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10회>
와인 향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첫 잔은 흔들지 말고 천천히 마셔야 한다. 이어 두 번째 잔부터 공기와 접촉 시간을 늘려 숨어있는 향을 깨워야 2차, 3차 향을 잡을 수 있다. / 사진=필자 제공
와인 향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첫 잔은 흔들지 말고 천천히 마셔야 한다. 이어 두 번째 잔부터 공기와 접촉 시간을 늘려 숨어있는 향을 깨워야 2차, 3차 향을 잡을 수 있다. / 사진=필자 제공
“우연히 마신 와인 향이 자꾸 생각납니다. 상큼한 삼나무 느낌이 너무 좋았거든요. 어떻게 하면 그 와인을 구할 수 있을까요?”

와인 향에 빠진 지인의 간절한 요청이다. 확인해보니 한 병에 50만원이 넘는 최고급 나파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이었다. 단 한 번의 경험을 잊을 수 없었던 그는 결국 거금을 지불했다.

와인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기다림과 컬러 감상(지난 호에서 소개) 외에도, 향과 맛에 대한 시음 요령을 알아야 한다. 배우기 어렵지 않고, 당장 실전에도 활용할 수 있으니 과감하게 도전해보시길.

인간의 뇌 속에 각인된 와인 향은 ‘행복한 감성’을 자극한다. 그와 함께 품질은 물론 가격과 재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도 작용한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인터뷰 중 “와인 시음은 코가 95%를 차지한다”고 했을 정도다. 와인의 가치 대부분이 향에서 나온다는 의미다.

그러나 맛을 중심으로 품질을 평가하는 우리 술 문화 속에서 향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기껏해야 누룩 정도로, 향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어 와인을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더구나 와인 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향이 섞여 있어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블랙 커런트, 트러플 등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명칭도 이질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막연히 ‘와인은 어렵고 복잡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와인 향 잘 찾는 방법을 알아본다.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먼저 첫잔은 흔들지 말고, 천천히 들어 향을 맡는다. 이를 통해 휘발성이 강한 아로마(1차 향)를 잡을 수 있다. 종류에 따라 은은하고 연한 꽃이나 열대과일, 미네랄 등 포도 자체에서 나오는 자연 그대로 향이다.

그다음에는 잔을 가볍게 흔들어(스웰링) 공기와 접촉시킨 후 맡아보면 와인잔 깊숙이 숨어 있는 신비로운 향들을 만날 수 있다. 양조와 숙성 과정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부케(2, 3차 향)다.

예를 들어보면, 레드 와인의 가장 대표적인 향은 크게 두 가지다. 아무리 초보자라도 오크 향은 단박에 찾아낸다. 화이트 와인 중에서도 샤르도네(포도 품종 중 하나)는 오크통 숙성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그와 함께 다크 초콜릿 향은 와인을 다 마시고 난 후 빈 잔에서 쉽게 잡을 수 있다. 후각 피로를 느낄 새도 없다. 유리잔 안쪽에 묻어 있는 향이 끝없이 올라온다. 기억 속에 오래 남고, 상상만 해도 행복한 순간이다.

그렇다면 맛을 분석하는 일은 어떨까. 조금 더 신경을 써야 가능하다. 먼저 와인을 한 모금 머금은 채 음미하고, 공기를 가볍게 들이마셨을 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어 천천히 삼키면서 미뢰(혀, 입천장의 맛세포)를 통해 달콤하고 시고, 떫은맛 등의 균형감을 파악해 보자.

이때 와인이 목으로 넘어가면서 올라오는 향이 바로 그 유명한 ‘잔향’이다. 코로 맡은 1~2차 향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다. 좀 더 집중하면 일정 시간 입안에 남아 기쁨을 주고, 수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그 순간이 바로, 와인 즐기기 최고 절정의 순간이다. ‘와인은 아는 만큼 즐긴다’는 세간의 말이 새삼스럽다.

사실 향과 맛을 분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잔향의 길이가 길면 와인 한 병 가격이 수천만원을 넘기도 한다. ‘잔향이 한 달간 유지된다’는 전설의 명품 와인도 꽤 많다. ‘감동의 반복’은 경제적 고통으로 이어진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국제와인전문가(WSET Level 3)
juju433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