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CES 2024’의 LG전자 부스를 방문해 미래 모빌리티 콘셉트 ‘알파블’을 타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CES 2024’의 LG전자 부스를 방문해 미래 모빌리티 콘셉트 ‘알파블’을 타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볼리(삼성 반려로봇) 가격이 얼마예요?”
“(LG가) 차를 만든다고?”



삼성전자 부스에서 반려로봇 ‘볼리’와 LG전자 부스의 미래 모빌리티 콘셉트 ‘알파블’을 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질문이다.

1월 9일(현지 시간) 개막한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4’가 기술 교류의 장이자 재계 총수들의 만남의 장으로 떠올랐다. 최태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구자은 LS그룹 회장 등은 국내외 기업들의 전시관을 둘러보며 분주하게 기술 트렌드를 살폈다.

최태원, ‘알파블’ 직접 타보고 ‘투명 TV’에 관심

최 회장은 이날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 마련된 SK그룹 통합전시관 ‘SK원더랜드’를 찾아 약 15분간 전시관을 둘러봤다.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 유정준 SK그룹 미주대외협력총괄 부회장,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유영상 SK텔레콤 사장 등이 동행했다.

최 회장은 인공지능(AI) 기술로 운세를 점치는 ‘AI 포춘텔러’를 체험하고, 수소연료전지 젠드라이브를 에너지원으로 움직이는 ‘트레인 어드벤처’에 최 부회장과 나란히 탑승해 SK가 구축하고 있는 수소 생태계를 영상으로 관람했다.

최 회장이 SK그룹 전시관에 이어 두 번째로 달려간 곳은 삼성전자 부스였다. 한종희 부회장과 이영희 글로벌마케팅실장(사장)의 안내를 받아 TV, AI 등과 관련한 기술과 제품·솔루션을 살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CES 2024’ 개막일인 1월 9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 마련된 SK그룹 전시관에서 ‘AI 포춘텔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SK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CES 2024’ 개막일인 1월 9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 마련된 SK그룹 전시관에서 ‘AI 포춘텔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SK
최 회장은 삼성전자 부스에 30분 이상 머물며 신제품에 대해 폭풍 질문을 쏟아냈다. 특히 삼성전자가 8일(현지 시간) 공개한 공 모양의 반려로봇 ‘볼리’를 보고 “가격이 얼마나 되냐”고 물으며 관심을 보였다.

투명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TV를 보고는 “반대편에서도 보이나”, “집 유리창으로도 가능한가”, “전원이 꺼지면 TV처럼 검은색을 띠는 것 아닌가” 등의 질문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 부스에서 최 회장은 LG전자가 처음 공개한 미래 모빌리티 콘셉트 ‘알파블’에서 5분 이상 설명을 들은 뒤 “LG가 차를 만드느냐”고 물으며 직접 탑승해 보기도 했다.

최 회장은 CES 행사장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올해 CES 핵심 테마인 AI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최 회장은 “모든 영역에 AI 애플리케이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며 “AI가 어느 정도 임팩트와 속도로 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챗GPT가 나온 지 한 1년 됐는데, 브레이크스루(돌파구)가 일어나다 보니 너도나도 이 흐름을 같이 타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CES 2024’의 HD현대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HD현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CES 2024’의 HD현대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HD현대
정의선, 사촌 정기선과 수소 주제로 환담

정의선 회장은 퀄컴과 HD현대, 모빌아이, 기아, 벤츠, 슈퍼널, 엡티브, LG전자,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두산 등의 부스를 둘러봤다. HD현대 부스를 찾아 사촌 동생인 정기선 부회장을 만났다. 사촌지간인 두 사람이 CES에서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2022년 CES 이후 2년 만이다. 이들의 공통 관심사는 ‘수소’였다.

정 회장은 HD현대 전시관에서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밸류체인이 공개된 ‘제로 사이트’에 큰 관심을 보였다. 정 회장이 수소 추진선 개발 시점을 묻자 정 부회장은 “이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목표 시점을 2030년으로 보고 있다. 그때 첫 배를 띄우려고 한다”고 답했다.

앞서 8일(현지 시간)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 미디어콘퍼런스에서 그룹 차원에서 특별히 수소에 신경 쓰는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 “수소 사업은 (아무리 어려워도) 후대를 위해서 우리 세대가 준비해 놓는 게 맞다”며 수소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현대차는 올해 CES에서 ‘수소와 소프트웨어로의 대전환’을 주제로 수소의 생산, 저장, 운송, 활용 등 모든 단계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단기적으로 수소차 넥쏘 후속 모델을 2025년까지 출시하고 장기적으로 도로와 하늘, 바다를 아우르는 다양한 수소 모빌리티를 선보인다.

수소연료전지 브랜드 ‘HTWO’를 현대차그룹의 수소 밸류체인 사업으로 확장해 그룹 내 계열사와 함께 수소의 생산, 저장, 운송 및 활용 등 전 단계에 걸쳐 수소 기술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사용자 중심의 모빌리티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강화 전략인 ‘SDx(software-defined everything)’도 공개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CES 2024' 개막 첫 날인 9일(현지 시간) 삼성전자 전시관을 찾아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뉴스1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CES 2024' 개막 첫 날인 9일(현지 시간) 삼성전자 전시관을 찾아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뉴스1
정 부회장은 삼성전자 부스도 찾아 한종희 부회장의 안내를 받아 부스를 둘러봤다. 한 부회장이 볼리에 대해 “생성형 AI를 탑재했고 헬스케어와 심리 케어 기술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설명하자 정 회장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올해 CES에서 현대차그룹 소프트웨어 개발을 총괄하는 포티투닷은 삼성전자와 협업 계획을 처음 발표했다. 삼성과 현대차의 ‘미래 모빌리티’ 동맹은 최근 더욱 강화되고 있다.

2023년 6월 삼성전자가 현대차에 차량 인포테인먼트(IVI)용 반도체를 공급하기로 한 데 이어 올초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기아의 핵심 플랫폼 서비스를 하나로 묶는 내용의 ‘홈투카(Home-to-Car)·카투홈(Car-to-Home) 서비스 제휴 협약(MOU)’도 맺었다.

현대차·기아의 차량 제어 플랫폼인 ‘커넥티드카 서비스’를 삼성의 스마트싱스와 연동하기로 한 것이다. 정 회장은 SK그룹 부스에서 최재원 부회장과도 환담했다. 미래 모빌리티와 그린 에너지, SK그룹의 배터리 관련 사업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CES 2024’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10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시안 호텔에서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사진=HD현대
‘CES 2024’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10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시안 호텔에서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사진=HD현대
정기선,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업 변신 선언

CES는 IT 기업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산업 간 경계가 흐려지고 서로 다른 산업과 기술이 연결되고 확장되는 융합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비(非)테크 기업들의 관심과 참여가 늘고 있다.

기존 산업에 신기술을 융합하기 위해 첨단기술 동향을 살필 필요성이 커지면서 중공업, 유통·식품 등 다양한 산업 관계자들이 CES 현장을 찾고 있다.

3년 연속 CES 현장을 찾은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정 부회장은 비(非)가전 기업 최초로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10일(현지 시간) 인류의 지속가능성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Xite Transformation)’을 제시했다.

‘사이트(Xite)’는 물리적 건설 현장(Site)을 확장한 개념이다. 건설 장비의 무인·자율화, 디지털 트윈, 친환경 및 전동화 등 미래기술을 활용해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스마트 건설 현장을 구현하겠다는 혁신 의지를 담고 있다.

정 부회장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안전성 확보, 생산성 향상을 위한 무인 자율화, 에너지 밸류체인 구축과 탈탄소화 등 3대 혁신 목표를 발표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혁신 기술로 ‘엑스 와이즈(X-Wise)’와 ‘엑스 와이즈 사이트(X-Wise Xite)’를 공개했다.

정 부회장은 “이 두 가지 혁신 기술을 바탕으로 하드웨어 기반의 장비 제조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의 솔루션 제공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이 9일(현지 시간) 'CES 2024'의 롯데정보통신 부스를 방문해 김동규 칼라버스 대표(왼쪽)와 고두영 롯데정보통신 대표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이 9일(현지 시간) 'CES 2024'의 롯데정보통신 부스를 방문해 김동규 칼라버스 대표(왼쪽)와 고두영 롯데정보통신 대표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비테크 기업 오너가도 ‘AI 열공’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은 주요 경영진과 참관단을 꾸려 CES에서 푸드테크와 AI, 디지털헬스케어 전문 업체의 전시관을 찾았다. 최첨단 기술의 식음산업 활용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국내외 유망한 기업들과의 협력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구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아워홈은 일반 식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넘어 IT와 푸드테크 기술에 기반해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식음업계의 테슬라’로 거듭나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통업계 3세들은 신기술 동향 파악, 네트워크 확장의 장으로 CES를 찾았다. 롯데가 3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전무)은 계열사 롯데정보통신 부스에서 메타버스를 체험하고 SK, LG, HD현대, 파나소닉 등 국내외 기업 부스를 찾아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필요한 기술 동향을 파악하면서 관련 업계와 네트워크를 다졌다.

신 전무는 HD현대 부스에서 정기선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가상현실(VR) 트윈 체험기구에 올라 직접 체험해보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2023년에는 배를 했는데 올해는 건설기계를 준비했다”면서 신 전무에게 전시 내용과 HD현대의 미래 비전을 직접 소개했다.

한화가 3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부사장),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그룹) 오너가 3세 전병우 상무도 CES 현장을 찾았다. 이들은 주력 사업과 AI 기술의 접목,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푸드테크와 로보틱스 기술을 중점적으로 살펴본 것으로 전해진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