격 변동과 민감도가 큰 10년 이상 장기물을 추천했다. 통상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미상환 위험이 커 금리가 더 높다.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신 가격을 싸게 주는 것이다. 단기금리보다 장기금리가 더 높은 게 정상이다. 달리 풀면 경제가 꾸준히 성장한다고 가정할 때 지금보다 더 먼 미래에는 높은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내년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인하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까지 치솟았다.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원인이라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콕 집어서 말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연방정부 2023회계연도(2022년 10월~2023년 9월) 재정적자는 전년 대비 23% 늘어난 1조6950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6.3%에 달한다.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을 받은 학자금대출 탕감 프로그램이 제외된다면 재정적자는 2023회계연도에 2조200억 달러로 전년(1조200억 달러) 대비 무려 2배 늘어난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국채시장에서 해당 규모 정도의 자금을 조달해야 원활한 정부지출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적자를 메우기 위한 추가 국채 발행 가능성이 높아지면 채권 가격 하락을 야기할 수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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