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레알과 존 디어의 닮은 점 [하영춘의 경제 이슈 솎아보기]
로레알(L’Oreal)과 존 디어(John Deere). 얼핏 보면 닮은 점이 거의 없다. 굳이 찾자면 100년 이상 된 기업이자 업계 최고 기업이라는 점이다. 로레알은 1909년 설립됐다. ‘랑콤’ 등 37개의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이다. 존 디어의 역사는 더 오래됐다. 1837년 설립된 세계 최대 농기계 회사다. 하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닮은 점이 많다.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회사의 혁신 노력은 ‘지구 최대의 전자·정보기술(IT) 쇼’라 불리는 ‘CES’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1월 12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업 중 하나는 로레알이었다. 니콜라 이에로니무스 로레알 최고경영자(CEO)는 화장품 회사로는 처음으로 기조연설에 나섰다. ‘생성형 AI(인공지능)’가 주제인 이번 전시회에서 화장품회사가 기조연설을 맡다니 좀 생뚱맞은 듯했다.

아니었다. 이에로니무스는 ‘뷰티 지니어스’라는 챗봇을 들고 나왔다. 챗봇은 이에로니무스에게 “오랜 비행으로 피부가 건조해졌다”며 수분크림을 추천했다. 사용자의 피부 톤을 분석해 가장 적합한 화장품과 화장 방법까지 제안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에로니무스는 “2018년부터 37개국에서 쌓아온 10페타바이트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생성형 AI에 도전하고 있다”며 “뷰티 지니어스는 개인에게 맞는 최고의 뷰티 루틴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존 디어는 2023년 CES의 주인공이었다. 농기계 업체로는 처음으로 CES 기조연설을 맡았다. 존 메이 CEO는 로봇 기반 자율주행 비료살포기인 ‘이그잭트샷(ExactShot)’을 선보였다. 그는 “카메라와 센서를 이용해 씨앗이 심어진 곳을 식별해 정확한 위치에 비료를 뿌려준다”며 “이 덕분에 비료 사용량의 60%를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22년 선보인 자율주행 트랙터는 실제 농장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CES는 ‘지구 최대의 IT쇼’다. 그런 만큼 삼성전자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글로벌 테크기업이 주로 기조연설을 맡는다. CES를 주최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이들 외에 의외의 기업을 기조연설자로 내세워 새로운 기술이 산업 곳곳에 파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필자가 참관한 2017년 CES에서도 그랬다. 당시 주인공은 단연 AI용 GPU(그래픽처리장치) 디자인 업체 엔비디아였다. 하지만 엔비디아 못지않게 주목을 받은 기업은 언더아머였다. 스포츠웨어 업체로는 첫 기조연설을 한 케빈 플랭크 CEO는 “언더아머의 경쟁상대는 아디다스만이 아니라 IT 거물인 삼성과 애플”이라고 천명해 주목을 받았다.

‘CES 2024’의 화두는 생활 곳곳에 파고드는 생성형 AI였다. 생성형 AI가 IT 기업은 물론 화장품·농기계·푸드·헬스케어·스포츠웨어·유통 기업마저 바꾸고 있음을 보여줬다. AI를 접목하지 않는 기업은 생존하기 힘들 거라는 것도 느끼게 했다.

비단 기업만이 아니다.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도 AI를 비롯한 혁신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외면받는 시대가 도래할 게 분명하다. 혁신의 무풍지대인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법안과 예산안 심사, 공천 등을 할 때 AI에 버금가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으면 정치불신을 더 키울 게 뻔하다. 그렇게 되면 국회의원을 AI로 대체하자는 소리도 조만간 나올 듯하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