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9회>
‘와인 제대로 마시기’ 제1 원칙은 기다림이다. 시간 간격을 두고 두 번째 잔을 마셔야 변화를 잘 감지할 수 있다. 사진은 호주 국보급 와이너리 펜폴즈 와인메이커 피터 가고가 주관하는 테이스팅 장면.
‘와인 제대로 마시기’ 제1 원칙은 기다림이다. 시간 간격을 두고 두 번째 잔을 마셔야 변화를 잘 감지할 수 있다. 사진은 호주 국보급 와이너리 펜폴즈 와인메이커 피터 가고가 주관하는 테이스팅 장면.
‘안단테, 안단테(andante, andante)’. 스웨덴 혼성그룹 아바의 올드팝송 제목이다. ‘천천히, 천천히’. 기다림의 정서가 잘 표현되었는데, ‘와인 제대로 마시기’ 제1 원칙이기도 하다.

와인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첫잔을 마시고 나서 최소 10분 이상 지난 다음에 두 번째 잔을 들라”고 강조한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십 년 세월 잠들었던 와인의 맛과 향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라는 의미다.

와인을 제대로 마시기 위해서는 지루한 기다림 외에도 컬러 감상과 향기 찾기, 맛보기 등 몇 가지 요령이 더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눈과 코, 혀 등 인간의 감각기관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이번 호에서는 기다림과 컬러 감상에 대해 먼저 살펴본다.

양조 과정을 거친 후 숙성, 병입된 와인은 공기와 접촉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떫은맛, 신맛 등이 줄어드는 특성이 있다. 즉 점차 부드러워지고, 향기도 풍부해진다.

이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긴 하지만, 시간을 두고 첫 모금과 둘째 모금을 직접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아무리 감각이 무딘 초보자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우리나라 술 문화가 너무 빠르고, 원샷해 버린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빨리 빨리’라는 우리 단어가 전 세계에 알려졌을까. 실제 한 와인 전문가는 “와인모임을 주관하면서 회원들의 원샷 습관 고치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50대 소주파로 구성된 그 모임 이름은 ‘전향파’. 우여곡절 끝에 주종을 와인으로 변경했고, 현재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고.

와인 한 병을 따르면 보통 일곱 잔이 나온다. 대화하고 기다리면서 천천히 나눠 마시다 보면 각 잔에서 각기 다른 느낌을 맛볼 수 있다. ‘맛의 변화’는 와인만이 가지고 있는 최고 경쟁력이다. 소주나 맥주와 극명하게 다른 점이다.

한편 와인 컬러 속에는 다양한 정보가 들어 있다. 포도 품종과 숙성 기간은 물론, 품질 확인도 가능하다. 레드와인의 경우 와인 껍질 속 안토시안이란 색소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감각이나 느낌 관련 민감도는 각기 다르다. 그러나 와인 컬러에 담긴 정보는 얼마든지 객관적, 계량적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 다수 의견이다.

다만 와인 컬러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신경을 좀 써야 한다. 볼 넓은 투명 유리잔 사용도 필수 조건이다. 먼저 와인잔을 45도 각도로 기울이고, 하얀 배경에서 살피는 것이 좋다.

이때 화이트 와인은 유리잔 중앙을, 레드 와인은 유리잔 가장자리를 보면 각종 정보를 좀 더 정확하고 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레드 와인 포도 품종 중 피노 누아나 가메이, 네비올로는 와인잔 가장자리가 연한 주홍빛 또는 석류석(가넷) 컬러를 띤다. 이에 반해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 쉬라는 병입 초기 짙은 루비 컬러가 특징. 시간이 지나면서 붉은 벽돌, 오렌지색으로 변한다.

반면 화이트 와인의 컬러는 포도 품종보다 양조방식과 페놀릭 성분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페놀릭 함량이 높으면 좀 더 깊은 컬러로 나타난다. 화이트 와인 역시 초반에는 연하고 맑은 색상을 띠다가 점차 레몬, 황금빛으로 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와인 마시기는 아주 쉽다. 잔을 기울이고, 입안에 부어 넣으면 끝. 그러나 와인이 주는 즐거움과 또 다른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소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다.

* ‘와인 제대로 즐기기 요령’ 중 향기 찾기와 맛보기는 10회에서 계속됩니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국제와인전문가(WSET Level 3)
juju433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