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잊어라, 중요한 것은 만족이다[서평]
만족한다는 착각
마틴 슈뢰더 지음│ 김신종 역│한국경제신문│1만9800원
출퇴근 거리가 늘어나는 대신 더 높은 월급을 받을 수 있다면 장거리 통근을 택하는 게 나을까? 아이는 꼭 낳아야 할까. 언제 직업을 갖는 게 좋을까? 이 사람과 계속 연애를 해야 할까. 지금보다 친구가 더 필요할까.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 편이 좋을까? 운동을 더 많이 해야 할까.

이런 질문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다. 바로 ‘나를 만족시키는 것은 무엇일까’다. 그런데 왜 행복이 아닌 만족을 평가하는 걸까. 왜냐하면 행복은 감정에 의존하고, 따라서 뚜렷한 패턴 없이 지속적으로 변하는 속성이 있다. 반면 만족감의 규칙은 단순하다. 우리는 삶이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는 바와 일치할 때 만족감을 느끼고, 들어맞지 않는 상황에서 불만족을 느낀다. 누구나 만족을 추구하며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만족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언제 만족할까.

독일 자를란트대 사회학 교수 마틴 슈뢰더는 1984년부터 독일인 8만5000명을 대상으로 시행된 64만 건의 설문조사 데이터를 토대로 우리가 언제 만족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슈뢰더는 만족도에 대한 결과를 가족, 직장, 재정 상태, 친구, 건강, 정치적 태도 등의 영역으로 세세하게 나누고, 그래프를 통해 보기 쉽게 설명했다.

만족시켜 준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학 교수인 폴 돌란(Paul Dolan)은 우리가 실제로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데도 그렇다고 믿도록 기만하는 거창한 이념을 좇다가 함정에 빠져든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독일 남성은 자녀가 생기면 대체로 일을 줄이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가정적인 남편처럼 보이고 싶은 것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 시간과 실제 삶의 만족도를 따져보면, 자녀가 있는 독일 남성은 오랜 시간 일할 때, 그것도 자녀가 없는 남성보다도 더 길게 일할 때 만족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독일 여성은 배우자가 자녀를 함께 돌보는 게 좋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남편이 집 밖에 오래 있을수록 만족도가 점점 올라간다. 이는 대다수의 예상과 다르다.

우리는 통계를 통해 어떤 조건이 갖춰졌을 때 만족도가 높아지는 정확한 이유를 인과관계를 근거로 추측할 수는 있지만, 그 이유를 정확히 밝혀내지는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족도가 언제 높아지는지를 알아두는 것은 그 자체로도 유용하다.

가령 소득이 특정 한도를 넘어서면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그 ‘이유’는 잘 모르더라도 삶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약을 복용하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약이 정확히 어떤 효과를 일으키고 그 효과가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낱낱이 알지도 못한다. 다만 약을 먹고 건강이 나아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우리는 ‘평균’이 아니며, 만족도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최선이랄 수 없는 결정을 내린다. 그렇다고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다. 어떻게 해야 건강해지는지 안다고 해서 무조건 건강한 음식만 먹고 살 순 없듯이, 만족도를 높여준다는 결과만 믿고 철저하게 데이터에 따라 행동을 계산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이 책은 사람들이 실제로 언제 만족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냉철한 시각을 제공한다. 당신은 아마 매우 놀라운 결과들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기대한 것과 다를 수도, 수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우리가 만족에 대해 옳다고 생각하거나 기대한 것을 재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만족시키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가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외부 영향에 얼마나 간단히 좌우되는지도 말이다. 이제 행복이 아닌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다. 당신은 삶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가.

정현석 한경BP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