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 무기 구매의 큰손으로 떠오른 폴란드에서 정권교체 이슈가 생기면서 무기 수출 계약에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폴란드 정권교체, 무기 수출 악재 되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2월 4일 폴란드 군비청과 K9 자주포 등을 추가로 수출하는 3조4475억원 규모의 ‘2차 실행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2년 폴란드 군비청과 K9 627문, 다연장로켓 천무 288대를 수출하기 위한 기본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8월 K9 212대, 11월에는 천무 218대를 수출하는 1차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번 2차 계약은 K9의 남은 계약 물량(460문) 중 일부인 152문을 금융계약 체결 등을 조건으로 2027년까지 순차적으로 공급한다는 내용이다. 잔여 물량을 모두 계약하지 못해 폴란드와의 협상 과정에서 계약 규모가 축소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 등 국내 방산업체들은 폴란드와 2022년 17조원 규모의 1차 무기 수출계약을 체결했고, 3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2차 무기 수출계약을 올 상반기 내 체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국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 한도에 막혀 당초 예상보다 2차 계약이 지연돼 왔다. 그러던 중 지난 11월 국내 5대 시중은행이 국내 방산업계에 공동 대출을 통한 금융지원을 결정하면서 이번 계약이 이뤄졌다.
통상 건설, 교통, 방산 등 대형 프로젝트들은 정부 간 계약(G2G) 성격이 짙고 수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수출국에서 구매국에 정책 금융·보증·보험을 지원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 그런데 현행 수출입은행법 및 시행령은 특정 개인·법인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40%로 제한하고 있어 금융지원 한도가 막히면서 방산업계는 폴란드와의 2차 수출 계약에 난항을 겪어왔다.
금융지원 한도에 막혀 2차 수출 계약이 지연되는 사이 폴란드에서는 지난 10월 치러진 총선에서 친유럽연합(EU) 성향의 야권연합이 과반을 확보하면서 현재 정권교체가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안보위협에 대응해 국방력 강화를 천명하며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무기를 적극적으로 구매해왔다. 2024년 국내총생산(GDP)의 4% 이상을 국방비에 지출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NATO 회원국 중 최대치다. 과거 정권교체 후 계약 파기 전력
국내 방산업체들은 그간 국방력 강화를 기조로 내건 법과정의당(PiS)과 대규모 무기 수출계약을 맺었는데, 정권교체에 따른 국방정책 변화로 무기 수출계약이 축소되거나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보수성향 집권당인 법과정의당은 긴급 지출을 위한 특별 예산을 편성해 한국 무기 구입자금을 조달했는데 야권연합은 특별 예산 편성을 비판해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야권연합이 ‘친EU 노선’을 표방하고 있는 점을 들어 한국이 맺은 방산 계약이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과거 폴란드는 정권교체로 인해 무기 계약을 파기한 전력도 있다. 2015년 법과정의당 집권 후 이듬해 프랑스 에어버스에 발주한 카라칼 헬리콥터 50대를 취소하고 미국 록히드마틴의 헬리콥터 매입을 발표한 바 있다. 카라칼 헬리콥터 거래 파기는 양국 간 외교분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야권연합이 정국 변화에도 방위력 강화 기조를 이어간다는 방침으로 알려져 당장 무기 계약 취소는 없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다만 친EU 성향인 폴란드 새 정부가 유럽산 무기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한국과의 무기 계약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트럼프 ‘뜻밖 선전’…대미 투자 늘린 한국 긴장
전기차·배터리업계에선 2024년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을 앞두고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경선 전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리턴 매치’가 치러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종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주요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크게 앞서면서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의 최대 치적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역사상 가장 큰 세금 인상”이라고 비난하고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왔던 만큼 재집권할 경우 IRA를 포함한 기후변화 관련 정책을 뜯어고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전기차 전환 정책을 ‘광기의 산물’이라고 맹비난하며 “전기차는 모두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미시간주의 위대한 자동차산업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합주이자 미국 자동차 제조업 수도였던 미시간에서 유권자 표심을 겨냥한 발언이다.
IRA, 반도체 지원법(CSA) 등에 발맞춰 대미 투자를 확대했던 국내 업계는 현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배터리 업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IRA에 따른 전기차 할인정책과 보조금을 대폭 축소할 것으로 알려져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인 만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IRA 폐기는 어려울듯…보조금 축소 가능성도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배터리 3사는 IRA의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수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3분기에 받은 AMPC가 2155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29.4%에 달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 2·3공장을 비롯해 스텔란티스·혼다·현대차그룹과의 합작공장을 설립 중이다.
단독 공장인 미시간 공장 증설과 애리조나 공장 신설도 진행 중이다. 증권업계는 이 공장들이 본격 가동을 시작하는 2025년에는 생산능력이 대폭 늘며 LG에너지솔루션의 AMPC 수취 금액이 5조8000억원, 2026년에는 11조3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주요 외신에선 트럼프 집권 시 IRA 등 기후변화 관련 정책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들에게 주던 각종 보조금이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IRA, CSA 등에 발맞춰 삼성·SK·현대차·LG 등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한 금액이 555억 달러(약 7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이뤄진 전체 대미 투자액 2000억 달러(약 260조원)의 4분의 1 이상을 한국 기업들이 투자한 것이다.
다만 트럼프 집권 시 이제까지 주장대로 ‘IRA 전면 백지화’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후변화 흐름에 역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IRA 등 기후 정책의 일부 변화는 예상되지만 IRA를 폐기하기 위해 의회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현실화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