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가 꼽은 '올해의 책' 3가지 키워드

18세기 어른까지 소환했다…도파민 홍수 시대의 '베스트 셀러'[올해의 책]
‘베스트셀러’는 시대의 공감이다.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읽힌 책을 살펴보면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고민과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알 수 있다. 한경비즈니스는 교보문고, 예스24, 밀리의서재 등 독서 플랫폼에서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올해의 책’을 정리했다.

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 첫 번째 키워드는 ‘어른이 필요한 사회’다. 모두가 꼰대가 되기 싫어 잔소리를 기피하는 시대지만 사회는 어른의 쓴소리가 필요했던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키워드는 ‘도파민 홍수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구글에 따르면 ‘도파민’ 관련 키워드 검색은 최근 5년간 3배 이상 늘었다. 올해는 사람들이 도파민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침서를 읽으며 집 나간 집중력을 찾아 나섰다.

세 번째 키워드는 ‘역주행’이다. 25년 전, 8년 전에 나온 소설이 2023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사랑과 상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공감은 시대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꼰대라고 안 할게요”
어른이 필요한 사회
◆세이노의 가르침(세이노 | 데이원)
남녀노소가 ‘꼰대의 조언’을 찾아 읽었다. 조언 방식은 직설적이고 투박하다. 몇몇 문장은 회사 부장님의 잔소리를 닮았다.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헛된 환상을 버려라’, ‘하기 싫은 일을 해야 몸값이 오른다’ 등 젊은 세대가 듣기 싫어하는 쓴소리를 잔뜩 늘어놨다.

독자들은 이를 스스로 찾아 읽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올해 교보문고와 예스24, 밀리의서재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재야의 작가’로 불려왔던 저자 세이노(Say No)는 1955년생 흙수저 출신의 자수성가한 남성이다. 자산 규모는 1000억원대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테크 방법을 논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말하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에 대해 얘기한다.
18세기 어른까지 소환했다…도파민 홍수 시대의 '베스트 셀러'[올해의 책]
◆김미경의 마흔 수업(김미경 | 어웨이크북스)
어른도 어른이 필요했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것처럼. ‘김미경의 마흔 수업’은 40대를 재정의한다. 지금까지 마흔은 ‘완성’ 혹은 ‘안정’과 동의어였다. 동시에 ‘인생의 정점’이며 ‘은퇴, 노후로 가는 내리막길의 시작’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지금의 마흔은 여전히 불안하고 막막하다. 저자는 ‘내가 알던 마흔’과 ‘현실의 마흔’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자책 대신 해결책을 제시한다. 길을 헤매던 마흔에게 위로와 함께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18세기 어른까지 소환했다…도파민 홍수 시대의 '베스트 셀러'[올해의 책]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강용수 | 유노북스)
18세기를 살았던 어른도 소환됐다. 올해 서점가에는 까칠한 철학자인 쇼펜하우어 열풍이 불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쇼펜하우어의 명료하고 간결한 문장을 정리해 삶을 고민하는 40대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쇼펜하우어의 문장은 냉철하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준다. 쇼펜하우어는 인간 본성의 욕망이 영원히 충족될 수 없기 때문에 인생사가 고통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욕망에서 잘 살고자 하는 힘이 생긴다고 봤다. 그리고 욕망을 잘 다스릴 때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와 방법을 남겼다. ‘왜 태어나서 괴로움을 겪느냐’는 탄식을 넘어서 그렇다면 ‘자신만의 행복을 위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성장 지향적인 통찰력이다.
18세기 어른까지 소환했다…도파민 홍수 시대의 '베스트 셀러'[올해의 책]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유시민 | 돌베개)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는 제목이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어려운 과학을 문과 남자의 시선으로 설명한다. 문과 남자답게 과학의 원리만 설명하지 않는다. 뇌과학과 생물학은 곧 ‘나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생명이 다양한 물질의 구성이자 작용임을 알게 되면, 물질의 최소단위를 다루는 화학으로 넘어간다. 이후에는 물질의 운동을 설명하는 물리학으로 나아간다. 양자역학을 공부한 뒤에는 우주론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우주의 언어’이자 ‘천재들의 놀이’인 수학이 대미를 장식한다. ‘나’와 ‘나를 이루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인문학의 존재 이유다. 저자는 인문학은 과학으로 정확해지고, 과학은 인문학으로 깊어진다고 얘기한다. 도파민 따라 집 나간 집중력을 찾습니다
18세기 어른까지 소환했다…도파민 홍수 시대의 '베스트 셀러'[올해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 | 어크로스)
인간의 뇌는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 된다고 착각할 뿐이다. 집중을 한 번 빼앗기면 다시 돌아오는 데 23분이 걸린다. 업무를 하던 중 잠시 메시지를 보내거나 소셜미디어를 켜면 지능지수(IQ)가 떨어진다. 이때 IQ가 떨어지는 정도는 대마초를 피우며 쟀을 때보다 2배 이상 크다고 한다. 우리는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나에게서 찾는다.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고, 소셜미디어를 켜 스크롤을 내리는 일을 자제하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저자는 집중력에 대한 관점을 재설정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유행병’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집중력 문제가 현대 사회의 비만율의 증가와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정크푸드를 중심으로 한 식품 공급 체계와 생활 방식의 변화가 비만율 증가를 만든 것처럼 집중력 위기 역시 현대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냈다는 설명이다.
18세기 어른까지 소환했다…도파민 홍수 시대의 '베스트 셀러'[올해의 책]
◆원씽(게리 켈러·제이 파파산 | 비지니스북스)
“멀티 태스킹은 거짓 신화다.”
투자개발 회사 대표인 저자는 부동산 투자법 대신 ‘집중하는 법’에 대해 썼다. 저자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원씽’을 찾아 집중하고 파고들라고 제안한다. ‘원씽’을 찾기 위해 스스로 어떤 질문을 해야 하며, 이를 어떻게 습관화하고 삶의 부분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 같은 습관이 곧 더 적게 일하면서 더 깊게 집중하고 더 큰 성공을 이루게 해준다고 말한다.
18세기 어른까지 소환했다…도파민 홍수 시대의 '베스트 셀러'[올해의 책]
◆서사의 위기(한병철 | 다산초당)
‘서사의 위기’는 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이다. 이 책은 이슈만 좇느라 자기 생각은 잃어버린 시대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 이후 10여 년 만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서사’와 ‘스토리’다. 나만의 생각과 맥락이 서사라면, 반짝하고 사라져 버리는 뉴스와 정보들은 스토리다. 저자는 우리가 억압도, 저항도 없는 스마트한 지배체계에서 자기 삶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하며 정보화하도록 조종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름다운 꽃을 봐도 감동을 온전히 느끼며 내면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재빨리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는 데 그치며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유한 이야기 대신 앵무새처럼 같은 문장만 내뱉는 ‘텅 빈 삶’을 지적한다. ‘문장의 힘’ 역주행한 소설들
18세기 어른까지 소환했다…도파민 홍수 시대의 '베스트 셀러'[올해의 책]
◆모순(양귀자 | 쓰다)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양귀자의 ‘모순’은 유독 필사했다는 사람이 많다. 이 책이 ‘북튜버’의 추천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분석도 있지만, 모순의 진짜 힘은 삶을 관통하는 문장에서 나온다. 이 책은 1998년 출간 이후 132쇄를 찍으며 2023년에도 여전히 사랑받았다. 사랑과 불행, 열정과 상실, 권태와 불안 등 누구나 겪는 삶의 모순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18세기 어른까지 소환했다…도파민 홍수 시대의 '베스트 셀러'[올해의 책]
◆구의 증명(최진영 | 은행나무)
“구 대신 들어온 다른 것들은 터무니없이 옅고 가벼워서 구의 밀도를 대신하지 못했다.”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은 8년 만에 역주행했다. 작가도 한 인터뷰에서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 모든 문장에서 이유를 알 수 있다. 연인의 죽음을 겪지 않았더라도 죽을 것 같이 괴로운 이별을 한 사람이거나 절절한 사랑 한 번쯤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쉬지 않고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잘 쓰는 작가는 본문을 지나 읽는 ‘작가의 말’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책은 ‘작가의 말’에서도 놓치고 싶은 문장이 없다. 최진영 작가는 “나는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분명 살고 있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진다”고 썼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