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정신아 카카오 대표 내정자. 사진=카카오 제공
정신아 카카오 대표 내정자. 사진=카카오 제공
“많은 사람이 따르는 자가 리더다.” 기업문화가 좋기로 정평이 나 있는 미국 고어사 사무실에 오랜 기간 붙어 있던 문구다. 직원들의 신망이 없는 사람는 리더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는 얘기였다. 위기 때는 더더욱 신망받는 리더가 필요하다. 위기를 수습하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카카오가 이를 깨달은 것일까. 인적쇄신 카드에 유리절벽 논란도 카카오의 새로운 사령탑에 40대 여성 CEO가 자리했다. 카카오는 12월 13일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를 차기 단독 대표 내정자로 보고했다고 발표했다. 정 내정자는 내년 3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정식 선임될 예정이다.

정 내정자가 취임하면 카카오의 첫 여성 대표가 된다. 카카오 측은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 그에 걸맞은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며 “IT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고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른 갈등과 어려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정신아 내정자가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 내정자는 연세대와 연세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미국 미시간대 로스 경영대학원 MBA(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보스턴컨설팅그룹과 이베이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네이버를 거쳐 2014년 카카오벤처스에 합류했다.

2018년부터 카카오벤처스 대표를 맡아 인공지능(AI)·로봇 등 선행 기술과 게임, 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의 IT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며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힘썼다.

정 내정자는 올해 3월 카카오 상무로 합류해 카카오의 사업·서비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왔다. 지난 9월부터는 역할을 확대해 CA협의체 내 사업 부문 총괄을 맡고 있으며, 현재는 경영쇄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 쇄신 방향성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앞서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은 12월 11일 임직원 대상으로 진행한 행사에서 “카카오는 근본적 변화를 시도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며 “새로운 배, 새로운 카카오를 이끌어갈 리더십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내부 평가는 우선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정 내정자에 대한 내부 구성원의 신망이 두텁다. 카카오 관계자에 따르면 “정 내정자는 어떠한 일에 임할 때도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는 점을 강조한 분”이라며 “소탈하고 격의 없는 소통으로 스타트업계, 그리고 내부 구성원과 신뢰가 두터운 리더”라고 설명했다.

카카오 직원들 사이에서도 “진짜 능력자가 등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카카오 직원 A 씨는 “정 내정자는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좋은 사람”이라며 “그가 카카오의 방만 경영을 해결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날 발표 전부터 정 내정자가 대표에 오를 것이란 예측도 제기됐다.

경쟁사 네이버가 2022년 직장 내 괴롭힘 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수연 대표 체제를 띄우고 젊은 직원들과의 교감을 통해 빠르게 안정을 찾은 만큼 카카오그룹의 대표적인 여성 CEO인 정 대표에게 무게가 실릴 것이란 분석이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여성 CEO라는 상징성에 네이버의 사례까지 더해 정 대표에 대한 직원들의 기대치가 높았다”고 말했다.

정 내정자가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아끼는 카드였단 평가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날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정 내정자가 카카오의 내실을 다지면서도 AI 중심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도 함께해 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CEO 내정자 신분으로 카카오 내 쇄신TF장을 맡아 쇄신을 위한 방향을 설정하고 과제를 챙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위기의 순간 구원투수로 여성 CEO가 등장한 것에 부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이른바 위기 상황에서 여성을 고위직에 파격 발탁한 뒤 일이 실패하면 책임을 물어 해고하는 ‘유리 절벽’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편 카카오의 이번 결정으로 2024년에는 국내 양대 포털 모두 여성 CEO가 수장을 맡게 된다.

경영 리스크에 빠진 카카오가 주춤하는 사이 네이버는 올해 3분기 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격차를 벌리고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