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 역사 겪은 동남아 신흥국들, 강대국 상대 위해 뭉쳐
정치안보·경제·사회문화 공동체가 목표, 베트남·인도네시아가 주도국 될 듯
그중에서도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은 우리나라의 대외정책에서 우선 고려되는 지역이다. 2022년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아세안 연대구상(KASI)을 제안했고, 2023년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연대구상을 거듭 밝혔다. 이에 우리 정부는 아세안 주요국과의 연대와 협력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어나가기로 했다.
우리 정부의 인태 전략은 3대 비전(자유·평화·번영)과 3대 협력 원칙(포용·신뢰·호혜)에 기반하고 있다. 개방적이며 공정한 경제질서가 인태 지역의 번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확신하에 핵 비확산, 대테러 방지, 공급망 안정, 사이버·기후변화·디지털격차·보건·해양 안보 분야에서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아세안은 아시아 지역에서 국가 간 연대(Solidarity) 필요성이 가장 먼저 형성된 지역이다. 태국을 제외한 모든 아세안 국가들은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이들 신생국은 강대국에 의한 주권침해와 내정간섭을 피하기 위해 1960년대 초부터 국가 간 연대를 모색했다. 1961년 필리핀, 태국 및 말레이연방은 동남아시아연합(ASA)을 결성했고, 인도네시아와 1965년 말레이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가 ASA에 동참하면서 1967년 아세안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가 차례로 아세안에 가입하면서 현재의 ‘아세안 10’ 회원국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아세안은 1997년 역내 무역자유화를 위한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 창설 작업에 착수했고, 2015년에는 지역통합을 공고히 하기 위해 아세안공동체를 출범시켰다. 이어 아세안은 2025년까지 3개의 공동체(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를 달성하는 목표를 설정했다. 궁극적으로 아세안은 정치적으로 단결되고, 경제통합을 이루며 사회적인 책임감을 구현하는 공동체로 발전해나가기로 했다.
아세안이 추구하고 있는 3개의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른 유럽연합(EU)의 발전과정을 벤치마크한 것으로, 아세안 국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맞지만 이를 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척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목표 시한인 2025년에 공동체 형성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경제통합마저도 어려울 수 있다. 아세안은 AFTA를 통해 대부분의 품목의 역내 교역에 대해 무관세를 실시하고 있지만, 관세는 경제통합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거시경제정책을 조율하는 효율적인 체제를 구축해야 하고, 공동체 차원에서 기금을 설정하고 저개발국에 대한 경제개발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하며, 회원국 간 인력이동이 자유화되어야 하는 등 현재의 아세안 국가들로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들이 적지 않다.
아세안 결성의 혜택이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역외국과의 관계 설정이 될 수 있다. 특히 1997년 태국발 외환위기 발생 직후 아세안은 동북아 국가와의 경제협력에 나섰다. 경제적 소국으로서는 동북아의 일본, 한국, 중국을 상대하기 버겁기에 아세안 10개 국가로 단합하여 ‘아세안+1’ 관계를 설정할 수 있었다. 2005년 아세안은 호주, 뉴질랜드 및 인도와의 연대를, 2011년에는 미국 및 러시아를 초청하여 매년 개최되는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확립함으로써 국제기구로서 면모를 갖췄다.
아세안 국가 중 오늘날 가장 주목을 받는 국가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될 것이다. 베트남은 1980년대 말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 채택 이후 최빈국에서 중진국 대열로 발전했고, 미-중 갈등 시대에 중국을 이탈한 기업들의 새로운 생산기지로 러브콜을 받는 국가이다. 2억7000만 명의 인구에 니켈 등 핵심광물 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는 경제안보와 공급망 안정화 차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아세안을 리드하는 국가가 뚜렷하지 않지만, 앞으로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가 아세안의 리더 국가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정인교 전략물자관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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