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출신 김용범과 시장출신 김용범 [하영춘의 경제이슈 솎아보기]

경제계에는 꽤나 유명한 두 명의 김용범이 있다. 한 명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낸 김용범(61) 해시드오픈리서치(HOR) 대표다. 다른 한 명은 자본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김용범(60)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이다.

필자가 아는 두 사람은 닮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이 더 많다. 관료출신 김용범은 국내 최고의 이코노미스트다(필자가 아는한 그렇다). 관료와 세계은행 선임 이코노미스트 경험, 엄청난 학구열 덕분에 국내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보는 안목이 탁월하다. 화술은 더 뛰어나다. 예를 들어가며 완벽한 논리를 구사한다. 제도를 만들어본 만큼 자신감도 넘친다. 어설픈 지식으로는 쉽게 반박하지 못한다. 시장출신 김용범도 시장을 읽는 통찰력과 확고한 철학은 관료출신 김용범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좀체 표현을 안 한다. ‘관료와 규제’라는 시장 포식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시장참여자 특유의 주의깊음이 몸에 밴 탓이려니 한다.

두 김용범은 판이한 환경에서 나름 ‘일가(一家)’를 이뤄왔다. 이유야 많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공통점은 하나다. 혁신과 도전이다(너무 진부한 말 같기는 하다) .

관료출신 김용범부터 보자. 30년 넘게 금융위원회 주요 보직을 섭렵한 정통 모피아다. 하지만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기존 모피아들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무엇보다 시장을 존중한다. 성장사다리펀드 프라이머리CBO 등 중요 정책을 입안하거나 기업 구조조정 방안을 짜면서도 시장이 망가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뒀던 걸로 기억한다.

2017년 암호화폐(가상자산) 광풍이 불때도 그랬다. 암호화폐 문제가 정치·사회적 이슈로 비화되자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발표를 앞둔 마지막 회의에서 김용범은 “갈등이 있다고 규제를 한다면 혁신성장은 꽃피우기 어렵다”며 “기술은 보호하되 부작용을 잡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덕분에 암호화폐 거래소는 살아 남았고, 대신 거래계좌 실명확인제도가 도입됐다.

그래서일까. 김용범은 작년 8월 블록체인 투자회사인 해시드가 만든 HOR 대표에 취임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물론 공직자 취업제한기간이 끝나는 2024년 3월 로펌으로 옮길 지도 모른다). “제도를 다뤄온 사람으로서 새로운 기술(테크)과 제도를 접목시켜 함께 발전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싶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기술과 제도의 공진화(co-evolution)’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거다. 김용범다운 도전이다.

시장출신 김용범은 요즘 뜨겁게 각광받는 스타다. 젊었을 적 대한생명 CSFB 삼성화재 삼성투신운용 등에서 ‘채권쟁이’로 명성을 날렸던 그다. 그러던 그가 2011년 메리츠금융그룹에 합류하면서 증권과 보험업계 판도를 바꿔 버렸다.

메리츠화재 대표로 취임(2015년)하면서 특히 그랬다. 취임하자마자 15% 가량의 직원을 내보내고 거래업체 수수료를 거의 반으로 싹뚝 잘랐다. 수익을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채권쟁이다웠다. “기존 관행과 기득권을 잘라낸 것”이라는게 그의 설명이었지만, 말뿐이려니 했다.

그러나 웬걸. 메리츠화재의 약진은 눈부셨다. 취임하던 해 사상최대인 1690억원의 순이익을 내더니만 2022년엔 8683억원으로 끌어올렸다. 2023년 3분기엔 4963억원의 순이익으로 업계 1위(3분기 누적으로는 1조3353억원으로 2위)에 등극했다. 뿐만 아니다.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 등 계열사 지분을 메리츠금융이 흡수하는 방식으로 ‘원-메리츠’를 완성했다. 이후 순이익의 50%를 주주환원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김용범은 제2회 한국기업 거버넌스 대상 수상자인 조정호 회장을 대신해 상을 받으면서 “(직원 주주가) 함께 웃어야 오래 웃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직원들에게 매년 연봉의 50%안팎을 성과급으로 주고 있는 걸 감안하면 빈 말이 아니다. 김용범다운 혁신이다.

길어졌다. 연말을 맞아 새해 사업계획을 짜느라 바쁘다. 내년 경기전망이 어둡다보니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럴 때일수록 판을 바꾸려는 혁신과 도전이 더욱 필요할 듯하다. 두 김용범처럼 말이다(그렇다고 두 사람의 단점이 없다는건 아니다. 장점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오해없으시기를…).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