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조 日기업 C사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후 조사서 마찰
기업 자문 노무법인, 고객사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수임
진정인 측 “사회 통념상 어긋나는 일”···현직 노무사, 형평성 지적도
국내 지사를 둔 일본 기업인 C사에 재직했던 직원 ㄱ씨가 지난해 4월 사측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ㄱ씨는 근속기간 내내 화성 본사와 충남 아산 공장으로 출퇴근을 병행하고, 출근시간을 10분 앞당겨 하라는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 등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ㄱ씨가 가해자로 지목한 상사는 사내 경영전반을 총괄한 임원 ㄴ씨다.
사측은 자체 조사를 진행했지만 괴롭힘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에 ㄱ씨는 해당 회사의 관할인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에 진정을 넣었다. 경기지청은 사측에 면밀한 조사를 권고했고, 회사는 노무법인을 선임해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조사를 맡겼다.
이 과정에서 ㄱ씨는 형평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사측이 선임한 노무법인은 사측의 자문 노무법인이었기 때문이다.
ㄱ씨는 “어떻게 자문 고객사인 사측의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겠느냐”며 “더군다나 자문 고객사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수주 받는 것은 ‘사회 통념상’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기업 노무이슈 해결하는 ‘자문법인’, 고객사 직장 내 괴롭힘 사건 맡는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에서는 자사 노무업무를 외부 노무법인에 자문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내 발생하는 노무이슈를 비롯해 사안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노동법을 전문가인 노무사에게 맡기는 계약 형태로 이뤄진다.
C사의 경우에도 서울에 본사로 두고 수원·대전 등 지사를 운영 중인 A노무법인에 수년간 자문을 맡기고 있다. ㄱ씨가 진정을 넣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역시 A노무법인에 넘겨졌다.
ㄱ씨를 대변하는 ㅅ노무사 역시 자문노무법인이 고객사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수임하는 것에 대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ㅅ노무사는 “자문법인에서 이 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니 최소 관계없는 법인에서 해야 한다고 몇 차례 주장했지만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았다”며 “담당 감독관은 노무법인에 조사를 받지 않을 경우 조사거부로 처리된다고 고지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맡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담당 감독관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사 권한은 사용자에 있다”면서 “기업이 자문을 맡기고 있는 노무법인에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맡기는 것에 대해 권고할 의무,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자문법인 노무사 “공정하게 노무사 역할을 할 뿐···
객관성 없다는 건 무시하는 발언” 발끈
C사의 자문노무법인에서 이번 사건을 맡았던 ㄷ노무사는 자문사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수임하는 것에 대해 “자문을 맡은 고객사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 기업과 가깝다고 기업 편에 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저희가 조사를 했을 때 괴롭힘이라고 보여 지면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주장하는 괴롭힘 사안을 두고 인정된다, 안 된다 라고 자문을 하는 것이 우리 일인데, 객관성이 없다 라고 주장하는 건 노무사, 노무법인을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형평성에 대해서도 ㄷ노무사는 “솔직히 돈(수임비용)만 보면 놓치고 싶지 않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무조건 회사 편을 들어 괴롭힘이 맞는데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우리 법인이 30년 간 사업을 해왔는데, 만약 그런 부정이 있었다면 이렇게 길게 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직 노무사들 “공정성에 의심갈수도”, “공정한 절차, 조사로 진행하면 될 것”
이처럼 기업의 자문을 맡고 있는 노무법인이 직장 내 괴롭힘 등 별개 사건을 수임하는 사례가 없진 않다. 이유는 공인노무사법에는 이 같은 상황에 적용할 잣대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위반되지는 않지만 사회통념상 기업과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자문법인이 별개 사건, 특히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과연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표는 남아 있는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노무사는 “자문 노무 법인에 별개 사건, 특히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맡기는 건 일반적이진 않다”라며 “괴롭힘을 신고한 근로자라면 당연히 공정성에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노무사는 “자문법인에 사건을 맡겼다고 해서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진 않지만 그만큼 조사를 객관적인 잣대로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노무사의 직업적 소명을 가지고 공정한 절차, 조사로 진행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공정하게 조사가 이뤄졌는지 감독관이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공인노무사법에는 없지만 사회통념상 적절치 않아 보인다”라며 “과연 자문법인이 직장 내 괴롭힘을 공정하게 조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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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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