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전략 통해 희토류 벨류체인 장악한 중국, 미중 패권전쟁 무기 삼아
중국 희토류 의존도 높은 한국, 자원부국과 협력 통해 수입경로 넓혀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가운데)이 20일 장시성 간저우시를 방문, 희토류 산업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제공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가운데)이 20일 장시성 간저우시를 방문, 희토류 산업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제공
중국이 작년 말 희토류 가공 기술을 수출금지 목록에 포함시켰다. 글로벌 희토류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중국이 미국의 대중 첨단기술 수출통제 조치에 맞서 자원 무기화 카드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물론 희토류 수출을 직접 통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이 언제든지 희토류 수출도 금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과시한 것이란 평가가 뒤따랐다. 희토류 수입을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첨단산업의 필수재 ‘희토류’
희토류는 스마트폰, 전기차, 풍력터빈, 첨단무기 등 최첨단 제품을 만드는 데 필수로 쓰이는 17개 희소금속을 의미한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제련 규모까지 포함할 경우 전 세계 희토류 시장점유율이 90%에 달한다. 사실상 독점 체제다.

희토류라는 이름 때문에 매우 드문 금속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희토류는 대체로 지표에 풍부하게 분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표적 희토류인 세륨의 경우 납보다 6배 더 흔하고, 이트륨도 리튬만큼 풍부하다. 네오디뮴과 란탄도 구리만큼 풍부하다. 희토류 전체 매장량은 현재 글로벌 연간 생산량의 798배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장량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다른 금속들의 경우 같은 성분끼리 뭉쳐 있는 것과 달리 마치 흙을 흩뿌려 놓은 듯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희토류를 채취, 정제하는 과정이 어려운 이유다.

희토류가 21세기 들어서 더 각광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첨단산업의 필수 소재기 때문이다. 이미 희토류는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만드는 데는 희토류 17종 중에 8종이 쓰일 정도다. 이 때문에 첨단산업이 발전하면 할수록 희토류에 대한 의존은 점점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어떤 기기가 소형화, 경량화, 고기능화, 친환경화됐다면 모두 희토류와 관련돼 있다. 특히 희토류 응용산업의 핵심인 영구자석은 전기차와 풍력터빈의 핵심 부품으로 쓰인다. 또 희토류는 전략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등 주요 첨단무기의 핵심 소재이기도 하다. 중국은 어떻게 희토류 시장을 장악했나
중국의 희토류 독점은 수십 년에 걸친 국가 전략의 결과물이다. 1950년대부터 중국은 희토류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글로벌 희토류 공급망 지배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중국은 현재까지 드러난 글로벌 희토류 매장량의 약 34%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을 포함해 베트남, 브라질, 러시아 등 4개국이 전체 매장량의 83%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은 풍부한 희토류 매장을 발판으로 1950년대부터 희토류 원재료 채굴과 수출을 시작했다. 희토류 가공기술은 주요 선진국이 보유하고 있었는데, 점차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국에 기회가 찾아온다. 1980년대 이후 국제사회 차원에서 원자력 물질과 방사능 규제가 강화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희토류 광산 들은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시민단체의 반대가 심해지면서 광산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희토류는 채굴 후 추출 및 분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화학 약품이 쓰여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1톤의 희토류를 추출하려면 황산이 포함된 6300만 리터의 독성가스, 20만 리터의 산성 폐수, 1.4톤의 방사성 폐수가 발생한다. 이 탓에 네이멍구에 위치한 중국 최대의 희토류 광산인 바이원 어보 주변 토양, 지하수, 식물은 방사성 오염이 심각한 수준이다. 광산 주변의 가축이 폐사하거나 농작물이 자라지 않는 현상이 관찰되고, 이 지역 주민들이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비율도 높다. 중국은 이 같은 환경오염을 감수하면서 주요 선진국이 머뭇거릴 때 희토류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나간 셈이다.

특히 1990년대 중국은 미국의 주요 영구자석 생산회사를 닥치는 대로 인수했다. 미국 마그네퀘엔치를 필두로 주요 영구자석 회사를 인수해 덩치를 키운 뒤 희토류 가공기술을 중국으로 빼냈다. 이를 통해 1990년대 미국과 유럽이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던 영국자석 시장은 2009년께 중국의 점유율이 90%에 달하게 된다. 그사이 미국과 유럽의 영구자석 생산기업은 중국의 저가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 도산했다. 중국 정부는 이 과정에서 자국 기업들을 물밑 지원하면서 희토류 시장 장악의 야심을 현실화했다. 자원 무기화, 어디까지 갈까
중국은 희토류 시장을 장악하자 서서히 본색을 드러냈다. 서서히 수출제한 조치를 실시하면서다. 2009년 9월 중국은 희토류 수출 관세를 10%에서 15%로 인상했고, 2011년에는 25%로 다시 관세를 올렸다. 2010년에는 일본이 센가쿠 열도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충돌한 중국 어선의 선장을 구속하자, 중국은 그해 9월21일부터 일주일간 희토류 수출통관을 중단했다. 금수 조치는 일본이 구속된 선장을 석방한 후인 9월 28일 해제됐다. 희토류 무기화가 현실화하는 것을 본 국제사회는 그제야 중국의 희토류 시장 독점이 안보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희토류 가격이 치솟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런데 현재 글로벌 희토류 밸류체인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으로부터 벗어나 별도의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특히 한국은 희토류 중국 수입의존도가 98%에 달한다. 네오디뮴 영구자석의 경우엔 중국 수입 비중이 88%다. 더 큰 문제는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되면서 미국이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 수출통제를 강화하면 중국은 곧바로 자원무기화 카드로 맞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작년 8월 갈륨과 마그네슘에 대한 수출통제 카드를 빼든 것을 시작으로, 흑연과 요소수에 대한 수출제한 조치를 실시했다. 급기야 희토류 가공기술까지 금지하고 나선 상태다.

만약 중국이 희토류에 직접 수출통제를 실시한다면, 이는 한국에 재앙이다. 당장 대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어서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 교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디스프로슘을 비롯한 특정 중희토류는 중국 남방지역에서만 대규모로 생산돼 중국 의존을 줄이는 것이 매우 어렵다.

물론 중국의 희토류 수출금지는 미국과 중국의 사실상 전면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국도 신중한 접근을 취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더욱이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전면적인 경제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중국에 부담이다. 하지만 미·중 대립이 격화될 경우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를 실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원빈국 한국은 장기적으로 해외자원개발에 적극나서면서 자원 부국들과 경제협력체계를 공고히 구축해야 한다. 기술투자를 통해서 희토류 대체재를 개발하고, 자원 재활용 시스템도 국가 차원에서 구축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북한의 희토류 매장량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북한과의 교류 협력을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한 전문가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가능성을 ‘말대포’로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며 “희토류 공급 차단은 한국의 심각한 경제안보 위기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이지훈 한국경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