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Fed 의장은 2024년에도 ‘higher for longer’ 전략이 계속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죠.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로 인해 경기둔화, 금융 발작이 나타나면 ‘과잉긴축’의 근거가 되고, Fed도 통화정책 기조를 바꿀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1년여의 긴축이 멈추고 불확실성이 사라진다면 시장은 어떨까요. ‘불(bull) 마켓’이 펼쳐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피어오릅니다.
우리는 또 한번 증시의 낙관에 기대야 할까요. 2024년 피벗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년 주가는 오를까요.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내년 연간 증시 전망에서 코스피지수 고점을 2600~2800선으로 예상했습니다.
‘코스피 3000’ 전망은 없었으나 올해 지수 고점이 2668.21, 최저점이 2170.67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코스피 2800은 꽤나 높아 보입니다.
주요 증권사들이 코스피의 고점을 이같이 예상한 것은 내년 Fed의 통화정책 방향이 바뀌면서 증시도 바닥에서 반등할 것이란 기대감 때문입니다. Fed의 긴축이 종료되고 증시 랠리가 펼쳐질 것이란 예상이죠. 이 중에서도 KB증권은 2810선을 제시해 주요 증권사 중 코스피 밴드가 가장 높았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도 내년도 코스피지수의 목표치를 2800으로 전망했고요.
이들은 미국 금리 상승의 사이클이 조기에 종료될 것으로 여기거나 또는 기준금리가 더디게 내리더라도 시장금리가 먼저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Fed의 선택보다 빠르게 시장이 움직일 것이란 예측입니다.
지금까지 Fed는 지독한 매파(통화긴축 선호)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지난 11월 9일 “추가적인 긴축이 필요한 경우가 오면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Fed가 정한 미국의 물가상승률 목표치는 2%. 한때 9%까지 도달했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4%까지 둔화했지만 정책 목표인 2%에는 못 미치지요. 파월은 이를 위해 현재의 긴축정책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는 뜻을 다시 한번 내비친 것입니다.
문제는 시장의 반응입니다. 시장에서는 Fed가 사실상 금리인상을 멈췄고, 시간이 지난 뒤 금리인하를 통해 시중 통화량을 늘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 나온 날 미국 투자은행인 웰스파고의 안젤로 마노라토스 거시담당 전문가는 로이터에 “파월은 여전히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본질적으로는 금리인상을 끝냈고 내년 중반 금리를 내리기 시작할 것이라는 시장의 견해를 바꾸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진짜 긴축이 종료될까요.물론 시장이 Fed의 긴축 행보 종료를 기대했다가 실망한 것은 올해에만 여러 차례입니다. 이번에도 경제 여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피벗에 대한 기대가 성급한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독일 투자은행인 도이체방크의 투자전략가 짐 리드는 11월 7일 인터뷰에서 “비둘기적(통화완화 선호) 전망에 시장이 반응한 것은 이번이 7번째다. 이전 6번 동안 우리는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가 매번 좌절되는 것을 보았다”고 지적하기도 했죠.
하지만 전문가들은 내년은 다르다는 입장입니다. 이은택 KB증권 수석애널리스트는 “Fed가 짧은 기간 내에 과잉긴축을 거둬들이진 않겠지만 시장이 ‘과잉긴축’에 진짜 겁을 먹는다면 금리가 상승하는 게 아니라 금리가 하락하면서 주가도 동반 하락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가 바로 피벗의 시그널이란 겁니다. 예컨대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의 증시 랠리도 이러한 경로였습니다. SVB 붕괴가 시스템의 위기로 확산하는 게 아니냐는 시장의 불안감에 기준금리 인상이 조기 종료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면서 강세장이 연출된 거였죠. -주목할 지표는 무엇인가요.이를 결정할 열쇠는 당연히 Fed가 쥐고 있습니다. 관건은 ‘시점’이겠죠. 언제 정책방향을 전환할지에 대해선 월가에서도 전망이 각기 다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Fed가 내년 6월부터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해 분기당 0.25%포인트씩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모간스탠리도 비슷하게 예측합니다. 반면 스위스의 UBS는 이르면 내년 3월부터 금리를 내릴 것이란 파격 전망을 내놨습니다. UBS 연구팀이 공개한 노트에는 ‘Fed가 내년 2분기 미국이 경기침체에 들어서지만 물가가 둔화되고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금리인하 조치에 나설 것’이란 입장이 담겼습니다. 골드만삭스는 보수적인 시각입니다. 고금리 장기화가 이어지면서 Fed의 첫 금리인하 시기가 내년 4분기가 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그럼에도 월가의 공통 의견은 ‘내년엔 피벗이 시작된다’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피벗 기대감에도 내년 증시 전망은 ‘박스피’입니다. 고점은 3000을 넘지 못했고, 저점으로 2000선 아래를 제시하는 곳도 있어 내년에도 안갯속 증시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교보증권은 코스피 밴드를 1900선까지 낮춰 잡았습니다. 올해 최저점인 2170.67보다도 꽤나 낮은 수치입니다. 교보증권은 올해 증시 상승을 제한했던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면서 주식시장 밸류에이션 부담, 기업 마진 악화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봤습니다.
코스피 밴드 1900에서 2800. 이를 본 어떤 투자자는 ‘이 정도 밴드 차이면 나도 전망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걸까요. 원인은 실타래처럼 얽힌 잠재 불안요인들에 있습니다. 2023년 재테크 시장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지정학 위험과 공급망 불안, 긴축 후반기의 금융시장 불안 등이겠죠. 2024년에도 잠재 불안요인은 곳곳에 숨어 있을 겁니다. 이들이 툭툭 튀어나올 때마다 경기, 물가, 금리의 방향이 흔들리겠죠. 2023년의 물가, 경기, 금리 전망이 모두 틀릴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요. 그리고 이게 바로 각 증권사들의 코스피 밴드의 갭을 키우는 주된 요인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잠재 불안요인들이 숨죽여 준다면야 2024년은 예상 경로대로 흐를 겁니다. 지난 10월 발표된 미국의 CPI와 코어 CPI가 각각 3.2%, 4.0%로 시장의 예상치를 하회하면서 시장에서는 ‘디스인플레이션’ 국면이 유지될 것이란 전망을 조심스레 하고 있죠. 박석중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예상 경로를 따른다면 2024년은 디스인플레이션과 성장 저점을 확인하는 국면”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경기침체를 동반한 물가하락’을 뜻하는 디플레이션과 달리 디스인플레이션은 상승한 물가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물가가 오르긴 하지만 상승률이 점차 줄어드는 거죠. 디플레이션이 경제에 적신호라면 디스인플레이션은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1980년대 초 폴 볼커 Fed 의장의 인플레 정책이 역사적인 성공 평가를 듣는데, 이 정책의 별칭이 바로 ‘성공적인 볼커 디스인플레이션(successful Volcker disinflation)’일 정도입니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물가 안정 주장이 성급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코로나 이후 4년간 거대한 물가상승을 만들어냈던 모든 요인이 이제는 안정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영향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디스인플레이션 국면은 과거 경험치를 볼때 주식, 채권의 동반 강세가 기대되는 구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습니다. 디스인플레이션 구간이 유지되긴 하나, 볼커 때처럼 저물가는 아닙니다. 인플레이션의 구조적 압력으로 고물가·고금리 장기화에 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자산배분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위험 자산 배분 원칙이던 ‘주식 6, 채권 4’(60대 40) 전략을 폐기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피벗에 대한 베팅보다 고금리 장기화 대응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박석중 애널리스트는 “과거 ‘고성장-저물가-저금리-신용창출’ 환경에서 ‘저성장-고물가-고금리-신용축소’ 세상으로의 전환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특히 한국 가계금융시장은 저성장-고령화-가계부채 문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 금융자산과 실물자산의 적절한 비중 조정과 달러 중심의 외화 자산, 쿠폰(채권)형 자산 편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주식, 채권, 대체 6:3:1를 근간에 두고 상반기 주식 우위와 단기물 국채 중심의 보수적 대응, 하반기 주식에서 채권 우위로의 전환을 추천했습니다.
주식만 본다면 어떨까요. Fed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주식시장의 주도주도 바뀔 겁니다. 금리인하 이후 새로운 주도주를 중심으로 지수는 상승하겠죠. 금리를 인하하면 기업 비용 부담이 낮아지기 때문에 이익 개선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니까요. 유동성 장세와 실적 장세가 동반해서 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업종별로 전망이 각기 다르긴 합니다만, 내년 유망 업종에 대해서는 이견 없이 반도체가 대부분 포함됐습니다. 반도체 빅2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지난 3분기 실적이 전분기 대비 대폭 개선되면서 업황 바닥을 찍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동원 KB증권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삼성전자 실적 개선 가속화가 전망된다”며 “2024년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6배 증가한 33조3000억원으로 추정되고 높은 실적 가시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조선도 10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고가 수주물량 건조가 늘면서 수주잔고를 확보해둔 2026년까지 3년 동안 실적이 더 좋아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밖에도 화학, 철강, 운송 등 제조업 개선을 점칩니다. 신흥국에서 철강 수요가 빠르게 성장할 것이란 전망입니다. K-콘텐츠인 게임, 화장품주는 여전히 유망주입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옥석 가리기는 필요하겠죠. 이웅찬 애널리스트는 “업종을 선별하는 기준은 부채 비율이 고점 대비 하락했느냐, 영업이익률은 높아질 것이냐, 순이익보다는 FCF(잉여현금흐름) 증가율이 높을 것이냐가 핵심 변수”라고 설명했습니다. 2024년, 성투를 기대합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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