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 부문 올해의 CEO
[2023 올해의 CEO] SK그룹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전환해온 거대한 성장 역사’라 할 수 있다. SK는 IMF 외환위기, 글로벌 경제 붕괴, 유럽 디폴트 우려, 코로나19 등 숱한 위기 때마다 그룹 핵심 사업을 탈바꿈하며 성장을 가속화했다.최태원 회장은 이 같은 성장 과정마다 ‘서든데스’할 수 있다며 내부 구성원에게 긴장감을 강조하지만, 위기에는 단기실적에 얽매이기보다 과감한 도전을 장려하며 그룹 전체가 역동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문해왔다.
이에 발맞춰 변화를 준비한 SK그룹은 기존 정보통신, 에너지·화학 중심에서 반도체·소재, 바이오, 그린에너지, 디지털 등으로 사업구조 대전환에 성공하며 ‘최태원 시프트’를 완성해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탄소’ 중심에서 ‘그린’ 중심으로 사업 전환을 담은 ‘Carbon to Green’ 전략을 발표하고 석유에서 전기차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친환경 소재 등으로 전폭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영역도 D램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비욘드 메모리(Beyond Memory)’를 위한 새로운 기획을 설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낸드 사업에 이어 인텔 낸드 사업(현 솔리다임)을 인수하고, 미국 R&D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등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있다.
최근 불어닥친 반도체 업황 악화로 인해 지난 1년간 하락했던 실적도 이제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내년 1분기부터 흑자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대감은 주가에 반영돼 SK하이닉스 주가는 12월 20일 14만1000원에 마감하며 시가총액 2위(102조2843억원)를 기록했다.
건설회사였던 SK에코플랜트는 3년 전부터 아파트, 플랜트 사업 대신 자원 재활용, 폐기물 사업에 집중적으로 뛰어들며, 그린 사업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 밖에 SK실트론과 SK머티리얼즈 등은 반도체 첨단소재 기업으로, SKC는 2차전지 소재를 주력으로 하는 글로벌 유수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이 같은 변신을 통해 2022년 SK는 12년 만에 재계 3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 올해 5월 기준 자산은 327조3000억원, 매출은 224조 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2%, 32% 수직 상승했다. 특히 SK그룹 사업은 내수시장에만 머문다는 인식을 깨기 위해 최태원 회장은 취임 초부터 임직원에게 글로벌 진출, 해외 거점 확대 등을 강도 높게 주문했다. 그 결과 2022년 기준 SK그룹 수출액은 83조4000억원으로 최 회장 취임 전 대비 10배 증가했다. 국가 총 수출액 863조7700억원(6839억 달러) 중 약 10%를 SK가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반도체 업황에 따라 한국 경제가 어려운 국면에 처했다는 분석이 많다.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SK도 당분간 위기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업계 시각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SK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DNA’를 바탕으로 더 과감한 투자에 나서며, 다운사이클의 최저점을 지나 퀀텀점프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투자했던 배터리 사업은 내년 흑자전환이 예상된다. 글로벌 반도체 업황도 AI의 급성장과 함께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늘며, 예년보다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 SK는 미래 핵심 사업으로 ‘그린 사업’ 또한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소에너지 및 소형원자로와 같은 친환경 에너지는 물론 탄소포집, 자원 재활용 등에 관련된 다양한 그린 기업들을 인수하거나 기술을 확보하는 중이다.
SK는 발효단백질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나 고기 등을 만드는 대체식품 기업에 투자하고, 국내에 제품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대체 단백질은 혁신 기술로 단백질을 구현해 대규모 동물 사육 없이 농축산업 탄소배출 감축, 식품 안전성 등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ESG 투자로도 주목받고 있다.
아울러 최 회장은 그동안 강조해온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철학을 실천으로 옮기며 미래 대기업의 모습을 선도하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이사회 경영을 강화하자는 거버넌스 스토리(Governance Story)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 회장은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수준을 넘어 독립적인 최고 의결기구로 권한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 재편을 독려했다. SK 이사회는 최고경영진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것도 최 회장이 수년간 이사회 독립성을 강조한 결과다. 최근에는 SK 12개 주요 상장사 이사회의 여성 비율을 7%에서 21%로 높여 다양성을 높였다. 전문경영인 출신 사외이사 비율도 대폭 확대했다.
한편 최 회장은 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넷제로(Net-zero, 탄소 배출량만큼 다시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 실천을 주문하고 있다. 2030년 전 세계 탄소배출량 200억 톤의 1%인 2억 톤을 SK가 줄이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SK는 이에 맞춰 친환경 사업과 기술 투자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0월 18일 SK그룹 주요 경영진이 모인 ‘2023 CEO 세미나’ 폐막 연설을 통해 “급격한 대내외 환경변화로 빠르게, 확실히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며 다시 한번 ‘서든데스’의 위험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최 회장은 ▲미국·중국 간 주도권 경쟁 심화 등 지정학적 이슈 ▲AI 등 신기술 생성 가속화 ▲양적완화 기조 변화에 따른 경기 불확실성 증대 ▲개인의 경력관리를 중시하는 문화 확산 등을 한국 경제와 기업이 직면한 주요 환경변화로 꼽았다.
각종 위험 변수들이 있더라도 이를 극복하자는 최태원 회장의 말처럼 SK가 내년에 또다시 위기를 딛고 국가전략산업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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