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약 6000여 종의 포도 품종이 재배된다. 그중 양조용은 대부분 유럽종(Vitis vinifera). 종류에 따라 와인 맛과 향, 풍미도 제각각 다르다. 레드 와인의 대명사 격인 카베르네 소비뇽부터 살펴본다.
프랑스 남서부가 고향인 이 품종 별명은 ‘와인의 왕’. ‘카베르네 프랑과 소비뇽 블랑의 자연교배로 탄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와인 품종 중 가장 많이 재배된다. 전문매장은 물론 마트나 편의점 진열대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최근 ‘한국인이 만든 명품 와인’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이 돋보인다. 그 주인공은 ‘다나 에스테이트, 로터스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이하 다나 로터스 빈야드). 긴 이름이다.
이 와인은 지난해 말 와인 서처(글로벌 와인 포털)에서 ‘세계 10대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으로 선정됐다. 한마디로 ‘BTS급 한류 스타’로 부상한 것. 미국 와인 1번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와인사업에 올인한 이희상 회장의 야심작이다.
최근 업무차 잠시 귀국한 이 회장을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나 ‘세계 10대 와인’에 선정된 비결을 들었다. “요즘 나파밸리 분위기가 엉망이에요. 열정으로 뛰어든 1세대는 대부분 세상을 뜨고 땅값 급등을 주체 못 한 2~3세들이 와인사업을 포기하면서 질이 자꾸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다나 에스테이트는 제가 직접 관리합니다. 진두지휘한 덕분에 구성원 모두 안정적으로 포도재배와 양조에 집중할 수 있어요. 자연스럽게 최고 와인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죠.”
다나 에스테이트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 만점을 두 번이나 받았다. 로터스 빈야드에서 생산된 2007년산과 2010년산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이다.
‘다나 로터스 빈야드’를 잔에 따르면 가장 먼저 검붉은 루비 컬러가 다가온다. 묵직한 보디감과 검은 과일, 자두향이 특징.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청량감 넘치는 삼나무 향으로 감동을 준다.
이 회장이 와인에 관심 갖게 된 동기를 직접 들어봤다. “30대 초반 미국 유학 시절 버몬트 스토우 리조트 스키장에서 와인을 처음 마셨어요. 당시 감동이 컸죠. 귀국 후 국내 폭탄주 문화를 보고 와인 전도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와인사업에 뛰어든 것은 1990년대 후반. 동아원그룹 회장 시절 가성비 좋은 칠레와 미국 와인을 수입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술 문화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자평한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나파밸리 헬름스 빈야드를 매입했어요. 당시 아주 허름한 곳이었죠. 주변 땅 두어 필지를 더 구입하고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세계 최고 와이너리를 완성했습니다.” 다나 와인 첫 출시는 2008년, 현재 국내 판매는 아시아 최대 수입사 에노테카에서 맡고 있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항간의 오해’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지금이 인생 중 가장 행복합니다.” 이 회장의 다나 에스테이트 지분은 40%. “나머지 60%는 미국 현지인과 기타 주주들이 각각 30%씩 소유하고 있어요.”
가시밭길 ‘나파 장벽’을 겨우 넘었는데 이제는 ‘고국의 엉뚱한 소문’이 발목을 잡아 안타깝다는 항변이 답변 속에 숨어 있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국제와인전문가(WSET Leve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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