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이 오랜 기간 보험업계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삼성생명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상위 4개사의 CSM은 삼성생명 11조9130억원, 한화생명 10조1230억원, 신한라이프 7조2030억원, 교보생명 6조4000억원 순이다. 한화생명이 삼성생명을 턱끝까지 추격하고, 교보생명이 신한라이프에 추격당하면서 생명보험업계의 판도가 삼성과 한화, 교보의 ‘3강 구도’에서 ‘양강 체제’로 바뀐 것이다.
CSM은 보험계약으로 얻게 될 이익을 현재가치로 나타낸 값으로 IFRS17에서 핵심 수익성 지표로 여겨진다.
한화생명의 변화를 이끄는 주축에는 2019년부터 회사를 이끄는 여승주 대표이사 부회장이 있다. 올해 부회장으로 승진한 여승주 대표는 새로운 회계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올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 내실화와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강화했다.
수익성 높은 보장성보험 판매를 확대하고 자산, 부채 듀레이션 관리 등을 통한 자본 변동성 축소 등을 통해 신상품 CSM 확보와 재무건전성 관리를 지속한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 됐다.
올해 초 한화생명의 판매 자회사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국내 GA 6위권인 대형 GA ‘피플라이프’의 인수 절차를 완료했다. 이로써 한화생명은 한화생명금융서비스, 한화라이프랩, 피플라이프 등 GA 3개사를 보유하게 됐다. 보험업의 근간인 설계사 조직 규모에 있어 2만5000여 명의 강력한 판매 채널을 구축하게 된 셈이다.
또한 한화생명은 청약업무 과정을 90% 이상 간소화할 수 있는 기술 특허 ‘청약 자동화 솔루션’ 등 GA 시장에 최적화된 디지털 혁신을 통해 GA 시장 재편의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한화생명 인도네시아 법인이 한화손해보험과 함께 인도네시아 재계 순위 6위인 리포(Lippo)그룹의 금융 자회사 ‘Lippo General Insurance’의 지분 62.6% 인수를 완료했다. 한화생명 인도네시아 법인이 47.7%, 한화손해보험이 14.9%를 인수하는 조건이다.
이번 인수를 통해 한화생명 인도네시아 법인은 기존 생명보험 사업의 성장세를 견지하며, 인도네시아 현지 내 보험사의 수평적 통합을 기반으로 생·손보를 아우르는 상품 포트폴리오 구축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한화생명의 변화에 여 부회장이 지난 2019년부터 주도한 ‘노마드 회의’를 주목하고 있다. 노마드 회의란 여 부회장이 회사의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끝장토론의 장’이다. 그는 2019년 3월 25일 한화생명 대표이사로 선임된 날 본사 영업·상품개발·리스크·보험심사 등 주요 팀장 6명을 대표이사실로 불러 이 회의를 시작했다. 이후 4년 8개월간 격주로 회의를 개최하며 올해로 100회를 넘겼다.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되던 시기에도 화상회의로 토론은 계속됐고, 100회까지 총 340여 개 의제를 다뤘다.
유관 부서 팀장이 모인 협의체다 보니 초기에는 이해 상충으로 이견과 대립이 있었다. 그러나 치열한 논의 끝에 ‘끝장’을 거듭하다 보니 노마드 회의를 통한 현안 해결 방식은 한화생명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대형 GA ‘피플라이프 인수’, 한국투자PE로부터 1000억원 투자 유치 등 대외에서 시장지배력과 미래 성장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된 건들도 이 노마드 회의에서 탄생했다.
상품 경쟁력도 한몫했다. 여 부회장의 ‘상품 하나만은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취지는 노마드 회의 가장 큰 중심이었다. 이를 통해 치매보험, 간편건강보험, 수술비보험, 암보험 등 누적 초회보험료 100억원 이상의 히트 상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며 시장을 선도해 왔다.
특히 한화생명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한화생명 시그니처 암보험’은 2022년 4월 출시 후 누적 판매 건수만 약 26만 건에 이를 만큼 히트상품이다. 생명보험협회 공시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2022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최근 1년간 생명보험사에서 암보험을 가장 많이 판매한 회사다. 암보험 가입자 5명 중 1명 이상이 한화생명 고객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