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사진=연합뉴스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사진=연합뉴스
한화가 방산·우주항공·조선·신재생에너지에 이어 새로운 성장동력인 2차전지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간 2차전지 사업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던 한화는 전기차 수요 증가로 장기적인 성장성이 주목받자 2차전지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한화가 주목한 것은 2차전지 근간이 되는 설비다.

장비 없으면 배터리도 없다…장비 노하우로 틈새시장 공략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배터리 장비시장은 2022년 15조원 규모에서 2030년 63조원 규모로 3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까진 중국 기업들이 50% 이상의 점유율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등으로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신규 투자가 늘고 있어 전체 시장이 커지고 있다.

한화그룹에서 배터리 장비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는 그룹 지주회사격인 (주)한화의 모멘텀 부문이다. 한화 모멘텀은 IRA로 배터리 현지 수요가 확대되며 삼성SDI와 스웨덴 노스볼트로부터 장비 수주에 성공하는 등 수주를 늘리고 있다.

한화 모멘텀의 올해 3분기 누적 수주액은 7772억원으로 2022년 한 해 규모(5942억원)를 이미 넘어섰다. 전체 수주잔고는 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 70년간 쌓아온 공정장비 노하우를 바탕으로 2차전지에서 새로운 모멘텀을 찾은 덕분이다. 한화는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려 2030년 매출 3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화 모멘텀은 지난 12월 4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한화 배터리 데이’를 열었다. 2차전지 제조 전반에 걸친 제조장비 라인업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톱티어 배터리 솔루션 프로바이더’가 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양기원 한화 모멘텀 대표는 “2차전지 산업의 전 공정을 포괄하는 토털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서 한국의 2차전지 산업경쟁력 확보에 이바지하겠다”며 “중국을 이기고 세계 1위 장비업체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화 모멘텀은 2024년까지 △세계 최초 자율주행 코팅 기술 △세계 최대 규모 소성로 △공정 풀 턴키 솔루션(Full Turn-key Solution)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팩토리 등 차별화 기술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양기원 (주)한화 모멘텀 대표 사진=(주)한화 제공
양기원 (주)한화 모멘텀 대표 사진=(주)한화 제공
‘김동관 사단’ 양기원, 글로벌 톱티어 전략 진두지휘

한화 모멘텀은 1953년 창립 이래 기계 및 자동화 사업의 강자로서 꾸준한 역량을 쌓아왔다. 2차전지, 태양광, 디스플레이, 클린물류, 반도체 등의 장비 사업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협동로봇 사업을 분할하고, 2차전지와 태양광 공정장비 솔루션 제공에 집중하고 있다.

한화 모멘텀 2차전지사업부는 다년간 플랜트, 파워트레인 사업을 통해 열처리 장비와 자동화 기술 역량을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2009년 소재 및 전극 공정장비를 출시하며 2차전지 장비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20년부터는 사업부 체제로 조직도 개편했다. 핵심 인력 확보에도 총력을 기울여 삼성SDI 출신 류양식 전무를 2차전지사업부장(전무)으로, LG에너지솔루션 상근자문 출신의 권기석 상무를 유럽사업TF장으로 영입했다.

김동관 부회장 사단으로 분류되는 양기원 대표가 한화 모멘텀을 이끌고 있다. 그는 2022년 7월 ‘원포인트 인사’에서 실질 지주사인 (주)한화 글로벌부문 대표에 오른 뒤 올해 5월 모멘텀부문 대표로도 선임되며 그룹 내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주)한화는 전략·건설·글로벌·모멘텀·지원 등 모두 5개 부문으로 이뤄져 있는데 지원을 제외한 4개 부문에서 각각 대표이사를 두고 있는 구조다. 전략부문 대표는 김동관 부회장, 건설부문 대표는 김승모 사장, 글로벌과 모멘텀부문 대표는 양 대표가 맡고 있다.

양 대표는 올해 53세(1970년생)로 그룹 내에서 젊은 피로 꼽힌다. 1994년 한화케미칼(한화솔루션 전신)에 입사한 뒤 한화케미칼 중국 닝보법인 VCM팀장, 한화토탈 기획기술팀장, 한화케미칼 사업개발실장, 한화솔루션 전략기획실장 등을 역임했다. 김 부회장이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대표가 된 2020년 하반기부터 전략기획실장을 맡아 호흡을 맞췄다.
팩 조립 공정. 사진=(주)한화
팩 조립 공정. 사진=(주)한화
화성공정 (포메이션 라인). 사진=(주)한화
화성공정 (포메이션 라인). 사진=(주)한화
한화의 2차전지 사업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동관 부회장의 입사 이후 경영수업이 본격화되며 한화그룹은 태양광, 배터리 소재, 바이오, 나노 분야 등 4개 부문을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하고 집중 육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이 개화되지 않은 시기였고 배터리 관련 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4년여 만에 배터리 소재 사업을 중단했다. 비슷한 시기 태양광 사업이 분기 흑자를 달성하는 등 먼저 성과를 거두면서 태양광에 집중하게 됐다.

이때 쌓은 장비 노하우는 한화가 배터리 공장에 필요한 생산 관련 장비를 제조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핵심 동력이 됐다. 한화 모멘텀이 K배터리의 숨은 조력자로 글로벌 배터리제조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이유다.
그래픽=정다운 기자
그래픽=정다운 기자
전(全) 공정장비 공급…‘턴키 솔루션’ 강점

한화 모멘텀은 양극활물질-전극-조립·화성-모듈팩 등 2차전지 제조 공정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다. 배터리 제조공정에 필요한 설비를 만들어 턴키 방식으로 국내외 배터리 기업들에 공급하고 있다.

글로벌 장비시장은 각 공정별 기술과 제품에 특화된 소수의 메이저 공급사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중소 배터리 장비 협력사들에 공정별로 세부 발주가 이뤄져왔다.

최근 북미 신규 고객사들은 배터리 양산 노하우가 부족해 장비를 턴키로 발주하고 초기 운영까지 장비업체에 맡기려 하는 경우가 많다. 장비를 턴키로 발주하면 효율적인 장비 관리가 가능하고 공기가 단축되는 장점도 있다. 특히 스타트업 등을 중심으로 신규 공장에 대한 턴키 솔루션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턴키 경쟁력을 살려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류양식 2차전지사업부장(전무)은 “한화 모멘텀의 가장 큰 차별화 요소는 경쟁사 대비 기술적으로 가장 스마트 솔루션에 근접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글로벌 배터리 장비사들은 급성장한 중국의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아직 대기업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며 “한화 모멘텀은 대기업으로서 규모의 경제 실현, 스마트 솔루션 기술로 인해 향후 닥칠 시장 변화 대응에 유리하다”고 했다.
류양식 (주)한화 모멘텀 2차전지사업부장이 12월 4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화 배터리 데이’ 행사에서 글로벌 넘버원(Global No.1)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주)한화 제공
류양식 (주)한화 모멘텀 2차전지사업부장이 12월 4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화 배터리 데이’ 행사에서 글로벌 넘버원(Global No.1)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주)한화 제공
한화 모멘텀은 세계 최초로 전극 코팅 공정을 무인화할 계획이다. 전극 코팅 공정은 숙련공의 손기술에 의존하고 있어 불량제품의 65% 이상이 나오는 공정이다.

류 전무는 “전극 코팅 기술은 배터리 품질의 70%를 좌우하는 핵심 공정이지만 현재 숙련공의 손끝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며 “무인화 코팅, 주름·단선 예측 및 자동 보정, 예지보전 시스템 등 스마트화를 통해 수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한화 모멘텀은 양극재 핵심 공정인 소성로를 기존 4열 3단 55m에서 6열 2단 27m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소성로는 양극 활물질을 950℃에서 12시간 이상 합성 및 열처리하는 소재 생산의 핵심 공정이다. 소성로의 크기에 따라 양극재 생산의 캐파가 결정된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생산능력이 기존 월 3000톤에서 5000톤으로 늘어난다.

한화 모멘텀은 차세대 양극재 공정장비, 실리콘 음극재 공정장비, 전고체·건식극판 공정장비, 차세대 폼팩터용 조립설비 등 혁신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기술력 면에서 가장 앞서 있는 전고체 건식 기판 공정장비는 2028∼2030년 상용화를 목표하고 있다.

이형섭 R&D센터장은 “양극재 공정장비, 실리콘음극재 공정장비 등 차세대 기술을 개발 중”이라며 “신소재와 공법이 활용된 미래 기술을 선점해 생산성과 원가를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 모멘텀은 기존 프레스, 슬리터 기술에 건식극판, 연속등반가압, 라미네이터 등 신기술을 더해 2028년까지 풀 턴키 방식의 전고체 생산라인을 개발한다는 목표다.

한화 모멘텀은 IRA에 대응해 현지화 전략도 준비 중이다. 이원우 마케팅팀장은 “IRA는 큰 틀에서 볼 때 배터리 공정장비 업체에는 시장 1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라며 “미국 시장에 선진입해서 현지에서 제작 공급하는 방식으로 중국 업체를 방어하겠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