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11일 오후 직원들과 만나 경영 쇄신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날 오전에는 7차 비상경영회의를 직접 주재한 데 이어 오후에는 직원 간담회인 ‘브라이언톡’을 진행해 불만이 쌓인 직원들을 만나 대화했다. 김 창업자가 직원들과 직접 대화에 나선 것은 2021년 2월 말 재산 절반을 기부하기로 하고 사회 문제 해결 방안을 임직원들과 논의한 후 2년 10개월이다.
카카오는 현재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시세조종 의혹이 불거지며 배재현 투자총괄대표가 구속됐고 김성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준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 역시 불구속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수수료 체계와 관련된 불신이 퍼져있고 분식회계 논란도 이어졌다. 카카오 계열사의 주가가 폭락하며 자본시장의 신뢰를 잃은 것 또한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투자자와 소비자, 정부의 신뢰를 모두 잃으면서 악재가 겹친 것이다.
김 창업자는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카카오를 설립해 크루들과 함께 카카오톡을 세상에 내놓은 지 14 년이 되어간다”며 “‘무료로 서비스하고 돈은 어떻게 버냐’는 이야기를 들었던 우리가 불과 몇 년 사이에 ‘골목상권까지 탐내며 탐욕스럽게 돈만 벌려한다’는 비난을 받게 된 지금의 상황에 참담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카카오의 성장 방정식이라 믿었던 경영 시스템이 사회의 기대와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김 창업자는 “성장 방정식이라고 생각했던 그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며 “더 이상 카카오와 계열사는 스타트업이 아니라 자산 규모로는 재계 서열 15 위인 대기업이다. 규모가 커지고 위상이 올라가면 기대와 책임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동안 우리는 이해관계자와 사회의 기대와 눈높이를 맞춰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창업자는 카카오 설립 이후 자신이 계열사들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CEO들이 각사를 스타트업처럼 독립적으로 경영하도록 했다. 공격적인 인수합병(M&A)과 상장도 이어졌다. 돈 되는 사업은 빠르게 확장하고 분사해 상장하고 경쟁하듯 M&A로 덩치를 키웠다. 이는 CEO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됐고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카카오는 이 때문에 그룹이나 계열사를 ‘공동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에 걸맞은 ‘책임과 통제’는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초기 사업을 함께한 임원을 중심으로 한 회전문 인사, 잇따른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창업자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이 되고자 했으나 지금은 카카오가 좋은 기업인지조차 의심받고 있다"며 "우리를 향한 기대치와 그 간극에서 발생하는 삐그덕대는 조짐을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까지 이르게 된 데 대해 창업자로서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카카오의 뼈를 깎는 체질개선과 변화를 주문했다. 새로운 배를 건조하는 마음가짐으로 과거 10년의 관성을 버리고 원점부터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카오가 사회적 이해관계자들의 기대와 눈높이를 맞추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카카오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김 창업자는 "경영쇄신위원장으로서 의지를 가지고 새로운 카카오로의 변화를 주도하고자 한다"며 "항해를 계속할 새로운 배의 용골을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재검토하고 새롭게 설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카카오라는 회사 이름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겠다"며 환골탈태를 다짐했다.
카카오는 우선 확장 중심의 경영전략을 리셋하고 기술과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변경한다.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숫자적 확장보다 부족한 내실을 다지고 사회의 신뢰에 부합하는 방향성을 찾는데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그룹 내 거버넌스도 개편한다. 느슨한 자율 경영 기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카카오로 가속도를 낼 수 있도록 구심력을 강화하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다짐이다.
그는 "문화가 일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기에, 현재와 미래에 걸맞은 우리만의 문화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며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영어 이름 사용, 정보 공유와 수평 문화 등까지 원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 지금의 이 힘든 과정은 언젠가 돌아보면 카카오가 한 단계 더 크게 도약하는 계기로 기억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모바일 시대에 사랑받았던 카카오가 AI 시대에도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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