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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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로봇전시회(IREX 2023)에서는 로봇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변화상들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전 전시회에 등장했던 로봇들은 빠르고 정확하게 작동하고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는 등 단일 로봇 제품의 동작 성능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뒀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서는 개별 로봇이 아닌 다수의 로봇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시스템화, 산업용로봇의 영역 확장, 각종 AI를 장착한 로봇의 대거 등장 등 새로운 추이가 돋보였다. 역대 최대 규모이자 질적으로 변모한 양상팬데믹으로 위축된 도쿄 국제로봇전시회가 올해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해외 기업의 참여도 대폭 늘어나서 50여 개에 그쳤던 이전 행사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121개 기업이 참가했다. 국적별로는 중국의 50개사를 비롯해 독일 16개사, 한국 12개사, 미국 9개사, 대만 9개사 등이 참가해 다양한 로봇 제품을 공개했다.

올해 도쿄 국제로봇전시회는 참가 기업의 증가와 같은 단순한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진일보한 모습을 드러냈다. 산업용로봇의 작업 영역이 용접, 절단 등 전통적인 제조 공정을 넘어서 물류 공정으로 확장하는 양상과 더불어 로봇이 개체를 넘어 시스템화되는 추세, 로봇에 각종 AI가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동향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밖에 협동로봇의 영역 확장, 모바일 협동로봇의 내재화 등 최근 로봇 시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5가지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었다.시스템화, 물류 공정으로의 확장 추세산업용로봇의 적용 공정이 용접, 절단, 운반 등 전통적인 제조 공정을 넘어 물류 공정으로 확장되는 추세가 더욱 강해질 조짐이 재차 확인되었다. 산업용로봇 기업들은 수직 다관절 로봇을 비롯한 각종 산업용로봇들이 제조 공장 내 물류 작업이나 창고 내 물류 작업을 원활하게 수행하는 공정을 전시해 많은 이목을 끌었다.

협동로봇의 선두주자인 유니버설로봇(Universal Robots) 등 다수의 로봇 기업들이 물류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을 전시했다. 유니버설로봇의 경우 신제품인 가반하중 30kg급의 중대형 협동로봇이 상자, 타이어 등의 중량 물체를 옮기거나 운반하는 공정을 전시해 큰 관심을 받았다.

가와사키중공업의 전시장에서는 토르소(Torso)형 휴머노이드, 즉 머리와 팔만 갖춘 휴머노이드의 상반신과 AMR(Autonomous Mobile Robot)이 결합한 로봇이 일상 공간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가와사키의 휴머노이드가 사람처럼 손으로 문을 열고 연구실로 들어가서 책상 위에 놓인 실험용 샘플이 담긴 선반을 집어든 다음, 운반용 AMR에 옮겨 싣는 작업까지 시연했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들의 전시장에서는 로봇 성능의 향상과 함께 로봇 시스템으로 발전하는 양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의 오카무라는 영국의 온라인 신선식품 유통업체인 오카도(OCADO)와 유사한 픽업형 AGV 기반 무인 풀필먼트 물류창고 시스템을 전시했다.

무진(Mujin)은 상자나 물건이 들어 있는 카트를 수직 다관절 로봇들과 AMR들이 운반하는 물류 공정 시스템을 전시했다. 산업용로봇의 주요 기업인 야스카와(Yaskawa)는 사람 없이 다수의 운반용 AMR과 협동로봇들로만 구성된 배터리 셀 조립, 운반 자동화 공정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로봇 기반의 자동화 솔루션을 전시해서 크게 주목받았다. 시각, 자연어 처리 등 AI의 도입도 확산각종 AI를 장착한 로봇들이 대거 등장했다. 많은 산업용로봇, 협동로봇 기업들은 이미지를 인식하는 시각 AI에 기반한 물체 인식 기능을 로봇에 장착함으로써 로봇의 성능 향상과 용도 확장을 동시에 꾀하고 있었다.

협동로봇의 선도 기업인 테크맨로봇(Techman Robot)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머신러닝 방식의 시각 AI를 탑재한 AI 협동로봇 솔루션을 공개했다. 머신러닝 AI를 이용해 물체의 위치, 모양, 각도 등을 측정한 다음, 대상 물체를 최적의 자세로 다룰 수 있는
외양상 AI 협동로봇은 로봇 팔의 손목 부위에 달린 플럭 앤드 플레이(Plug and Play) 방식의 3D 카메라 모듈을 제외하면 기존 협동로봇과 유사하다.

기존 로봇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내장된 시각 AI다. AI 협동로봇은 3D 카메라로 촬영한 대상 물체의 데이터를 시각 AI로 분석해 불량품 검사, 분류, 특정 물체만 골라내는 피킹 작업 등 시각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피킹 작업을 할 때는 시각 AI를 통해 물체의 모양, 크기, 위치를 분석할뿐더러 작업 선반에 부착된 QR 코드를 통해 물체가 놓인 작업대의 기울기까지 파악해 물체를 안정적으로 쥐거나 옮길 수 있도록 로봇 팔과 그리퍼의 관절 각도를 적절하게 조정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일부 기업들은 AI를 활용해 협동로봇의 티칭 기능을 향상시키고 있다. 티칭이란 로봇 투입 공정을 바꿀 때마다 새로운 작업에 맞춰 로봇이 작동하도록 관련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교육하는 기능이다. 티칭 기능은 일반적으로 협동로봇 기업들의 강점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용로봇의 선두 주자인 일본의 파낙(FANUC)은 머신러닝 AI를 통해 티칭 기능을 향상시킨 협동로봇을 공개했다. 파낙의 AI 기반 티칭 기능은 기존 티칭 방식보다 사용하기에 훨씬 단순하고 빨라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자연어 AI를 탑재한 산업용로봇도 등장할 전망이다. 산업용로봇 제어기 전문 기업인 오스트리아의 케바(Keba)는 시각 AI와 자연어 AI를 동시에 탑재한 로봇 제어기를 공개했다. 케바의 AI 로봇 제어기는 기존 로봇 제어기에 AI 모듈을 추가 장착한 것이다. AI 로봇 제어기가 부착된 협동로봇에 사람이 “상자 안에 있는 작은 쿠키 봉지를 꺼내줘”라고 말하면 협동로봇은 사탕, 과자 등이 혼재된 상자 안에서 과자 봉지만 골라서 꺼내는 작업을 시연했다. 케바는 인간과 로봇 간의 상호 작용(HRI, Human-robot Interaction) 과정에서는 자연어 AI를 이용해 음성 명령을 인식하고, 로봇의 작동 과정에서는 시각 AI로 대상 물체를 식별하도록 함으로써 로봇의 사용 편의성과 작업 성능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데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협동로봇의 공정 확장최근 파낙, 유니버설로봇, 테크맨로봇 등은 가반하중이 20kg 이상으로 증대되고, 동작의 정확도, 정밀도도 한층 향상된 협동로봇들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가반하중이 높아지면서 협동로봇도 용접기 등 무거운 작업 도구를 다룰 수 있게 되었고 정확도, 정밀도 등이 높아지면서 보다 정교한 작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그동안 산업용로봇이 독점해 왔던 용접, 절단 등의 공정으로 협동로봇 기업들이 진입하려는 움직임이 종종 감지되었는데, 이번 행사에서도 협동로봇과 산업용로봇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재차 확인되었다.

또한 협동로봇과 AMR이 결합한 모바일 협동로봇의 증가 추세와 더불어 다수의 선도 기업들은 외부 파트너와의 협력보다 자체 개발을 우선시하는 동향이 확인되었다. 산업용로봇의 선도 기업인 야스카와와 독일의 쿠카(Kuka)는 협동로봇과 AMR 기술 일체를 내재화해 독자적인 모바일 협동로봇을 출시했고, 유니버설로봇도 같은 그룹사인 AMR 선도 기업 MIR과 함께 모바일 협동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두 회사는 모두 반도체 장비 기업 테라다인(Teradyne)의 자회사이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