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솜포케어 헬스케어 서비스. 사진=솜포케어
솜포케어 헬스케어 서비스. 사진=솜포케어
저출산과 고령화로 전 세계 보험사들이 성장 정체를 겪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 그리고 중국과 미국 등 세계 시장은 보험과 인접한 헬스케어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한국 보험사들도 일찌감치 기회의 샘을 찾아 나섰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아 고객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헬스케어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보험사들이 고전하는 사이 일본과 중국, 미국 등은 헬스케어 산업을 등에 업고 글로벌 무대로 성장하고 있다.

#. 일본 최초 손해보험사인 솜포재팬을 계열사로 둔 솜포홀딩스는 2018년 자회사 ‘솜포케어’를 설립해 요양산업에 진출했다. 저출산·고령화로 보험 가입 수요가 줄어들면서 새로운 시장, 그중에서도 고령자들의 헬스케어 시장에 주목한 것이다. 솜포홀딩스의 계획은 적중했다. 솜포케어는 설립 2년 뒤인 2020년 기준 1318억 엔(1조1966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요양업계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21년 기준 솜포케어가 운영 중인 고령자 주택은 452개, 요양시설은 2만7000여 실에 달한다. 솜포케어가 손해보험사 솜포재팬의 백년대계를 향한 신성장동력으로 자리한 순간이다.

최근 국내외 보험회사들이 헬스케어 서비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고령화 인구, 만성질환자가 증가함에 따라 질병 치료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질병 예방·관리나 건강관리·증진 서비스 등을 포괄하는 헬스케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의 손보사 솜포재팬은 저출산·고령화로 보험 가입 수요가 줄어들자 시설요양서비스 및 간병서비스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았다.
중국의 최초 보험 합자회사인 평안그룹도 성장세가 주춤하는 순간 헬스케어에 주목했다. 지금은 보험·은행·자산관리 등 종합금융과 의료·헬스케어 분야를 두 가지 축으로 고객 2억2900만 명을 보유한 중국의 대표적인 종합금융사로 성장했다.
솜포케어 헬스케어 서비스. 사진=솜포케어
솜포케어 헬스케어 서비스. 사진=솜포케어
보험사, 부수업무 신청 감소 ‘왜’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와 전반적인 시장 포화 등으로 성장 정체를 겪고 있는 국내 보험사들에 이들의 성공은 좋은 벤치마크 대상이다. 실제 국내 보험사들은 일본의 솜포나 중국의 평안그룹처럼 요양업이나 상조업, 헬스케어 서비스 등을 통한 새로운 먹거리 마련에 나서고 있다.

예컨대 KB라이프생명은 요양업을 위해 KB골든라이프케어를 자회사로 편입했으며, 신한라이프는 서울에 실버타운 조성을 위한 부지 매입을 완료하고 추가적인 요양시설 부지 매매를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NH농협생명도 현재 요양사업 진출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가동 중이다.

이들은 헬스케어 서비스에도 적극적이다. 삼성생명은 ‘HeALS’ 앱을 통해 건강증진 서비스를, 교보생명은 ‘Kare’ 앱을 통해 건강 관련 서비스뿐 아니라 멘털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동양생명은 실제 스포츠 활동 참여를 통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존 보험사들의 건강 관리 목적의 앱과 달리 테니스를 통한 오프라인 체험형 헬스케어 서비스로 독자적인 활로를 찾은 것이다.
동양생명은 ‘테니스’라는 스포츠 활동을 통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동양생명이 주최한 '2023 서울시 시니어테니스대회' 사진=동양생명 제공
동양생명은 ‘테니스’라는 스포츠 활동을 통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동양생명이 주최한 '2023 서울시 시니어테니스대회' 사진=동양생명 제공
헬스케어는 보험사가 직면한 성장 정체의 어려움을 해결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이자 시너지 효과가 탁월한 산업이다. 헬스케어 서비스가 고객정보나 건강 및 금융데이터 등 보험업 고유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등 보험업 인접 영역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헬스케어 시장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솜포나 평안그룹과 달리 국내 보험사들의 성과는 미미한 편이다. 국내 보험사가 제공하는 헬스케어 서비스 대부분이 대형병원의 진료예약, 건강검진 예약 대행 등 단순 건강 활동 기록이나 건강 개선 효과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현재 보험사들은 의료기기 활용 제한, 개인 의료정보 침해 논란 등으로 제한된 헬스케어 서비스만 가능하다. 업계에선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의료 상담, 진료 등은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어 헬스케어 서비스를 다각도로 확대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요양업 진출의 경우 토지와 건물 임차 규제로 인해 도심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요양시설을 설립하는 것이 쉽지 않아 부지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 상조업은 보험업법 시행령이 정하는 업무 범위나 보험업법상 타 업종 지분출자 제한 등의 이슈가 있어 서비스 진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헬스케어 서비스의 경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원격진료나 의약품 배송 등과 관련된 서비스 등은 여전히 의료 서비스로 간주되어 보험사는 서비스 제공이 불가하다. 비의료 행위에 해당하는 건강증진 및 질병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건강서비스만 제공이 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보험사도 헬스케어 사업 진출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험사들의 부수업무 신청이 최근 몇 년간 감소하고 있다. 보험사의 부수업무 신고 건수는 2020년 33건, 2021년 11건 그리고 작년에는 8건을 기록했으며 올해도 지난 10월 기준 7건에 그쳤다.

반면 일본은 수년 전부터 보험사에 대한 규제완화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보험사의 비금융업 진출 규제완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했다. 그동안 일본은 보험사들의 핀테크 기업에 대한 의결권 10% 초과 출자를 허용하고 의결권의 5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했으며, 부수업무에서 5개 업종에 대한 ‘비금융업’을 허용해왔다.

이러한 적극적인 규제완화 방침은 전통적인 보험사들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본연의 보험업 이외에 인수합병(M&A)으로 요양업 진출에 성공한 솜포홀딩스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사인 유나이티드헬스그룹도 제도 개선을 기반으로 헬스케어 시장에 진입해 대성공을 거뒀다. 이 회사는 디지털화된 토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자회사 옵텀(Optum)을 통해 미국 최대의 건강보험 기업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의료보험사로 성장했다.

유나이티드헬스의 성공적인 헬스케어 시장 진입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진행한 보험업과 의료기관 네트워크 간 광범위한 데이터 인프라 구축이 주요 성공 원인으로 꼽힌다. 신사업 진출 향한 제도 개선 필요 한국에서도 규제의 못을 뽑기 위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감독당국은 지난해 보험사의 1사 1라이선스 규제나 화상통화를 통한 보험모집 규제 등에 대한 완화를 통해 보험업계의 역동성 제고에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금산분리 완화와 부수업무 확대 등 보험사의 신사업 진출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 말 금융위원회는 시대에 맞는 금산분리 제도 변화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다며 부수업무 및 자회사 출자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으나 금융회사의 비금융업 진출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의 상권을 침해할 가능성 등이 있다고 판단해 제도 개선을 보류했다.

이 사이 국내 보험사들은 헬스케어 사업 진출 시기를 뒤로 미뤄야 했고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주요 보험사들은 헬스케어 산업이란 성장동력을 등에 업고 각국을 넘어 글로벌로 성장의 무대를 넓히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국내 보험사들도 일본의 솜포홀딩스나 미국의 유나이티드헬스와 같은 경쟁력 있는 보험사가 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며 “지금 필요한 건 이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