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급공사 집중하다 오피스·개발사업에 눈독…부채 눈덩이
워크아웃 타이밍 늦어져, 자구책 마련에 관심↑

태영건설 여의도 사옥. 사진=태영건설
태영건설 여의도 사옥. 사진=태영건설
2023년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16위. 지상파 3사 중 한 곳인 SBS를 보유한 태영그룹의 모태인 종합건설사. 이 같은 간판을 갖고 있는 태영건설은 지난해 유동성 위기설에 휩쌓였다.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태영건설은 건설업계에서도 우량회사로 통했고 많은 건설사들을 부도위기로 몰아넣었던 금융위기도 비교적 무사히 견뎌냈기 때문이다.

잠잠해지는가 싶던 위기설은 12월 28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돌아왔다. 전날까지 태영건설은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며 부인했지만 우발채무 규모와 부채비율, 실적 등 각종 수치는 시장에 떠도는 위기설을 한층 뒷받침했다. 각종 차입금의 만기도래가 닥친 상황에서 소문은 결국 현실화했다.

때마침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국회를 통과했고 금융당국에선 “시장원리에 따라 처리하겠다”면서 태영을 시작으로 연초부터 본격적인 건설업 구조조정에 나설 전망이다.
높은 부채비율, 부동산 PF 3조
2023년 3분기 기준 태영건설 부채비율은 478.7%로 다른 대형·중견건설사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현재 알려진 전체 PF 보증 규모는 4조4100억원가량으로 이 중 안정성이 높은 민자 SOC를 제외한 부동산 개발 PF 잔액은 3조2000억원에 달한다.

한국신용평가 등에 따르면 이 중 착공조차 하지 못한 현장이 47%에 달한다. 통상 착공과 더불어 공정률에 따라 공사비가 수익에 반영되고, 준공 및 입주와 함께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차입금 역시 상환되며 부채규모가 감소한다. 하지만 분양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이처럼 착공조차 하기 힘든 현장이 늘고 있는 것이다. 착공이 미뤄지면 이자비용이 불어나 이후에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수익성이 대폭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문제들로 현재 태영건설 우발채무는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문도 서울디지털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개발사업 수익률을 20%로 잡았는데 PF 대출 연이율이 10%라고 치면 사업이 2년 연기될 경우 나중에 잘 진행되더라도 결국 수익이 없는 셈”이라며 “이 때문에 2023년 조달 자금의 만기를 연장한 개발사업 대부분이 채권단의 자금 회수 시도로 인해 곧 위기에 빠지기 쉽다”고 설명했다. 非주택·지방 위주 포트폴리오가 발목 잡아
‘알짜’였던 태영건설, 왜 위기의 주인공 됐나[비즈니스 포커스]
이처럼 우발채무가 커진 배경으로 오피스텔 등 비(非)주택과 지방 아파트 개발에 쏠린 사업구조가 지목되고 있다. 모두 지금 같은 고금리 시대에 부동산 수요가 급감하면 시장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분야다. 수도권 주택만큼 고정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태영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한 대표적인 미착공 사업 역시 서울 성동구 성수동 오피스2 개발사업이다. 아직 부지매입도 완료되지 않은 이 사업 시행자는 ‘성수티에스2차프로젝트금융회사(PFV)’이며 토지 계약금 및 명도비용 명목으로 480억원을 빌렸다. 이 중 400억원의 대출 만기가 한 차례 연장돼 지난 12월 28일로 다가오면서 시공사로서 자금보충약정을 했던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에 한몫했다.

자체 개발사업도 부담을 안기고 있다. 태영건설은 오랫동안 ‘수처리 특화 기업’으로서 위험이 적은 일명 ‘관급공사’를 주로 하던 업체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공공사업 수익률이 감소하고 금융위기 이후 침체했던 부동산 시장이 지방부터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개발사업을 확대했다. 자체 개발사업은 건설사가 사업수익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 지난 부동산 활황기에 ‘디벨로퍼(developer)’ 열풍을 낳으며 건설·부동산 업계에 대거 확산됐다.

문제는 부지매입부터 분양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사업 위험도 또한 높다는 점이다. 지난 12월 22일 대출 만기였던 전북 전주 에코시티 사업과 2024년 1분기 만기가 다가오는 경기도 광명 역세권 개발사업, 경남 김해 삼계지구 도시개발사업 등도 자체 개발사업이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태영건설은 매년 부동산 개발 자회사를 통해 자체 사업 의존도를 높여 놨지만 시장이 빠르게 망가지면서 핵심 부문 수익성(자체 사업 마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며 “대형 건설사들이 한 해 분양물량의 10~20% 정도만 자체 사업으로 가져가는 이유는 수익성이 좋은 만큼 위험도가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SBS는 어떻게? 소문 ‘무성’
태영건설의 2023년 3분기 영업이익은 977억원으로 이자비용(1271억원)을 갚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주사인 TY홀딩스를 중심으로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인 지원에 나선 바 있다. 90세인 윤세영 창업회장까지 그룹에 복귀했다. 윤 회장은 지금의 태영을 있게 한 건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태영이 건설을 살리기 위한 자구책으로 SBS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SBS 최대주주는 TY홀딩스(지분율 약 37%)이며 윤세영 창업회장 2세인 윤석민 회장(약 25%)을 비롯한 특수관계자 지분은 33.7%에 달한다.

이미 태영그룹은 알짜 자회사인 태영인더스트리를 매각한 데 이어 여의도 사옥과 SBS미디어넷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차입한 바 있다. 태영건설은 화력발전소 포천파워 지분과 경기도 부천 군부대 이전부지 개발사업 지분 및 시공권을 전량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건설업계에선 이 같은 노력만으로 태영건설 채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2023년 10월 일몰됐던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국회와 국무회의를 거쳐 다시 시행되면서 워크아웃 신청이 가능해졌지만, 기촉법상 워크아웃은 채권단이 75% 이상 동의해야 개시된다. 이후 대출 만기조정과 신규자금 지원을 통해 기업의 경영정상화를 유도하게 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기촉법 일몰로 인해 워크아웃 신청이 미뤄지면서 타이밍이 너무 늦어졌다는 말이 돌았다”며 “그룹 내 최고 우량회사인 SBS 지분 매각 없이 채권단이 태영건설을 지원하는 워크아웃에 동의를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워크아웃이 개시되더라도 자구책의 일환으로 TY홀딩스는 물론 오너가가 보유한 SBS 지분 매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